[스포츠투데이 김지현 기자] ‘재테크의 여왕’, ‘치고 빠지기의 귀재’
최근 서울 성수동 소재의 건물을 매각해 20억 원 이상의 시세 차익을 본 배우 이시영을 둘러싼 매체들의 보도 타이틀이다. 건물주 스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는 언제나 동경과 부러움이 깔려 있다. 차익이 높을수록 뛰어난 경제적 안목을 지닌 것으로 간주되고 매체들은 투자 방식을 분석하기 바쁘다.
과연 이 성공 신화에 박수만 보낼 수 있을까. 오히려 반대다. 건물주 스타들의 입 벌어지는, 억소리 나는 시세 차익 이면에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숨어있다. 이들은 틈 많은 현행법을 이용해 투자와 투기, 절세와 탈세 사이를 오가며 말 그대로 앉아서 돈을 벌었다. 투기를 통해 상승한 건물의 몸값은 동시에 임차인들의 월세도 오르게 했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이다.
MBC ‘PD수첩’ 제작진이 건물주 스타들의 실태를 보도하면서 사회적 파장이 일고 있다. 건물을 매입하고 5년 이내에 이를 매각해 2~3배 이상의 시세 차익을 보는 일을 반복하거나, 개인 명의가 아닌 법인을 통해 건물을 사들여 세금 혜택을 본 정황이 고스란히 보도됐다. 문제는 이 법인들이 정체불명의 페이퍼 컴퍼니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건물주 스타 대부분이 이러한 법인을 통해 건물을 매입했고, 50% 가량의 절세 혜택을 누렸다.
이병헌·한효주·권상우·공효진 - 매각까지 4~5년, 수십억 차익
배우 이병헌의 자산에서 부동산은 큰 비율을 차지한다. 2009년 서울 분당구 서현동에 위치한 4층짜리 건물을 34억 5천만 원에 매입한 그는 2012년 해당 건물을 70억 원에 매각, 3년 만에 무려 35억 5천만 원의 시세 차익을 봤다. 이후 여러 거래를 통해 부동산에 대한 지식을 쌓은 이병헌은 2018년 소유한 건물 중 가장 비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소재의 건물을 260억원에 매입했다. 소유자는 어머니가 대표로 등재된 법인회사 '프로젝트B'다.
배우 한효주는 2016년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빌딩을 22억 5천 만원에 매입한 후 2020년 43억 원에 매각했다. 4년 만에 20억 5천만 원을 벌었다. 한효주 역시 본인 이름이 아닌 아버지가 대표 이사로 등재된 법인 회사 ‘주식회사 HYO’을 통해 해당 건물을 매입했다. 이후부터는 공격적인 부동산 투자를 이어갔다. 2017년 서울 한남동 소재의 빌딩을 55억 원에 매입한데 이어 이듬해인 2018년 서울 은평구 갈현동에 위치한 건물을 27억 원 대에 사들였다. 이 건물 역시 아버지의 명의로 된 법인회사를 통해서다.
권상우도 본인 소유의 법인 'KGB필름' 통해 빌딩을 사들였다. 2018년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위치한 빌딩을 280억 원에 매입해 월세 수익을 얻는 중이다. 2014년에는 본인이 세운 기획사인 수컴퍼니 명의로 강남구 청담동의 빌딩 한 채를 58억 원에 매입했다. 이후 5년 만인 2019년 해당 건물을 77억 원에 매각했다. 시세 차익은 19억 원이다. 현재 권상우의 부동산 자산은 700억 원대로 추정된다.
배우 공효진도 부동산 신흥 부자 대열에 합류했다. 2013년 용산구 한남동 건물을 37억 원에 매입한 공효진의 당시 대출액은 무려 26억 원에 달한다. 자기자본은 8억 원 밖에 들지 않았다. 이후 공효진은 해당 건물을 2017년 60억 8천만 원에 매매해 4년 만에 23억 원 이상의 차익을 냈다. 같은 해 그는 해당 건물을 매각한 수익으로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건물을 63억 원에 매입했다. 이병헌, 한효주, 권상우와 마찬가지로 법인을 통해 건물을 매입했다. 공효진은 이 건물을 6층 건물로 신축했는데 건축비 역시 대출로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이 건물의 싯가 가치는 135억 원 정도다. 공효진 역시 다른 건물주 스타들처럼 법인을 통해 대출을 받았고, 자기 자본을 최소화해 빌딩을 샀다. 그리고 5년 내에 매각해 시세 차익을 본 점도 여타 건물주 스타들과 패턴이 비슷하다. 일종의 공식과도 같은 사이클이 성립되는 것이다.
개인 명의로 사면 바보? 법인으로 매입해도 내 재산
네 사람의 가장 큰 공통점은 법인 명의로 빌딩을 매입했다는 점이다. 왜 소유자명에 제 이름 석 자가 아닌 법인 회사를 두는 것일까. 개인과 법인, 세금 차가 2배 이상이기 때문이다. 양도 차익이 5억 원 이상인 경우 개인은 지방세 포함 양도 소득세를 50% 가까이 지불해야 하지만 법인은 지방세를 포함하더라도 그에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22%의 세금만 납부하면 된다. 건물주들은 절세를 위해 당연히 개인 보다 법인 명의의 부동산 매입을 선호하게 된다. 월세, 임대료 또한 법인으로 흘러가지만 법인의 지분을 보유한 실질적 주인은 건물을 매입한 스타이거나 부모 등 직계 가족이기 때문에 스타들이 수 억 원, 수 십억 원대의 절세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세금 혜택만이 아니다. 1금융권 대출과 금리에서도 유리하다. 법인 명의로 대출을 신청하면 개인 보다 고액으로 받을 수 있고, 스타라는 신용도가 더해져 수 십억, 수 백억 원대의 대출이 가능하다. 금리 역시 법인이라는 이유로 낮게 적용받는다. 개인 대출이 3.5%의 금리를 적용받는다 할 때 법인은 2.5%까지 낮아진다. 스타들이 수 십억 원의 빌딩을 사면서도 자기 자본을 10% 미만으로 책정하는 이유다. 월세 소득으로 인한 세금 역시 절감 받을 수 있다. 빌딩 매입부터 대출, 금리, 임대료 세금 절감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세제 혜택을 받는다.
수 백억 원대의 부동산 자산가로 알려진 배우 송승헌 역시 가족 명의의 ‘스톰에스컴퍼니’를 통해 건물들을 사들였다. 2018년 해당 법인을 통해 서울 종로구 관철동 소재의 빌딩을 235억 원에 매입했다. 대출액은 130억 원. 법인 명의로 매입했기 때문에 월세 수익은 법인(사실상 건물주)이 가져가고, 이는 법인의 신용으로 이어져 스타는 해당 법인 명의로 또 다른 빌딩을 살 수 있는 부자가 된다.
법인 명의 대출→금리 혜택→법인 명의 매입→임대료 절세 혜택→5년 이내 매각→수 십억 시세차익→법인 명의로 또 다른 건물 매입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릴레이 혜택이 이어질 수 있으니 스타들은 한 채에 만족하지 않고 수 채의 빌딩들을 사들이며 시세 차익을 노린다.
누워서 떡 먹기 법인 설립, 돈이 돈 버는 구조
개인 소유임에도 법인 명의로 부동산을 소유한 이들에게 절세 혜택을 주는 것이 정당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합법이다. 동시에 편법이다. 사실상 이러한 대부분의 법인들은 페이퍼 컴퍼니에 가깝지만 이를 증명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법무법인 다지원의 김지윤 변호사는 28일 스포츠투데이에 “근로자가 없는 1인 기준의 법인들이 많은 상황이지만 이를 페이퍼 컴퍼니라고 규정할 수 있는 기준은 사실상 없다.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죄’라는 조항으로 유령 회사를 거르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사실상 유죄 판례는 없었다. 심지어 근로자에게 급여가 나가지 않아도 규명하기 힘든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매입을 위한 1인 법인 설립, 얼마나 쉬울까. 현행법상 누구나 100만 원 미만의 자본으로 법인 회사를 세울 수 있다. 심지어 직원이 없어도 설립이 가능하다. 1인 법인의 경우 본인, 본인의 가족, 가까운 제3자 등을 대표 이사로만 등재하면 된다. 법인을 만드는 일이 이토록 쉬우니 자본이 있는 이들이 법인을 통해 연이어 빌딩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돈이 돈을 먹는 구조다.
합법이라 큰소리치지만 법인 존재 목적 설명 못해
스타들의 숨겨진 법인들은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해당 법인의 정체에 대해 묻는 본지에 소속사들은 구체적인 답변을 꺼려 하거나 납득이 가는 설명을 하지 못했다.
이병헌 측 소속사인 BH엔터테인먼트는 '프로젝트B'에 대해 “개인 사생활이라 말할 수 없다”라며 사실상 답변을 거부했다. BH는 같은 질문을 한 ‘PD수첩’ 측에도 부동산을 관리하는 곳이라며 해당 법인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 한효주의 법인회사 '주식회사 HYO’에 대해서도 같은 답변을 했다.
권상우의 법인은 어떤 곳일까. 소속사 측은 'KGB필름' 명의로 권상우가 건물을 매입한 이유에 대해 “법인이 더 투명하고, 영수증 처리도 깔끔하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해당 법인을 영화 제작사라고 소개한 이 측근은 “신인 작가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작가의 이름을 묻는 질문에는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설립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영화가 제작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스포츠투데이 김지현 기자 ent@stoo.com /사진=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