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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 박훈, 연기 무대를 확장하다 [인터뷰]
작성 : 2020년 04월 26일(일) 14:09

아무도 모른다 박훈 / 사진=스토리제이컴퍼니 제공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박훈이 안방극장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곧 화면을 자신만의 무대로 바꿔놨고, 그 안에서 한 마리 맹수처럼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동물적 움직임으로 새로운 연기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 박훈은 모든 공을 스태프들에게 돌리는 겸손한 배우다.

박훈은 2011년 연극 '늑대의 유혹'으로 데뷔해 '젊음의 행진' '형제는 용감했다' '모범생들' '늘근도둑 이야기' '유도소년' '벙커 트릴로지'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이후 브라운관으로 활동 영역을 넓힌 박훈은 드라마 '태양의 후예' '투깝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해치' 등에 출연하며 굵직한 필모그래피를 남겼다.

이런 박훈이 이번엔 SBS 월화드라마 '아무도 모른다'(극본 김은향·연출 이정흠)로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아무도 모른다'는 "좋은 어른을 만났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까"라는 경계에 선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을 지키고 싶었던 어른들의 미스터리 감성 추적극이다. 박훈은 극 중 자수성가한 자산가로 복지 사업을 하는 한생명 재단의 이사장이자 밀레니엄 호텔의 대표 백상호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박훈은 "엄중한 시기에 방송이 시작됐다. 이 드라마가 시청자분들께 어떤 의미라도 될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랄 뿐이다. 개인적인 기대보다 훨씬 더 큰 사랑을 받아서 감사할 따름이다. 작은 의미라도 남길 바란다"며 "방송이 나가고 업계 종사가들에게 연락을 많이 받았다. 많이 좋아해 주시더라. 작품도 좋고, 연기도 좋았다고 말씀해 주셨다. 정말 감사한 피드백이다. 업계 분들에게 인정받아서 기분이 좋다"고 종영 소감을 밝혔다.

'아무도 모른다'는 감각적인 연출과 '좋은 어른을 만났더라면 아이들이 달라질 수 있을까'라는 다소 심오한 메시지가 만나 호평을 얻은 바 있다. 이 안에서 박훈은 소위 '나쁜 어른'을 만나 성장한 아이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폭넓은 연기를 통해 보여줬다. 이렇듯 백상호는 지극히 평면적이면서 동시에 고민과 갈등을 표현하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을 터. 박훈은 이 모든 것을 스태프들의 공으로 돌렸다.

박훈은 "백상호를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동물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백상호 인물 소개를 보면 표범처럼 멀끔한 모습을 갖고 있으나 하이에나와 같다고 표현돼 있다. 여기에서 착안한 것"이라며 "소위 말하는 맹수 같은 모습이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벌크업했고, 움직임이 많은 연기 방식을 취했다.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인 거다. 이 연기의 단점은 한정적인 앵글에 담기 어렵다는 거다. 드라마는 시간적으로 제약이 존재하다 보니 움직임에도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동물적 느낌을 담기 위해 감독님과 사전에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이렇게 논의를 했으나 막상 현장에 가면 제약이 더 많다. 그런데 현장 스태프들이 쓴소리 없이 다 해결해 줬다. 촬영 감독님, 조명 감독님, 음향팀 모두 연기에 맞춰서 편하게 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참 감사하다"고 설명했다.

아무도 모른다 박훈 / 사진=스토리제이컴퍼니 제공


박훈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건 무대 위의 경험이었다. 그는 "연극배우로 시작했고, 무대를 다 쓰면서 연기하는 게 익숙한 배우였다. 드라마는 앵글 안에 담겨야 되고 더군다나 시간적 제약까지 있다. 그런데 나는 카메라가 나를 찍고 있다는 자의식 없이 자유롭게 동물적으로 연기하고 싶었다. 무애 연기와 앵글 연기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며 "그래서 연극처럼 해봤다. 어떤 연기가 더 나은 게 아니라 표현 방법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 생각보다 많은 시청자분들이 좋아해 주셨다"고 말했다.

이런 박훈의 고민과 스태프들의 협업은 화면을 통해 노스란히 나타났다. 그는 첫 등장부터 강렬했다. 재단 이사장으로 학생들 앞에서 강단에 선 모습이었다. 당시 그는 흰색 슈트를 입고 어린 학생들 사이를 누볐다. 마치 맹수가 사냥감을 탐색하는 것 같은 역동성을 엿볼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박훈은 "우선 외형적인 것도 신경을 많이 썼다. 일반적인 이사장의 전형적인 모습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의상도 기성 제품을 입지 않으려고 했다. 스타일리스트와 동묘에 가서 찾고 찾은 옷이었다. 이런 옷을 정식으로 매치하지 않고, 어딘가 한 부분 풀어지게 매치했다"며 "흰색 슈트를 입은 것도 백상호와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다. 이런 것들이 모여 마치 아이들이라는 사슴을 노리는 맹수처럼 보일 수 있게 만들었다. 캐릭터가 대본 안에서 정말 치밀하게 연결돼 있었다. 그렇기에 그걸 해석하고 확장하는 즐거움이 있었다"고 전했다.

또 박훈은 입체적인 백상호을 그리기 위해 특별한 완급 조절을 선보였다. 극 초반 백상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의문이 인물이다. 작품이 전개되고 클라이맥스로 향하면서 백상호 역시 악행이 드러나며 감정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이런 감정의 폭을 시청자들에게 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박훈은 "긴장감 있는 신을 긴장감 있게 표현한 게 아니라, 아이들과 있는 신을 밝게 하는 방법을 택했다"고 비법을 밝혔다.

그러면서 "아이들과 있는 장면을 더 유치하게, 더 아이처럼 연기했다. 오히려 코미디처럼 보일 수 있게 말이다. 이게 이중적인 면모를 가진 백상호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유치하게 나가면, 나머지 부분은 비교적 다운될 것"이라며 "아이들과 있는 장면은 애드리브도 많이 했다. 아이들이 '재수 없어'하고 말하면 내가 '나도'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건 대본에 없었다. 초등학생 때 '반사'를 말하는 유치함을 표현했다. 그렇기에 악한 모습이 저절로 표현된 거다. 낙차를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박훈은 청소년 배우들과 유기적으로 호흡하며 백상호를 완성했다. 이 과정은 청소년 배우인 안지호, 윤찬영 등과의 관계가 중요했다는 설명이다. 박훈은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경계선에 선 아이들. 좋은 어른과 나쁜 어른'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아이들과 호흡하기 전 '나는 과연 어떤 어른일까'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질문의 답은 '무섭게 생겼지만 알고 보면 실없는 어른'이었다. 그만큼 아이들과 많이 친해졌다. 현장에서 아이들과 서스럼없이 편하게 지내려고 애를 썼다. 내가 먼저 나서서 장난치듯 해줘도 얼마나 불편했겠냐. 장난도 백상호 처럼 치려고 노력했다. 카메라가 꺼져도 백상호처럼 똑같이 구니까 아이들이 익숙해지더라. 그게 화면에 잘 나온 것 같다"며 "또 촬영이 끝난 지금까지도 아이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말하며 미소를 보였다.

아무도 모른다 박훈 / 사진=스토리제이컴퍼니 제공


맹수 같은 캐릭터부터 낙차를 이용한 긴장감 조성, 그리고 청소년 배우들과의 호흡까지 박훈은 '아무도 모른다'를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제는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그다. 박훈은 "연극 작업은 어쨌거나 담금질을 하는 기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워낙 배경이 없어서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시작한 게 연극이었고, 그 계기로 여기까지 왔다. 내가 연극에서 나와 매체로 갔다기 보아 시기적으로 나를 원했던 것 같다. '태양의 후예'부터였는데, 막상 매체에 오니 또다시 시작하는 거다. 공부할 게 많이 생거더라. 또 그걸 기반으로 많이 적응했고, '아무도 모른다'를 통해 그동안 고민했던 것들을 많이 도전했던 것 같다. 이게 다 하나의 과정이다. 다음에는 또 이걸 기반으로 무언갈해볼 수 있겠구나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작품을 통해 박훈의 확장성을 보여줬다면, 앞으로 더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할 것"이라며 "비슷한 느낌의 반복은 지양하려고 한다. 나 자신도 그런 사람이 아니다. 조금 돌아가고 시행착오를 겪더라고 이 부분은 꼭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앞으로의 포부도 전했다.

이처럼 박훈은 연극부터 매체, 그리고 새로운 도전까지 자신의 걸어온 길과 새로 걸어갈 길을 그렸다. 연기를 향한 그의 열정과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는 "어느 순간부턴가 많은 분들이 결과보다 과정을 봐주시는 것 같다.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올림픽에서도 금메달 딴 사람만 보는 게 아니라 멋진 과정을 만든 사람에게도 박수를 쳐 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라며 "나도 과정을 밟아나가면 언젠가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가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예전에는 이 작품이 안 되면 끝날 것 같은 불안감으로 연기를 했는데, 지금은 내 부족함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도전한다. 나도 언젠간 인정받지 않을까"라고 희망했다.

끝으로 박훈은 "나중에는 '고생했다. 참 애썼다'라는 소리를 듣는 배우가 되고 싶다. '고생했다'라는 말은 '저 사람이 저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작품들이 있었고, 과정이 있었다'는 뜻이니까 그런 말을 듣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박훈은 연기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도전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는 그의 다음 발걸음이 기대되는 이유다.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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