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 스텔라 '아마벨(Amabel)', 1996 _ 원제목은 ‘꽃이 피는 구조물(Flowering Structure)’이었는데, 작품 제작 도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친구의 딸 이름으로 제목을 바꿨다. 가로 11미터, 세로 5미터, 무게 30톤.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 수백 개를 현장에서 짜 맞추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당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제작비가 든 미술품으로 제작에만 1년 6개월이 걸렸다.
비닐봉지 인생(?), 절체절명의 위기다. 세상에 처음 등장하여 유통시장을 한순간에 장악했을 때만 해도 정말이지 시장바구니, 종이봉투보다 가볍고 질길 뿐만 아니라 값도 싼 신소재라며 각계각층의 각광을 받았다.
그런데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환경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어느새 비닐봉지는 가능하면 지구에서 사라져야 할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버렸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비닐봉지를 사용하지만 대형 마트 같은 곳에서는 환경 부담금이라는 법적인 명목으로 돈을 내고 사야하며,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지구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일종의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비닐봉지 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인 검은 비닐봉지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생리대를 구입할 때처럼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도시(?) 숙녀들은 모양 빠지는 검은 비닐봉지 들기를 질색한다. 따라서 아이템의 무게와 상관없이 동행하는 남자가 여자 대신 비닐봉지를 들어주는 것은 화장실 앞에서 여자 친구의 가방을 들어주는 남자 친구를 보는 일만큼이나 흔한 이 시대 남자의 매너 아닌 매너가 되어버렸다. 아, 화려했던 비닐봉지의 일생을 이렇게 마감해야 하는가?
생명력 하나는 끝내주는 비닐봉지가 쉽게 물러날 리가 없다. 비닐봉지는 1997년 어느 날에 벌어진 일을 기억해냈다. 서울 삼성동 포스코센터(구, 포항제철) 앞에 설치된 프랑크 스텔라의 공공미술작품 ‘아마벨’을 둘러싼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미술품을 보는 세간의 눈높이가 적잖이 높아져(?) 지금은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녹슨 쇳덩이를 짓이겨 놓은 듯한 16억 원짜리 이 작품을 보고, 지나는 사람들이 흉물이라고 비난하며 당장 치우라는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아마벨’의 설치가 진행 중이던 어느 새벽에는 고철장수가 설치하다 만 작품 몇 덩어리를 폐철인 줄 알고 싣고 가버려 경찰까지 동원되어 법석을 떤 끝에야 찾아내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이 사례에서 비닐봉지는 고물상에나 가야했던 거칠고 차가운 쇳덩어리의 생존 전략이 제법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일단 작품으로만 인정받으면 그 가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른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얼마 전에 미술관에 입성했다는 임신한 망치 이야기도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 사건은 ‘노가다 판’에서나 겨우 그 값어치를 인정받는 천한(?) 신분의 망치가 자신의 고달픈 인생을 한탄하다가 잠시나마 몸을 편히 쉬게 하려고 임신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임신을 하면 누구도 쓰려 하지 않을 테니까. 실제로 만삭이 되자 사람들은 쓸모없는 물건이라며 임신한 망치를 외면했다. 그러나 망치가 저지른 일은 뜻밖의 결과를 낳게 되었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어떤 사람들이 임신한 망치를 가리켜 “이건 예술이야”라고 말하며 미술관에 모신 것이다. 이렇게 미술관에 자리 잡은 임신한 망치는 이후 영원히 해산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이에, 비닐봉지는 또 한 번 깨달았다. 본연의 기능 내지는 임무를 무시하고 특별해지면 오히려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김범 '임신한 망치' 2000년 12월 16일부터 2001년 1월 20일까지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 <디자인 혹은 예술>전에서 전시되었다.
한참을 고민한 비닐봉지는 드디어 뜻을 세웠다. “그렇다면 나는 ‘싸구려’의 가치를 대변하자!” 요지는 이렇다. 사람들이 비닐봉지가 온갖 문제를 양산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용하는 건 ‘싸다는 것’의 가치가 숭고하고 영원하기 때문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 때문에 ‘싸다는 것’이 값어치 없게 느껴지지만 사실 상품을 싸게 만드는 것은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발휘한다. 아무리 조잡한 물건이라도 상대적으로 싸다고 느껴진다면 선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여전히 문제가 남는데, 사람들은 눈에 확 들어오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것에 먼저 시선을 빼앗긴다는 점이다. 그러니 눈에 잘 안 띄고 평범한 ‘싼 것’에는 좀처럼 눈길이 머무르지 않는다. “그래? 그럼 말이지, 비닐봉지라는 값싼 ‘싸구려’로 값비싼 ‘럭셔리’를 추구하자. 그리고 그 방법으로는 미술 작품만한 게 없지.”
과연 비닐봉지는 걸작(傑作)이 되어 미술관에 걸릴 것인가, 아니면 황량한 거리를 뒹구는 걸인(乞人)의 처지로 전락하고 말 것인가? 자, 이제 비닐봉지는 살아남기 위한 일생일대의 기로에 섰다.
P. S. 이 글은 《고마워, 디자인》(김신 지음, 디자인하우스 발간)의 ‘누가 망치를 임신시켰나?’에서 영감을 받았음을 밝힌다.
글·사진 장다운 보름산미술관 소장
조병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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