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윤혜영 기자] "제가 30년 동안 가요계를 이끌었다고요? 묻어온 거죠."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가수 신승훈의 소회다. 무려 '발라드 황제'란 타이틀을 얻은 그지만 군림조의 수식이 무색할 만큼 신승훈은 소탈하기만 했다.
30년의 관록은 더할 나위 없이 유연했다. '인간' 신승훈의 질문도 괜찮다며 사적인 물음에도 막힘없이 생각을 꺼냈고, 코로나19 여파로 인터뷰가 온라인 화상으로 진행된 탓에 부끄러워할 기자들을 걱정하며 친근하게 소통했다. 30년간 가요계 황제로 살아온 신승훈의 묵직한 속내였다.
다음은 신승훈 30주년 기념 스페셜 앨범 '마이 페르소나스(My Personas)' 발매 인터뷰 일문일답
Q. 데뷔 30주년 소감.
A. 보통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지 않나. 10주년 때도, 20주년 때도 '이쯤 되면 음악 인생에 반환점이 될 것 같은데'란 질문을 받았다. 속으로 '네?' 했다. 왜 이분들은 20주년을 반환점으로 생각할까. 근데 30년이 되고 나니까 지금은 반환점인 것 같다. 마라톤은 반환점이 있지만 인생은 되돌아가는 게 없지 않나. 의미는 맞지만 왔던 길을 돌아가서 자축하고 대견해하고 '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즐기기보다는 말 그대로 앨범을 만든 오늘이 중요한 것 같다. 오늘을 시작으로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한마디로 현재진행형으로 충실하고 싶다.
Q. 신승훈이 꼽는 대표곡.
A. 30주년 인터뷰에서는 저의 데뷔곡이었던 '미소속에 비친 그대'를 대표곡이라 하고 싶다. 그 노래를 시작으로 30년이 됐기 때문에 저한테 가장 의미 있는 곡을 꼽으라면 아마 올해는 '미소속에 비친 그대'라고 얘기할 것 같다. 그런 의지로 (코로나19 여파로) 연기됐지만 콘서트 제목도 'THE신승훈SHOW : 미소속에 비친 그대'라는 타이틀로 간다.
Q. '발라드 황제' '국민 가수' 등 호칭에 대한 생각?
A. 연인을 빗대어 비유하자면 못해줬던 생각은 잘 안 난다. 좋았던 기억만 생각난다. 아마 여러분들도 저에게 가장 좋았던 기억들이 '신승훈이 발라드를 부를 때'였던 것 같다. 사실 제가 정말 많은 장르를 했다. 디스코, 맘보, 뉴잭스윙, 댄스도 했는데 사람들 기억 속에는 발라드가 깊게 새겨진 것 같다. '발라드 황제'가 어떻게 보면 족쇄가 될 수 있다. '신승훈은 발라드만 해야 돼. 다른 거 하면 이상해.' 사실 애증의 관계다. 사랑하는 만큼 증오도 있었던 별칭이다. 하지만 뭔가 하나의 캐릭터가 주어졌다는 것, '발라드 황제' 하면 신승훈 이름이 떠오른다는 것, 열심히 했던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해서 애증 중에 '애'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앞으로 발라드만 할 건 아니다. 일탈을 꿈꿀 것 같아서 '계속 발라드만 해주지' 그런 생각을 하신 분들에게는 애증 중에서 '증'이 될 것 같다.
'국민 가수'란 타이틀은 십몇 년 전에 반납한 것 같다. 어느 기자분이 '내 와이프가 좋아하고 어머니가 좋아하고 처제가 좋아할 정도면 국민 가수가 아닌가' 그런 식으로 써서 국민 가수 칭호가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요즘 사람들은 저에 대한 걸 잘 모르지 않나. 제가 활동을 꾸준히 하긴 했는데 TV에서 모습을 많이 보이진 않아서 국민가수란 칭호는 지금 상태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Q. 30주년 기념 스페셜 앨범 '마이 페르소나스' 소개.
A. 30주년 기념 앨범이니까 그 안에는 '미소속에 비친 그대' '아이 빌리브(I believe)' '보이지 않는 사랑' 등 30년의 흔적이 있겠지 생각하셨을 텐데 전혀 상관없는 신곡들로 8곡이 채워졌다. 그중 6곡은 제가 다 작곡했고, 나머지 2곡은 누구한테 받은 게 아니라 '이 노래 너무 좋은데 왜 안 됐을까' 후배 싱어송라이터 중에서 우리 세대 팬덤에도 알려졌으면 좋겠다 싶은 노래를 넣었다. 직접 전화해서 '이 노래 하고 싶다' 해서 부르게 됐다. 그렇게 총 8곡이고 스페셜 앨범 이름은 '마이 페르소나스'다. '나의 분신 같은 음악들'이라는 뜻이다. 예전에 봉준호 감독님이 '나의 페르소나는 송강호 씨다' 얘기했던 것처럼 '나도 감독이라고 생각하면 내 페르소나가 뭘까' 생각해보니 내 분신은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이었더라. 그래서 8곡의 분신 같은 음악으로 '마이 페르소나스'라고 정했다.
Q. 곡 설명.
A. 더블 타이틀곡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이하 여헤처아)' '그러자 우리'를 말씀드리면 '여헤처아'는 땡스 투였다. 여태까지 신승훈 음악을 좋아해 주셨던 분들을 위한 곡이다. 30년이 있기까지 여러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땡스 투로 전혀 실험정신 없는 신승훈표 발라드를 꼭 하나 쓰고 싶었다. 그게 '여헤처아'가 된 것 같다.
'그러자 우리' 같은 경우는 같은 류지만 조금은 다르다. 비교하자면 '여헤처아' 같은 경우는 '너 우니? 내가 더 울려줄게' 이런 거였다면 '그러자 우리'는 '너 우니? 내가 가만 있어줄게' 이런 의미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같은 발라드라도 다른 느낌으로 들릴 것 같다. 노래 한 번 들어보시고 나서 피드백 주셨으면 좋겠다. 자신감 있는 더블 타이틀이 아니라 이게 타이틀인지, 이게 타이틀인지 고민했다. 사무실에서는 말렸다. 마케팅으로는 한 곡에 집중해야 되는데 더블로 가면 갈라질 염려가 있다는 거다. 근데 '그냥 더블 갔으면 좋겠어' 했다. '조금이라도 이 노래, 이 노래가 다 같이 알려졌으면 좋겠어' 이런 생각이었다.
'늦어도 11월에는'은 (가사를 쓴) 양재선 씨가 저랑 정말 오래됐다. 멜로디 듣고 '오빠 얘기 쓰고 싶다' 하더라. 약간 저의 자화상 같은 얘기들이다. 3월에는 신기했고, 5월에는 꽃이 폈고, 지금의 저는 9월이라고 표현했다. 사계절이 있다면 내 인생은 어디쯤 있을까. 9월이라 했는데 여태까지 표현하지 않았던 가사 같다. 피아노 한 대로 해달라는 팬들 얘기가 있었는데 이번에 처음 해봤다. 그동안은 자꾸 갖다 붙이는 게 있었는데 영화 '라라랜드' 노래 듣다가 '피아노 한 대로 노래 써보자' 해서 썼다.
'내가 나에게'는 마케팅 개념이 아니라 저로서는 그게 타이틀이다. 이걸 콘서트 장에서 부르면서 같이 느끼고 싶다. 애착이 가는 노래 중 하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에 대해서는 어떤 분들이 '코로나19' 시기하고 맞아떨어진다고 최근에 쓰신 곡이냐고 하셨는데 사실 되게 오래전에 쓴 곡이다. 팬들도 이제 나이가 있고 삶의 무게가 생기고 직장에서도 위로 아래로 스트레스 받지 않나. 추억이나 슬픔, 이런 걸 건드려서 노래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의 우리를 다독여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그래서 만들었다. 선공개한 이유도 팬들도 저도 너무 힘들었다. 가수는 노래로 소통해야 하는 게 맞아서 '힘내라'는 의미에서 선공개했다.
Q. 통상적으로 선배의 곡을 리메이크하는데 이번 30주년 앨범에서는 후배 뮤지션들의 곡들을 리메이크했다. 어떻게 성사됐나.
A. 숨은 명곡 찾기가 선배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저도 느꼈지만 솔직히 말하면 음악이 너무 많다. CD 한 장에 10곡만 듣는 게 아니라 음원사이트 가면 수십만 곡이 있지 않나. 마음만 먹으면 1년을 들어도 다 못 듣는 음악의 홍수다. 그 안에서 메리트를 찾기 힘들다.
더필름의 '사랑, 어른이 되는 것'부터 말하면 혼자서 지인들을 기다리다가 소주 한 잔을 마시고 있었다. 근데 나오는 노래가 너무 좋은 거다. 좋아서 계속 듣다가 플레이리스트에 담았다. 정규앨범 할 때 이 노래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더필름과 통화를 했는데 더필름도 언젠가 승훈이 형이랑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연락이 와서 깜짝 놀랐다고 하더라. 운명 얘기하길래 남자끼리 그런 얘기 하지 말라고 했다.(웃음) 그렇게 실었다.
'워킹 인 더 레인(Walking in the rain)'을 부른 모리아라는 친구는 CCM 계열이다. 그쪽에서는 유명하다. 난 '워킹 인 더 레인'을 2007년도에 라디오로 들었다. 샤워하다가 머리에 비누 칠을 하는데 지금은 휴대폰이 있어서 갖다 대면 무슨 노래인지 알 수 있는데 그땐 VJ가 친절하면 무슨 노랜지 말해주고 아니면 모르는 거지 않나. 다행히 그 VJ가 '워킹 인 더 레인'이라고 말해줬다. 거품 묻은 상태에서 메모를 적어놨는데 그 친구를 3, 4년 후에 만났다. 모리아가 내 노래 '라디오를 켜봐요'를 편곡했고 그리고 나서 최근에 '내가 너 노래 하고 싶다' 해서 같이 하게 됐다. 들어보시면 '이게 2007년도 나온 노래야?' 하는 생각이 드실 거다. '아프지 말길' 이런 노래다.
Q. 신승훈에게 페르소나 같은 정서가 있다면 '애이불비(哀而不悲, 슬프기는 하지만 겉으로 슬픔을 나타내지 않음)'라고 생각한다. 실제 이번 앨범에 담긴 것 같기도 한데 어떤가.
A. 저의 가장 기본적인 정서는 '애이불비'다. 워낙 김소월 님의 시를 좋아했다. '미소 짓는 얼굴로 울고 있었지' 그 가사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있는 것 같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도 보면 '힘내란 말은 하지 않을게' 그 또한 애이불비 정서가 있다. 아무래도 제 분신 같은 앨범이기 때문에 '애이불비' 정서가 있을 것 같다. 일반적인 질문 같은데 콱 찌르는 질문이라 내가 진정성 있게 대답하고 있나 생각이 든다. 다른 노래들도 마찬가지 같다. 애이불비 정서는 잊고 지냈지만, 의도치 않았지만, 당연히 갖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Q. 애이불비 정서가 신승훈의 목소리와 음악을 통해 나올 때 더욱 크게 와닿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A. 제 목소리가 밝게 불러도 슬픈 목소리가 있다. 억지로 울리려고 하는 것 같진 않다. '보이지 않는 사랑'도 보면 '그리움 때문일 꺼야'에서 꺼야를 심하게 울었으면 상대방도 안 울었을 거다. 저도 참으려고 했기 때문에 '나도 참을래' 하다가 눈물을 흘리시는 것 같다. 저의 정서도 정서지만 목소리가 발라드에 특화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댄스곡이 안 어울린다는 건 아니다. '엄마야'도 목소리는 어울렸다고 생각하는데.(웃음) 발라드에 있어서만큼은 애이불비가 좀 더 실리지 않나 싶다. 점점 담담해지려고는 노력한다. 애이불비를 처음에 잘못 해석했다. '슬프죠?' 그게 더 슬플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비효과'로 알게 됐다. 이제야 철이 드나 보다.
Q. 구설수 없는 비결?
A. 가요계 수도승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종교는 무교인데.(웃음) 스캔들이 없어서 나온 별칭일 수 있지만 재미없을 수 있는데 저도 이러고 싶진 않았다. 이렇게까지 될진 몰랐다. 자기관리 철저히 한다는데 중요한 게 30년 동안 관리를 할 수 있을까 싶다. 있는데 없는 척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이런 성격이라 이렇게 된 것 같다. 칩거 생활을 오래 했는데 저도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안에서 이런 성격인데 밖에서는 아닌 척? 그런 건 없는 사람 같다. 30년 동안 저를 바라봤을 때는 진정성 있게 살려고 노력했다.
Q. CF를 찍은 적이 없는데.
A. 사실 얼마 전에도 CF 제의가 들어왔다. 근데 이게 뭔가 마음가짐 같다. 찍을 수는 있는데 예전에는 음악이라는 것, 음악하는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접근이 신중했던 것 같다. 근데 30년 지나고 제작자의 길을 걷고 있다 보니 '로시를 이렇게 해주면 더 잘되지 않을까' 당연히 금전적인 게 들어가니까 저도 흔들린다. 지금 많이 흔들리고 있는데 중요한 건 찍고 안 찍고가 아니라 찍게 되면 사랑받은 만큼 되돌려드려야 하지 않나. 찍고 나서도 공익적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근데 또 들어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웃음)
Q. 콘서트 '더신승훈쇼'에 대해 미리 귀띔해준다면?
A. 요즘엔 앨범 내는 게 좀 뜸해져서 오랜만이라 정말 열심히 하려고 했다. 전국투어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 공연까지 다 돼 있는 상태였다. (근데 코로나19로 취소돼서) 의기소침해졌다. 콘서트가 미뤄지면서 너무 힘들더라. 선수가 올림픽에 출전하기 몇 달 전부터 몸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처럼 프로듀서였다가 가수가 되는 변신 과정이 필요한데 콘서트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됐다. 저는 그래도 그동안 스마트하게 어떤 일이든지 잘 대처해왔다고 생각한다. 근데 이건 '멘붕'이 올 정도였다. 그리고 세종문화회관이라는 건 중요했다. 제가 94년도에 거기서 콘서트를 했는데 그 당시엔 제가 신세대 가수였다. 신세대 가수가 세종문화회관에 선다 해서 센세이셔널했다. 패티김, 조용필 선배님들에 비해 어렸으니까. 그때 교복 입고 왔던 친구들이 20년 넘게 지나 '나 그때 앞자리 차지하려고 뛰어왔는데' '카펫이 이랬구나' 추억에 젖을 수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취소된 거다. 스타트부터 꼬였다.
30년 가수의 가장 좋은 점은 대처능력이라 생각했다. 나름 잘 대처해서 콘서트 내용이 바뀌었다. 전화위복이라는 게 시간이 두세 달 미뤄졌기 때문에 더 많은 연출이 들어갈 것 같다. 그래서 보상받고 싶다. '이러려고 연기한 거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게 하려고 노래도 첫 곡이 '미소속에 비친 그대'였는데 그걸 맨 마지막으로 뺄 것 같다. 스타트에도 원래는 안 하는 기법을 할 거다. 콘서트 뒷부분에 쏟아 넣던 걸 오프닝 때 시도할 것 같다. 두, 세 곡 부르고 '안녕하세요. 신승훈입니다' 하기 전에 후련했으면 좋겠다. 제가 후련하면 관객분들도 후련하실 것 같다.
워낙 긍정적인 편이다. '실패할 수밖에 없어' 하는 것도 '실패일까' 생각이 든다. '그걸 겪고 나면 다시 일어서면 되지 않을까' 그런 마인드로 극복한다. 연기되고 취소되는 것만큼 열정이 더 생기더라. '코로나. 네가 내 팬들을 기다리게 만들었다고?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했다. 늦게 만난 대신에 설레는 시간이 더 있었을 거다. 그걸 더 폭발해야 한다. 그걸 저도 기다리고 참고 있다.
Q. 문화예술을 멀리하게 되는 이때 오히려 더 문화예술의 존재가 부각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우리에게 음악이 더 절실한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A. 힘들면 찾게 되는 게 음악이다. 솔직히 영화나 드라마 한 편 보려고 해도 시간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 근데 음악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4분의 미학이다. 한 곡으로 따지면 그 안에 많은 게 들어 있다. 그만큼 짧기 때문에 존재감이 세지 않게 느껴질 수 있지만 노래 한 곡의 힘은 알지 않나. 어느 노래 나오면 중학교 때 소풍 갔을 때 기억이 나고, '이 곡 누구랑 같이 불렀는데' 추억도 생각나고. 짧은 한 곡의 힘이 어느 연도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생각나게 한다. 위로가 필요할 때는 더 빛을 발할 거라고 생각하고 좀 더 찾아들을 수 있을 것 같다.
Q. 팬이라는 존재는 신승훈에게 어떤 의미인가.
A. 저는 운이 좋다. 남아있는 팬들이 많다. 팬들이 결혼하고 애가 하나 둘 있어서 '오빠 죄송해요. 콘서트를 못 가게 돼서' 하다가 둘째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저 키울 만큼 키웠으니까 문화생활 즐기려고요' 하고 다시 오더라. 제 지난번 팬미팅 제목이 '빈 데어, 던 댓(BEEN THERE, DONE THAT)!'이었다. 거기 가봤고 그 느낌 안다. 그게 팬과 저의 관계 같다. 신승훈 콘서트 가면 어떤 느낌이라는 걸 서로 안다. 저도 '엄마야' 때 팬들이 동작을 같이 해줄 거라는 걸 알고 있고 맨 마지막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나 '내가 나에게'를 불렀을 때 힘들었던 사람이 적지 않게 눈물을 흘리고 그걸 보게 될 거라는 걸 저도 안다. 제가 열심히 노래할 거라는 걸 팬들도 안다. 내 팬이 아니라 우리라는 표현을 쓴다. 가족이다. 그렇게 된 것 같다. 다들 제 노래로 태교시켜서 제2의 제 팬들을 만들려는 그들의 노력에 심심한 감사를 드리고 싶다.
[스포츠투데이 윤혜영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