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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산편지] 이기진의 꼴라쥬 파리 collage paris
작성 : 2014년 09월 24일(수) 10:23

꼴라쥬 파리 / 이기진

‘개그 콘서트’보다 재미있는 ‘꼴라쥬 파리’의 ‘네 가지’

2NE1 CL 아빠 이기진의 파리
그림 그리는 이기진의 파리
잡다구리 수집가 이기진의 파리
물리학자 이기진의 파리

이제 세상은 한 사람에게서 적어도 네 가지 모습 정도는 보고 싶어 한다. 2NE1 CL의 아빠이자, 물리학과 교수이고, 그림 그리는 동화 작가이자, 잡동사니 수집가인 저자 이기진이 바라본 파리가 재미있는 이유 또한 적어도 네 가지 이상의 위치에서 바라본 다양한 시선 혹은 관점 때문이다.

세상은 왜! CL을 2NE1의 카리스마 리더로만 생각하나?
저자 이기진에게 CL은 사랑스런 내 딸 채린이다. ‘꼴라쥬 파리’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들을 그리게 된 시작점은 채린과의 오붓한 파리 여행이었다. 2년 만에 맞은 모처럼의 휴가를 파리에서 아빠와 평범한 일상으로 보내고 싶은 채린의 제안은 아빠 인생의 깜짝 선물 같은 즐거움이었다. 미술관 바닥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그림을 감상하고, 배가 고프면 양파 수프를 먹고, 기운을 차린 후에는 길거리를 함께 산보했다. 실제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채린과의 이야기는 이게 다다. 하는 일이라고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작가 이기진은 그렇게 채린과 함께한 시간들이 애틋한 기억으로 남는 것을 경험하면서, 파리에서 혼자 생활하며 만났던 하찮고 평범한 모습들 또한 시간이 지나면 무척이나 그리워질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서 나누었던 공감대, 뭔가를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시선, 지나가지 않을 것처럼 느끼던 시간 혹은 남기고 싶은 순간, 즐거운 아쉬움… 등 파리에서 느꼈던 것들을 콜라주처럼 남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CL and I at 아비뇽 프랑스, 1992


세상은 왜! 그림은 아이들 혹은 화가들이나 그린다고 생각하나?
어렸을 때는 누구나 한번쯤 화가를 꿈꾼다. 그런데 학교에 들어가서 해를 거듭할수록 색연필이나 크레파스, 그리고 붓 등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물건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물리학과 교수로 살고 있는 지금까지도 그림은 작가 이기진에게 생활 그 자체다. 대학교 연구실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면서도 틈틈이 머리를 식히기 위해 그림을 끄적거린다. 그러다 두 딸 채린과 하린을 위해 그린 그림들로는 동화책을 냈고, 파리에서의 생활을 그린 그림들로는 <꼴라쥬 파리>라는 그림책을 냈다.

그의 그림은 단순한 라인과 색으로 그려지지만 감상의 포인트는 의외로 디테일에 있다. 구두를 닦는 잠옷 입은 중년부인의 살짝 드러난 젖가슴과 빨간 ‘빤스’, 먹고 버린 체리 꼭지 두 개, 한쪽만 슬리퍼를 신은 발로 조개껍질을 지그시 밟은 신부님, 너무 맛있어서 몰랐다는 양 틀어놓은 수도꼭지, 코 밑의 덜 깎인 수염 혹은 듬성듬성 난 종아리 털 혹은 심판의 시선을 끄는 겨드랑이 털, 그리고 신경이 날카로운 고양이의 곤두선 털까지 (그는 유난히 털에 집착한다.) 그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세상은 왜! 수집은 돈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하나?
‘콜라주collage’는 미술에서 화면에 종이, 인쇄물, 사진 따위를 오려 붙이고, 일부에 가필하여 작품을 만드는 일을 말한다. 이 전시의 제목이 ‘꼴라쥬 파리’인 이유는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파리라고 하는 콜라주의 이미지 속에서 시간과 여유를 갖고 영감을 느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콜라주 이미지를 찾기 위한 방법론은 수집이다. 제대로 된 수집을 하기 위해 작가 이기진은 그림을 긁적이고, 글을 쓰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친구를 초대하고, 산책을 하고, 메신저를 하고, 미술관에 가거나, 주말이면 벼룩시장에 기웃거리고, 그렇지 않으면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파리에서의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수집한 것들 가운데 거창한 것은 하나도 없다. 구둣솔, 빗자루, 기름통, 핸드드릴, 구멍 펀치, 호치키스, 미피 인형 등 골동과 오래된 그림책, 그리고 칼, 감자 칼, 샐러드 바구니, 에마이아주, 청자색 티포트, 과자 통, 버터 담는 통, 시장바구니, 빵 도마 등 살림살이 같은 잡동사니가 ‘꼴라쥬 파리’ 전시에 함께 등장하는 그의 수집품들이다. 소소함 속에서 삶의 영감을 얻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삶의 기술이 수집을 통해 실현된다.

꼴라쥬


세상은 왜! 물리학자는 파리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작가 이기진이 2NE1 CL의 아빠이고, 그림이나 그리고, 잡다구리한 물건이나 수집한다는 이유로 물리학이라는 본업보다 취미에만 몰두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그는 한때 물리를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고, 지금도 물리학이 너무 재미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연구실에 처박혀 지내는 천생 물리학자다. 그의 연구 과제는 그 이름도 생경한 마이크로파 물리학이다. ‘보이지 않는 마이크로파를 통해 세상을 본다면 어떻게 보일까’가 그가 생각하는 물리학의 핵심이란다. 그래서인지 ‘꼴라쥬 파리’에서 그가 바라보는 시선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 그 너머를 향한다.

에펠탑, 세느강, 미라보 다리, 카르노 거리 등 파리를 산책하며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 포도주, 치즈, 바게트, 천연효모 빵, 마들렌, 크루아상, 샌드위치, 볼로네즈 스파게티, 쿠스쿠스, 모로코 과자와 민트 티, 양파수프 등 허기를 달래기 위해 먹었던 매일 매일의 밥 한 끼…. 커피, 리카르, 맥주 칵테일 모나코, 페리에 등을 마시며 여유를 만끽하였던 카페에서의 시간…. 바스키아, 레이몽 사비냑, 이브 생 로랑을 비롯하여 골동품 업자, 화가, 이민자 이웃 등 파리에서 만난 사람들…. 남들이 하찮게 보는 평범한 것들에서 비범한 가치를 발견하고, 누군가 건넨 말 한 마디에서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힘은 그가 물리학자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파리에서 일상을 살며 보낸 시간들의 아쉬운 여운이 파리를 콜라주하며 기다림, 슬픔, 열정, 희망 등으로 변해 다가온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물리학자 카르노의 ‘열역학 제2법칙’만큼의 의미가 있다.

글·사진 장다운 보름산미술관 소장

조병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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