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노진주 기자] "팀원들이 저보고 슛 안 쏘면 두고 보자고 농담을 자주 합니다(웃음). 슈터인 저를 신뢰해줘서 고맙죠"
미국프로농구(NBA) 입성의 꿈을 안고 지난 9월 미국으로 건너간 '장신 슈터' 이현중(20·데이비슨대 1학년·201cm)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숙제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이었다. '농구 울타리' 안에서 동료들과 몸을 부딪쳐가며 생활하는 이현중에게 이는 손쉬운 과제였다. 팀원들에게 믿음을 주는 슈터 역할을 하며 미국대학 농구부 생활에 빠르게 녹아들었다.
이현중이 입학한 데이비슨 대학교는 전미대학체육협회(NCAA) 디비전1 소속으로, NBA 기대주들이 한데 모인 곳이다. 현 NBA 최고의 슈퍼스타 스테판 커리(32·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의 모교이기도 하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환경에, 수준 높은 선수들이 즐비해 있어 다소 위축될 만한 분위기지만 이현중은 NCAA 디비전1 '이주의 신인'으로 2번이나 선정되며 이 같은 우려를 말끔히 지웠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현중이 미국에서 성장세를 이어간 비결은 무엇일까. 이현중은 10일 스포츠투데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미국에 오기 전, 나에 대한 편견을 실력으로 없애자고 여러 차례 다짐했다. 여기서는 잃을 게 없다.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자신감이 붙는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지만 미국에 갓 도착했을 때는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현중은 "처음 경험해보는 선수들과 경기하면서 몸싸움과 수비에서 밀리는 부분이 있었다. 슛 밸런스도 흔들렸다"고 회상하면서 "이후 이를 악물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감독님과 팀원들이 저를 슈터로 믿어주셔서 점차 자신감이 생겼고, 몸싸움도 적응하다 보니 이제는 많이 좋아졌다"고 전했다.
이현중은 지난해 11월 2019-2020 NCAA 디비전Ⅰ 정규시즌이 막을 올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두각을 나타냈다. 시즌 개막 2연패에 빠졌던 데이비슨대는 3번째 경기 만에 노스캐롤라이나 윌밍턴 대학을 상대로 첫 승전고를 울렸다. 당시 이현중은 3점슛 3개를 포함해 두 자릿수 득점을 했다. 이날 단 두 명의 신인만이 코트를 밟았는데, 이현중만 골맛을 봤다.
그때를 돌아본 이현중은 "상대가 강팀은 아니었지만, 대학 입학 후 처음으로 승리했던 경기라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그날 저녁에 부모님이랑 통화하면서 기쁜 마음을 모두 표현했다(웃음). 한편으로는 빨리 다음 경기에서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현중의 활약은 계속됐다. 지난해 12월22일 로욜라-시카고와의 원정 경기에 출전해 26분 동안 홀로 19점을 책임지며 팀을 3점 차 짜릿한 승리로 이끌었다. 야투 성공률은 무려 87.5%(7/8)에 달했고, 특기인 3점슛은 5개나 림 속으로 꽂아 넣었다. 이현중은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다. 커리어 하이 득점을 세워 뿌듯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처음으로 한국인 팬분들이 관중석에서 응원해주신 날이기에 잊을 수 없는 경기다"며 그날을 기억했다.
어느덧 시즌 5개월 차에 접어드는 이현중의 강점은 슛이다. 볼 없는 움직임과 BQ (basketball IQ)도 수준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현중은 안주하지 않는다. 그는 "이젠 다른 팀에서 제가 슈터라는 걸 잘 인식하고 있어 전보다 오픈 슛을 쏘기 힘들다. 그래서 슛 타이밍을 길지 않게 가져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드리블이나 컷팅으로 상대팀 수비수들의 시선을 분산 시켜 동료들에게 찬스를 많이 내주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며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데이비슨 대학교 농구부 동료 마이크 존스와 이현중 / 사진=이현중 제공
아찔했던 순간도 있었다. 이현중은 올 초 가벼운 뇌진탕 증상으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경기 도중 상대팀 선수 팔꿈치에 가격을 당해서다. 이현중은 "부상으로 잠시 운동을 못 하다 보니 복귀 후에 짧은 슬럼프를 겪었다. 이런 일을 한번 겪고 나니 몸 관리의 중요성을 깊이 깨달았다.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스트레칭을 철저히 하고 코어 운동에 전보다 시간을 더 할애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대학 농구부 훈련은 강도 높기로 유명하다. 이현중도 "한국보다 훈련이 확실히 힘들다"며 혀를 내둘렀다. 온몸이 축 처지는 날에는 농구계에 몸담았던 가족들의 목소리를 듣고 힘을 얻는다. 이현중의 어머니는 1984년 LA 올림픽 여자 농구 은메달 신화에 혁혁한 공을 세운 성정아 씨다. 아버지는 하승진, 이대성 등을 슈퍼스타로 성장시킨 삼일상고 이윤환 감독이다. 4살 터울의 친누나도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농구 선수 생활을 했다.
이현중은 "가족과 저녁에 짧게 통화한다. (전화하지만) 사실 가족은 항상 보고 싶다"며 쑥스러운 듯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힘든 일이 있으면 누나랑 전화를 자주 하는 데 정말 큰 힘이 된다. 제 말을 잘 들어주고, 잘 챙겨준다. 매번 느끼지만 나에게 이런 누나가 있어 행복하다"며 깊은 우애를 드러냈다.
아버지 이윤환 감독, 어머니 성정아씨와 이현중 / 사진=이현중 제공
이현중이 미국대학 농구리그를 누비기 위해서는 학업 성적(학점 2.0 이상)도 뒷받침돼야 한다. 보통 농구부 훈련은 수업 시간 이외에 행해진다. 원정 경기가 있는 날엔 부득이하게 수업 출석을 하지 못한다. 이럴 때면 이현중은 교수님께 직접 이메일을 보내 양해를 구한다. 놓친 수업 내용은 친구들에게 부탁해 필기 노트를 빌려서라도 꼭 숙지한다. '농구-공부-농구-공부' 이 패턴으로 하루가 가득 차는 셈이다. 이현중은 "지난 1학기 때 학점 2.4를 받았다. 일반 학생들과 비슷한 점수를 받는 게 솔직히 조금 벅차다. 저는 농구를 공부보다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 운동과 생활에 지장이 안 가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학업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업도, 훈련도 없는 날에는 온전히 그 시간을 즐긴다. 이현중은 "넷플릭스를 시청하기도 하고, 발표 준비나 과제를 하기도 한다. 필요에 따라 맨몸운동도 한다. 최근에는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 빠져 있다"고 웃으면 말했다. 농구공을 잡고 있을 때면 살벌함까지 느껴지지만, 농구공을 놓으면 여느 20살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을 즐기는 이현중이다.
이 모든 순간순간이 4년 뒤 NBA 코트 위에 설 꿈을 가지고 있는 이현중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이현중은 현재에 집중하고자 한다. 그는 "아버지의 조언대로 무엇이든 조급하지 않게 생각하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에 힘을 쏟고 발전해 나가다 보면 기회는 언젠가 오지 않을까 한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이 말 만큼은 힘줘 말했다.
"NBA 진출, 하늘의 별 따기죠. 저의 평생 꿈이기도 합니다. 미친 듯이 노력할 겁니다"
[스포츠투데이 노진주 기자 sports@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