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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준, 자신을 지우는 법 [인터뷰]
작성 : 2020년 01월 20일(월) 17:41

남산의 부장들 이희준 / 사진=쇼박스 제공

[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미쓰백’, ‘1987’ 등 늘 강렬한 존재감을 선보였던 배우 이희준이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오히려 자신을 덜어내고 주변 인물들 안에 녹아들었다. 연기자로서 자신을 지우는 법. 누군가는 손쉽게 해내는 반면 누군가는 가장 어려워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남산의 부장들’ 속에서 이희준은 이야기를 위해 자신을 한껏 낮추고 캐릭터를 그 자체로 남겨둔다.

‘남산의 부장들’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사건을 다룬 영화다. 10·26 사태 40일 전의 긴박한 이야기를 그렸다. 대한민국 대통령 박통, 실제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 등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했으며 영화 ‘내부자들’로 날카로운 시선을 선보였던 우민호 감독 작품이다.

이희준은 극 중 경호실장 곽상천으로 분했다. 대통령을 나라로 여기는 인물인 곽상천은 이병헌과 한 치의 양보 없는 충성경쟁을 예고하는 인물이다. 특히 이희준은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총 25kg을 증량해 외형적으로도 변화를 꾀해 실존인물과 높은 싱크로율을 보였다.

먼저 이희준은 “시사회 후 이어진 호평에 기분이 좋다”면서 “작품의 첫 인상은 차가웠다. 몰입해서 감정 이입하고 싶은 게 관객의 심리다. 인물들의 과거나, 혁명의 순간들 하나쯤은 나올 법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영화를 두 번째 보고 나니 우민호 감독이 애썼다는 게 느껴졌다. 다 알고 영화를 보는데 긴장감이 컸다”고 작품에 대한 소회를 전했다.

특히 우민호 감독과 ‘마약왕’ 이후 두 번째 작업에 임하게 된 이희준은 “‘마약왕’이 뜨거웠다면 ‘남산의 부장들’은 차갑다. 저는 현장에서 적절한 순간에 애드리브를 많이 하는 편이다. 하지만 우민호 감독이 애드리브를 보자마자 ‘컷’하더니 안 된다 했다. 굉장히 치밀한 의도가 있는 작품이다. 정말 연출적인 섬세함이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이어 “‘마약왕’ 때는 너무 뜨거웠다. 답답한 게 있으면 여과 없이 내지르셨다. 반면 이번 영화에서는 정말 차가웠다. 예를 들면 제 첫 등장을 두고 여러 각도로 찍으셨다. 굉장히 섬세하게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절제했다. 올해 일찍 개봉하려 했는데 편집에 심혈을 기울이다보니 연기됐다. 우민호 감독은 다 계획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놀라웠다. 심리적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쏟으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연출적으로 주관을 덜어낸 우민호 감독의 소신이 있었다면 이희준 역시 허투루 연기할 수 없었다. 여러 자료를 토대로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던 이희준은 극 중 인물을 이해하기가 너무나 힘들었다며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연기적으로 가장 심혈을 기울인 지점은 극 중 곽상철이 뭘 믿고 있는지, 왜 믿는지에 대한 대목이다. 대본을 봤을 때는 인물이 다른 인물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확신할 수 있는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연기를 하다 보니 그게 나라를 위한 충성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대본을 받아들었을 때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끝내고 나니 사람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끝낼 때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씩 넓어진다. 배우가 아니었다면 곽상천 같은 인물은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을 것. 영화를 하고 나니 무언가를 맹신하고 있는 이들을 이해하게 됐다.”

그렇다면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것에 대한 부담감 혹은 조심스러움은 없었을까. 이희준은 이를 두고 명쾌한 답변을 전했다. 그는 “준비를 잘 해야 한다는 불안감은 매번 든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는 전혀 없었다. 이 선배들과 한다니 빨리 찍고 싶었을 뿐이다. 다만 대본을 읽은 후의 과정이 ‘내 역할을 이해 못 하겠는데’였다. 이 과정에 모든 노력을 다했다”고 떠올리기도.

이희준은 수많은 물음표 끝에 정답을 스스로 만들며 캐릭터에 더욱 몰입했다. 그의 고민이 있기에 극 중 인물들의 갈등은 더욱 심오하게 담겼고 관객들 역시 어렵지 않게 이야기의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었다. 이희준은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내가 바라본 곽상철은 권력 욕심이 없다. 사심 없이 순수한 마음이 적절하다 생각했다. 오로지 각하를 위한 마음으로 움직였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우민호 감독도 제 생각에 동의했다. 저 역시 조심스럽긴 했다. 배우로서 해야 할 가장 큰 포인트는 인물과 대사를 이해하고, 표현해야 하는 방식이다. 저도 배우로서 복합적인 인물을 하고 싶었지만 만약 그랬다면 달라졌을 것이다”고 밝혔다.

이희준 남산의 부장들 / 사진=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컷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두고 충무로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작업하기 위함이라 전한 이희준. 그에게 자연스럽게 ‘남산의 부장들’ 촬영 현장은 늘 감탄의 연속이었다. 이성민 배우를 두고 많이 배웠다고 밝힌 이희준은 “이성민의 인물 표현을 보고 감탄했다.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방식이다. 그 연기는 머리로 하는 아니다. 인물이 점점 지쳐가는 과정을 분장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그려낸 것을 보고 존경스러웠다. 또 이병헌은 어떻게 저렇게 연기하는지 정말 궁금했다. 빼 먹고 싶은데 소화를 못 할 것 같다. 감탄하는 마음으로 봤다. 첫 촬영 당시에는 이병헌의 얼굴이 그런 표정인지 몰랐는데 영화를 보고나서야 깨달았다. 너무 좋았고 닮고 싶었다. 정말 잘한다. 사실 이병헌은 연기 인생 30년을 메인 캐릭터로 연기를 했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 놀라운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내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의 모습을 현장에서 바라본 이희준은 자신의 연기를 돌아보며 아쉬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솔직히 제 연기를 봤을 때 아쉬운 점이 분명히 있다. 지금와서 보니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싶다. 하지만 1년 전 이희준은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때의 나는 이 극에서 100% 몰입을 했다”고 소신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이희준은 “사실 만족이 안 된다. 전체적으로 다들 아주 날카로운 칼날처럼 연기했다면 전 너무 큰 통나무처럼 연기했다. 저도 어느 부분에서 날카롭게 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우민호 감독이 ‘관객들이 숨 쉴 틈이 필요하다’고 하더라. 이병헌 역시 동의했다. 이병헌에게 너무 심플하게 연기하지 않았냐고 물어봤더니 오히려 ‘네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었다’고 말해줬다. 나는 이른바 ‘덩어리’ 연기를 한 셈”이라고 너털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이희준은 분명 자신의 방향성과 조금 다른 방식의 연기를 체득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평소 이희준의 연기 스타일은 캐릭터에 연기하는 본인을 살짝 덧입힌다고. 이를 두고 이희준은 자신이 연기를 할 때 가장 즐기는 부분이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고의적으로 스스로를 덜어내야 했다고 설명했다.
“나는 자신도 모르는 내면에 관심이 많다. 그런 인물을 연기 할 때가 가장 재밌다. ‘남산의 부장들’에서 아주 고의적으로 레이어드를 제거하며 연기하려 애썼다. 아주 복합적인 인물, 이중적인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 인간적이고 매력 있지 않냐. 다음 목표는 더 사람 같은 인물 섬세한 방어기제를 표현해보고 싶다. 앞으로 그런 연기를 더 준비하려 한다.”


[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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