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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으면 팬 자격 없다?"…팬싸컷 문화, 이대로 괜찮나 [ST기획]
작성 : 2019년 12월 07일(토) 09:30

엑소 방탄소년단 워너원 / 사진=DB

[스포츠투데이 김샛별 기자]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고 싶지만, 막상 갔다 오면 현타가 오는 곳이에요."

팬이라면 한 번쯤은 스타와 가까이서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꿈꾼다. 팬들에게 있어 팬사인회는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최소 20장~최대 100장, 천차만별 팬사컷

아이돌을 기준으로 대부분의 팬사인회는 앨범을 구매한 이들을 대상으로 하며 추첨을 통해 대상자를 선정한다. 앨범 한 장당 한 번의 응모 기회가 주어지며, 보통 100명 가량의 팬을 뽑는다. 추첨 방식은 대개 구매자와 구매 수량을 엑셀에 입력한 후 추첨하는 전산추첨 방식을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추첨은 세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엑셀 입력 후 자동으로 추첨하는 랜덤 방식과 앨범을 많이 산 순으로 나열한 후 당첨자를 선정하는 방식, 기준을 정해놓고 그 이상 산 구매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랜덤 추첨 방식이다. 랜덤인 첫 번째 방식과 달리 두 번째, 세 번째 방식은 소위 '줄 세우기'인 셈이다. 여기서 탄생한 신조어가 바로 '팬사컷'(팬사인회와 커트라인의 합성어. 안정적으로 팬사인회에 가기 위해 사야 하는 앨범의 양)이다.

'팬사컷'의 기준은 아이돌 그룹마다 천차만별이다. 취재를 위해 만났던 여러 아이돌 팬들의 경험담을 종합한 결과, 엑소, 방탄소년단, 워너원 등 유명 보이그룹들은 대략 100장을 컷으로 본다. CIX 등 데뷔 전부터 팬층을 보유한 신인 보이그룹들의 '팬사컷'은 30장~50장이다. 반면 걸그룹의 경우 보이그룹보다 비교적 컷이 낮은 편이다. 레드벨벳 등 유명 걸그룹의 경우 20~30장이 기준이며, 트와이스의 경우는 이보다 조금 더 높은 편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대략적인 기준이며, 정확한 '팬사컷'은 알기 힘들다. 아이돌 팬 A씨는 "팬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팬사컷' 공유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팬사컷'이 공유된다면 팬들은 그 기준만큼 앨범을 살 테고, 자연스럽게 '팬사컷'은 더 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이 앨범 10장 살 때, 30장을 산 사람들은 팬사인회를 갈 수 있었다. 하지만 '팬사컷'이 알려진다면, 30장은 기준점이 되고 기존에 가던 사람들조차 추가로 더 많은 앨범을 사야 한다. A씨는 "때문에 팬사인회를 가본 사람들은 자신이 몇 장 샀는지 안 알려주려고 한다. 반면 못 가본 사람들은 무턱대고 많은 양의 앨범을 사기에는 자신이 없기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레드벨벳 트와이스 / 사진=DB


◆'팬싸컷', 정말 이대로 괜찮은가요?

문제는 매해 수많은 아이돌들이 데뷔하고 컴백하는 동안 '팬사컷' 역시 끝을 모르고 치솟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워너원 팬의 팬사인회 탈락 인증샷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해당 팬은 총 213장의 앨범을 구매했지만, 팬사인회에 당첨되지 못했다는 말과 함께 426만 원이 적힌 앨범 구매 영수증을 게재했다. 이 밖에도 약 850만 원가량의 비용을 앨범 구매에 사용했지만 당첨되지 못한 팬도 있었다.

이제는 '팬사컷'의 끝이 어디까지일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다. 때문에 '팬사컷'을 향한 우려 섞인 시선도 존재한다. 먼저 팬사인회 추첨 방식이 아무리 줄 세우기일지라도, 100%의 확률이 아니다. 즉 팬들은 일종의 도박을 하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아이돌 팬들 중에는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없는 청소년 팬들도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때문에 '팬사컷'의 과열 양상이 청소년 팬들에게조차 지나친 소비를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자)아이들 CIX / 사진=DB


◆소속사의 개입과 조정 필요, 그러나 현실성 부족

일부는 치솟는 '팬사컷'을 지켜보기만 하는 소속사의 방관 태도를 지적한다. 또 소속사가 자체적으로 나서 앨범 구입의 상한선을 두는 등 해결방안을 제시하며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소속사 입장에서 팬사인회의 궁극적인 목표는 앨범 판매를 통한 이익 창출이다. 때문에 소속사가 개입해 조정하는 건 다소 어려운 부분이다.

팬들 역시 앨범 구입에 제한을 두는 건 현실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돌 팬 B씨는 "앨범 구매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내 아이돌을 1등 시키자는 마음으로 앨범을 많이 사기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C씨는 "팬덤 간의 경쟁도 있다. 다른 아이돌이 '팬사컷' 10장이라고 하면, 우리는 그 이상이 돼야 한다는 심리"라고 전했다.

팬들은 팬사컷이 올라도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어떤 조정이나 개입대신 팬사인회의 질이 달라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팬사컷은 매해 올라가는데, 정작 팬사인회 현장은 그 값어치를 못 한다고 느끼는 일부 팬들이 존재하는 것. C씨는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가까이서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팬사인회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하지만 막상 가면 현타 올 때가 있다. 30만 원, 50만 원 써서 갔는데 내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다. 길면 30초 짧으면 3초다. 이것마저도 내가 말을 잘해야만 시간을 끌 수 있다. 떨려서 말을 못 하면 인사만 하고 나오는 거다. 돈도 쓰고 긴 대기 시간을 버텼지만, 막상 한 마디만 나누니까 끝나고 허탈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팬사인회에 가면 팬들의 대화를 끊는 스태프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온 팬들에게 짧은 대화마저 허락되지 않는다. 팬들은 많은 걸 요구하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위한 일이니 부담, 아니 부당한 '팬사컷'도 감내하고 있다.

[스포츠투데이 김샛별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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