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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땅콩 회항' 이후 삶이 뒤바뀐 남자 [직격인터뷰]
작성 : 2019년 11월 27일(수) 18:00

사진=DB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우리 삶은 크고 작은 사건의 연속이다. 중요한 건 사건 자체가 아니라 이를 겪은 뒤의 변화다. 한 사건을 계기로 인생이 뒤바뀌는 변화를 맞이했지만, 이에 좌절하지 않고 굽히지 않는 신념과 용기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이를 만났다.

2014년, 전 국민을 공분케 했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삶이 뒤바뀐 남자,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을 만났다. 그는 2017년 정의당에 입당한 이후 지난 10월부터 국민의 노동조합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며, 최근 홍콩에 가서 시위 현장을 살펴보고 조슈워 웡 등 홍콩의 민주주의 활동가를 만나고 왔다고 담담히 근황을 전했다.

'땅콩 회항' 사건 이후 그 삶의 궤도는 크게 변화했다. 그는 "회사에서 사무장에서 승무원으로 강등을 당했고 교묘하고 은밀한, 여러 형태의 2차 가해에 시달렸지만 꿋꿋하게 버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뜻을 모은 동료들과 민주노조를 설립했다. 이를 두고 그는 "과거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행동들"이라며 "제 안에 질 수 없다는 강한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이것이 '땅콩 회항' 사건 후 달라진 개인적 변화라고. 그는 사회적으로도 '갑질'의 심각성에 대한 사람들의 경각심이 높아진 계기로 봤다. 박창진은 "갑질이 사람을 망가뜨리고 수백 명이 탑승한 비행기까지 회항시키는 것을 보며 많은 분들이 충격을 받았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저를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다. 그만큼 사회에 던진 파장이 컸다"고 했다.

박창진이 대한항공 등을 상대로 제기한 인사상 불이익과 불법행위 등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은 최근 대한항공이 7000만 원을 지급하란 2심 판결이 나왔다. 이같은 판결까지 약 2년의 시간이 걸렸다. 개인이 거대 기업을 상대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그 역시도 고된 일이었다. 수많은 2차 가해, 피해자 다움을 강요하는 상황 속에 끊임없이 노출되며 육체적으로 물리적으로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도 시달렸다. 하지만 신념을 꺾을 순 없었다. 박창진은 그 이유에 대해 "그들이 저의 존엄성을 훼손하게 둘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저는 회사에 소속된 사람이지 그들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저를 하인처럼 대하고 윽박지르며 부당한 대우를 했다. 저는 현재도 이 싸움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갑과 싸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많은 에너지와 비용도 든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그럴수록 자신을 다잡았다. 그는 이것이 단순히 개인의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아직도 이 싸움은 진행 중이다. 견고한 갑은 쉽게 흔들리지 않겠지만 저의 싸움을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고 그런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 세상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기에 꺾이지 않고 지금까지 왔다"는 그는 "'땅콩 회항' 사건이 발생한 지 벌써 5년이 지났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계시고 관심을 많이 갖고 계시는 걸 느낀다. 저의 싸움이 한국 사회에 메시지로 전달되는 상황에서 더 용기를 내고 있다"고 했다. 특히 함께 용기를 낸 직원연대 노조 동료들과 수많은 연대와 지지가 있어 버텨낼 수 있었고 가족의 한없는 믿음도 큰 도움이 됐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그렇기에 박창진은 흔들림 없이 꿋꿋이 서서 견디는 것일 테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자 헌법질서의 원리임에도 이를 지키며 산다는 것은 이처럼 대단하고 강인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다.

사진=영화 접전 갑을전쟁 스틸


박창진 역시 아직 우리 사회는 갈 길이 멀고 더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최근 제약회사 회장의 수행기사 폭언 사건을 소재로 한 지대한, 박노식 주연의 영화 '접전: 갑을 전쟁'을 보면서 여러 감상이 들기도 했단다. 그는 "회장의 모욕적인 언사가 계속되는데 영화 대사라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듣기 힘들었다. 특히 '넌 언제나 폐기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명심해라'라는 말은 회사가 노동자를 대하는 인식 중 하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실제로도 '때려서 말을 듣게 하거나, 5천만 원만 주면 된다'는 등 노사관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진 이들이 많고 이는 그가 노조 지부장으로 활동하면서도 들으며 크게 분노했던 말이기도 했다.

영화에선 갑질에 대한 통쾌한 응징이 벌어진다. 이 자체만으로도 짜릿한 판타지의 여운을 주지만 그렇기에 현실과의 괴리감이 더해지기도 한다. 이에 대해 박창진은 "정말 영화 같은 장면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사법부와 제가 제기했던 소송이 떠오르기도 했다. 한국에서 제대로 된 판결을 받을 수 없을 거란 주변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진행했고 2심 판결에도 아쉬움이 있다"며 "한편으론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에 유리한 판결이 나온단 국민들 의식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란 생각도 했다. 그렇기에 사법계의 피나는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영화 속 '갑질' 회장은 "돈이 분수"라고 한다. 박창진은 "현재 사회에서 계급을 가르고 분수를 나누는 그 자본을 건드리지 않고는 갑질 없는 사회가 될 수 없다. 또한 갑질 하는 세상을 벗어나기 위해선 인간에 대한 애정과 상대에 대한 존중이 몸에 배어야 하는데 이는 각 개인과 함께 사회적 캠페인 등이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영화계의 '갑질' 행태, 이른바 스크린 독과점과 거대 배급사의 공격적 마케팅으로 인해 영화 향유권과 다양성이 침해되고 있는 영화 시장에 대해서도 폭넓은 견해를 전했다. 그는 "좀 더 많은 분들이 이런 독립영화를 보셨으면 한다. 외국에 비해 한국 독립영화 환경이 녹록지 않다. 거대 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독립영화계가 더 건강해져야 한다. 거대 자본이 투입되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영화로 영화관이 채워지면 우리 사회에도 큰 손실"이라며 "영화계에도 갑질이 있다는 것을 시민도 아셔야 하고 시장논리에만 기대어 방치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박창진은 이 사회가 자본 권력과 기업의 갑질로 노동자가 직장을 잃고 인격이 말살되고 있다고 했다. 그가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경험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노동자의 인권과 사회의 불평등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되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계에 입문한 것 역시 "정의당에서 당직을 맡은 이후 노동 현장을 방문하고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며 한국 사회에 약자를 위한 정치가 절실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최근 방문한 홍콩 시위 현장에서도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을 때 민주주의와 인권이 어떻게 유린되는가를 봤다"며 "그렇기에 정의당에서 국민의 노동조합 특별위원회를 맡게 된 것이다. 노동자의 소중한 권리와 인권을 지키는 방향의 활동을 하며 한국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길을 닦아 나가려 한다"는 포부를 전했다.

이처럼 시련과 좌절을 딛고 견고한 성읍을 쌓은 박창진의 심지는 견고했다. 두려움과 흔들림 없이 변화를 맞이해 나아가는 그는 어떤 상황에도 믿음과 신념을 지켜낼 것이란 확신을 줬다.

사진=DB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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