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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머니' 정지영 감독의 가치 있는 이야기 [인터뷰]
작성 : 2019년 11월 13일(수) 18:00

영화 블랙머니 정지영 감독 인터뷰/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정지영 감독은 좋은 이야기꾼이다. 끊임없이 소통하며 이 시대의 가장 가치 있는 이야기, 외면해선 안 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 용기와 소신은 그 자체로 존엄한 것이다.

정지영 감독도 이른바 '론스타 먹튀 사건'을 그리 잘 알진 못했다. 하지만 내막을 조금씩 알아갈수록 누군가는 분명 해야하는 이야기였다. 알게 된 이상 그냥 흘려 넘겨선 안 됐다. 현시대는 금융자본주의 시대, 즉 "돈이 돈을 버는 시대"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사는 많은 국민들은 이 실체를 모른다. 이를 아는 건 극 소수의 엘리트다. 그들이 어떤 권력과 결탁해 어떤 농락을 저질러도 모른 채 당하는 거다. 이를 알아야 감시할 수 있지 않겠나. 그들에 의해 좌우되면 안 되겠단 것이 감독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 '블랙머니'(제작 질라라비)다.

실제 사건은 워낙 방대한 데다 복잡하고 얽혀 있는 인물도 많았다. 이야기를 완성하기까지 무려 6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정지영 감독의 기조는 한결같았다. 무조건적인 목표는 관객들이 쉽고 재밌게 이야기를 접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사들이는 과정의 본질, 복잡한 메커니즘 자체를 다 무시하자."

쉽게 말해 70조 자산가치의 은행이 2조도 안 되는 헐값에 팔렸다. 그것도 누군가 조작한 단 다섯 장의 팩스를 근거로. 이에 대해 수많은 시민, 사회단체의 반발이 있었고 해당 사건을 조사한 감사관들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론 그렇게 헐값에 팔려나갔고, 그럼에도 해당 과정으로 인해 외국 투자사는 손해를 봤다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천문학적 금액의 배상금이 걸린 국제재판을 제기했다. 패소할 확률이 99%인 이 거대한 전쟁의 내막을 국민은 반드시 알아야 했다.

정지영 감독은 "몇 가지 크게 맥을 짚고 좇는데도 사실 어려운 사건이다. 그래서 양민혁(조진웅)이란 경제를 모르는 검사를 세웠다. 양민혁이 사건을 배워나가듯, 관객들도 배워가며 따라가다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관객이 억지로 사건을 따라가야 된다면 이해하기 어렵고, 그렇다면 자신은 실패한 것이라는 감독이다. 영화의 목적은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하는 감독으로서의 연출관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양민혁은 '막가파' 검사다. 억울하게 한 사건에 휘말려 제 누명을 벗기 위해 불도저처럼 달려든 그가 검은 사건의 실체를 알아갈수록 분노하고 뜨거운 사명감에 휩싸인다. 그가 토하는 마지막 울분에 쾌감과 연민, 공포와 분노 등 온갖 감정이 격정적으로 휘몰아친다. "그렇게 느꼈다면 성공한 것"이라고 웃어 보인 감독은 "양민혁의 외로운 싸움에 가슴이 아프다면 공감했다는 거다. 그건 바로 현실을 인식하게 된 거고, 우리가 몰랐던 금융자본의 실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깨달음"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그는 우리가 이 실체를 알게 됐다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그 목적을 위해 이 어렵고 복잡한 사건을 '블랙머니'란 상업영화로 풀어낸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우리가 아무리 공부해도 그들만의 세계다. 그들이 장난치면 우리는 모른다. 극복해야 될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하고 이건 혼자의 힘이 아닌 온 인류가 같이 해야 될 문제"라고 했다. 또한 영화를 본 뒤 억울하고 화가 난다면 가만히 있지 않으면 된다고 했다. 무언가를 하면 된다고.

영화 블랙머니 정지영 감독 인터뷰/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사실 감독조차 마지막 양민혁의 고발 신을 촬영한 뒤 이를 연기한 조진웅의 어깨를 툭툭 치며 "너, 나를 울렸다"라고 했단다. 처음 조진웅을 캐스팅 한 뒤 그가 어떻게 연기할지를 미리 예상했던 감독은 예측을 벗어난 그의 연기에 놀라기도 했다. "처음엔 오버하는 게 아닌가 했는데 어느새 깨달았다. 제가 생각한 양민혁보다 더 양민혁 같더라"고 했다.

정지영 감독은 줄곧 시대의 아픔과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왔다. '블랙머니' 또한 부조리한 금융 엘리트들이 엄청난 부를 축적할 동안 천문학적 세금을 내야 하는 '눈뜨고 코베인' 국민들의 현 상황을 아프게 직시한다. 하지만 정의로운 막가파 검사 양민혁의 존재는 관객을 웃고 울린다. 정지영 감독은 "'부러진 화살'을 찍으며 영화 캐릭터가 중요하단 걸 깨달았다. 제 이전의 작품들은 보편타당한 지식인들이었다. '부러진 화살'에서 괴짜 두 사람이 나왔더니 사람들이 엄청 재밌어하더라. 그때 깨달은 게 영화를 만들면서 보통 사람이지만 좀 더 재밌고 독특한 캐릭터를 찾자는 거였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탄생한 성격은 불같지만 신념은 올바른 양민혁 캐릭터가 그토록 귀여울 수가 없었다고.

이어 "양민혁이 그렇게 포효하고 난 뒤 인권 변호사가 되지 않았을까. 어떤 계기가 그 사람을 변하게 만들고, 그 변화가 자신의 몸에 잘 맞다고 느끼면 그게 바로 행복인 것"이라는 감독만의 인생철학을 덧붙인다.

무엇보다 감독은 '블랙머니'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말하자면 요즘 젊은이들이 불안한데 그게 참 모호한 불안이다. 공연히 불안한데 그 정체를 모른다. 이창동 감독이 '버닝'에서 이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우리 영화는 그 불안의 정체를 알려주고 있다"며 "그렇기에 젊은 친구들이 반드시 봐줬으면 한다"고 바랐다.

정지영 감독은 어느 때고 부당함과 불합리에 침묵하거나 외면하지 않았다. 늘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시대의 이면을 파헤치고 소외된 이들의 울분을 함께 했다. 온갖 수모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굴복하지 않는 감독의 신념과 용기는 값지고 가치롭다. 그럼에도 감독은 "힘이나 용기가 아니다. 제 관심과 재미가 그 쪽에 쏠려 있기 때문"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이데올로기가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난 그것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고 싶은 것뿐"이란다.

그러며 여태껏 영화를 계속 찍을 수 있는 건 "예술가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여전히 그는 "비록 흥행에 실패했어도 처음 만들 때는 많은 관객들이 보는 영화를 만들겠단 생각으로 찍는다. 관객들과 교류할 거란 생각을 갖고 만든다. 예술적 주관성을 고집하는 건 아티스트다. 저는 시나리오를 써도 계속 젊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보편적인 설득력이 있는지를 확인한다. 그래서 제 작품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오 노력이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대중적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감독의 노력이다. '같이'의 가치를 아는 감독이기에 그는 한결같이 이 시대의 가장 가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일 테다.

감독이 꿈꾸는 사회는 "자유롭고 공정한 사회"다. 영화감독이 되자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좋은 영화감독이 되자고 했다. 근사한 감독이 되기 위해서 지금까지 열심히 해 왔고 모자라긴 하지만 앞으로도 노력할거란 정지영 감독이었다. 이는 명장, 정지영 감독의 소박하고 인간미 넘치는 바람이자 앞으로도 꾸준히 지켜나갈 신념이었다.

영화 블랙머니 정지영 감독 인터뷰/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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