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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의 무게를 감내한, 정유미 [인터뷰]
작성 : 2019년 10월 22일(화) 15:56

영화 82년생 김지영 정유미 인터뷰/사진=매니지먼트 숲 제공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생소한 삶 속에 녹아들어 아픔을 공감하고 연민하며 온갖 감정의 파고를 전달하는 배우 정유미. 그는 이미 '82년생 김지영'의 무게를 감내했다.

누적 판매 100만 부를 돌파한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제작 봄바람영화사)은 1982년 태어나 2019년 오늘을 살아가는 김지영(정유미)의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캐스팅 제안을 받았을 때부터 어떤 에너지가 느껴졌단 정유미는 "해당 자료에 제 이미지들이 있었다. 제 얼굴인데 묘하게 김지영의 모습을 한 사진들이었다. 시나리오를 보고 '이건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정유미는 스스로 시나리오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다. 그는 감독의 전작 단편 영화들을 찾아봤고, 감독이 그리고 싶어 하는 이야기와 제가 느낀 감정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베스트셀러 원작의 영화화란 여간 부담이 될 테지만, 정유미는 "소설은 소설이 해야 하는 일이 있고, 영화는 영화가 보여줘야 하는 것들이 있다"며 확신했다. 좋은 감독과 제작진, 배우들을 만났고 모두가 하나의 마음으로 영화를 꾸려나가는 사람들이었기에 '82년생 김지영'을 택한 정유미다.

그렇게 정유미는 82년생 김지영이 됐다. 꿈 많던 어린 시절, 자신감과 의욕이 넘치는 직장 생활을 거쳐 결혼 후 한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로 살아가는 평범한 여자 김지영. 지금 삶이 행복하기도 하지만,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는 표현하기 미묘한 감정들을 정유미는 오롯이 담아냈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수많은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면서도 이를 당연하게 감내해야만 했던 지영의 남 모를 속앓이와 슬픔은 정유미의 섬세한 연기로 더욱 담담하면서도 아프게 와 닿는다. 여운도 꽤 먹먹하고 짙다. 정유미 또한 시나리오를 다 읽고 나서 한동안 대본을 덮고 가만히 있었단다.

사실 그는 살면서 불합리한 차별을 크게 느껴본 적 없었다. 그는 "있었겠지만 기억을 안 할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제가 하는 일로 비교하면 저는 감사한 일이 더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작품을 통해 한 여자로서, 사람으로서 알게 된 것들이 많다고 했다.

특히 연기하며 생각보다 울컥했던 장면으로 어린 시절 지영이 엄마의 꿈을 묻는 신을 언급했다. 선생님이 꿈이었던 엄마는 오빠들 학비를 벌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미싱 공장에서 일했고,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살다 보니 꿈을 잊은 지 오래였다. 그런 엄마에게 "지금 하면 되잖아"라고 말하는 순수한 지영의 모습과 그런 딸을 애틋하고 기특하게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이 담긴 신. 정유미는 "정말 뭉클하고 가족들 생각도 많이 났다. 이런 삶을 당연하게 살아왔지만 당연한 게 아니지 않나"라고 공감했다.

지영이 빵집을 지나며 아르바이트 구인 광고를 보고 망설이는 신도 그렇게 와 닿더란다. 그는 "극 중 남편이 '네가 하고 싶은 일이야?'라고 물어본다. 그게 너무너무 하고 싶은 일이라기보단 자신도 어떤 해방감을 잠깐이라도 느껴보고 싶지 않았을까. 다른 여러 장면도 많았지만 유독 그 신은 더 지영에게 연민이 가더라"고 했다.

육아를 경험해본 것도 새로운 체험이었다. 팔목 아데나 힙시트 등을 착용한 설정에 대해 정유미는 "아이는 그냥 안으면 되는 건 줄 알았다. 아이를 하루 종일 안고 있으니 그게 없으면 안 되더라"고 했다. 집안에 아이 용품이 따로 있고, 세제 조차 유아용 세제가 따로 있는 영화 속 미장센들은 스스로를 더 몰입하고 녹아들게 만드는 요소였다고.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이처럼 보편적인 삶으로 들어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생소한 체험을 했다. 하지만 정유미는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로 겪어보지 않은 것들을 해야 하는 것이 배우의 몫이고, 공감이 가도록 연기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했다.

사진=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


김지영은 감정의 파고가 크다.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하고 자신이 희석된 것 같지만, 또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야 하기에 이를 크게 드러내지도 못하는 인물. 배우로서 섬세하고 디테일한 연기가 필요하고 이를 표현하기란 여간 쉽지 않았을 테다. 정유미 또한 "차분해지면서 격한 감정들이 오갔다. 감정의 진폭이 컸다"고 했지만 오히려 "연기하며 단순해지려 노력했다"고 했다. 그는 "배우로서 작가가 그려내고 싶은 이야기를 잘 표현해내는 게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사심 없이 단순해져야 더 잘 된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또한 제작진들이 지영이 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준 몫이 컸다고 공을 돌렸다.

원작을 보며 감정에 몰입한 것도 컸다. 집중을 해야 할 때 시나리오보다 원작 소설 속에 세밀하고 촘촘한 묘사가 돼 있는 것들을 활용했다. 영화와 겹쳐지는 신을 찾아서 읽고 촬영에 임하기도 했다. 특히 신경 쓴 것은 지영이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내는 신이었다. 그는 "여러 톤을 생각해봤다. 하지만 연극적으로 확확 변한다면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감정 전달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타인의 목소리로 아픔을 토로하고 공감하던 김지영이 드디어 제 목소리를 찾고 냉정하고 차가운 세상을 향해 일갈하는 신은 해방감과 더불어 뭉클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정유미는 "그게 우리 영화가 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개인적으로 이런 보편적인 삶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사람들에게 더 쉽고 편하게 닿을 수 있는 얘기니까 희망적이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고 털어놨다.

그가 말하길 '82년생 김지영'은 마냥 밝고 행복한 엔딩은 아니지만, 희망적이며 '그래도 괜찮아. 한발 한발 하루하루 나아지겠지'라는 여운을 준다고. 정유미는 "그런 게 삶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며 찰나의 여운에 잠기기도 했다.

매 작품 이야기 안에 잘 녹아들고 캐릭터 안에서 공감을 일으키는 인물이 되길 희망한단 배우 정유미는 "저라는 배우를 선택할 때 제게 주신 믿음을 부응하고 싶은 마음"이란다. 얼떨결에 데뷔했지만 좋은 작품을 만나 지금까지 잘 오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하고,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변한 게 없는 것 같으면서도 변한 듯한 삶. 이런 삶을 살며 정유미는 "이왕이면 더 괜찮은 사람이고 배우이고 싶다"고 소망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정유미 인터뷰/사진=매니지먼트 숲 제공


영화 82년생 김지영 정유미 인터뷰/사진=매니지먼트 숲 제공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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