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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광, 그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인터뷰]
작성 : 2019년 10월 22일(화) 11:38

정재광 버티고 / 사진=팽현준 기자

[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쉴 새 없이 타오르는 화로 같은 배우가 있다. 어떤 이야기도 자신의 것으로 체화시키며 끊임없이 소화시키는 백색 같은 배우. 신인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다부진 가치관과 정진하려는 의지가 돋보이는 인물, 바로 정재광의 이야기다.

정재광의 첫 상업영화 데뷔작 ‘버티고’(감독 전계수·제작 도로시)는 현기증 나는 일상, 고층빌딩 사무실에서 위태롭게 버티던 서영(천우희)이 창 밖의 로프공과 마주하게 되는 감성 영화다. 극 중 정재광은 현기증 나는 고층빌딩 속 사무실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는 서영을 바라보고 지켜보는 로프공 관우 역을 맡았다. 정재광은 사연 있는 캐릭터 관우를 완벽히 소화, 상업 영화의 첫 주연답지 않게 놀라운 연기력을 선보이며 극의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린다.

정재광은 2016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수난이대'로 독립스타상을 수상한 후 '열혈사제', '구해줘' 등에 출연하며 대중에 눈도장을 찍은 바 있다. 수려한 외모와 기본기 탄탄한 연기력을 자랑한 정재광은 ‘버티고’를 통해 충무로 라이징스타 반열에 오르기까지 이르렀다.

그는 이제 막 본격적인 배우 인생의 시작점에 서 있다. 이를 두고 정재광은 “배우를 하며 이렇게 바빴던 적이 처음이다. 체감은 아직 나지 않는다”면서 “전계수 감독님과 배우들 모두 ‘지금을 즐기자’고 하더라. 처음인데 어떻게 즐기냐. 나 빼고 천우희와 유태오 둘 다 즐기고 있더라. 아직까지는 인기를 체감 못 하겠다. 대신 작품에 대한 평을 많이 보는 편이다. 현실에 와 닿아 위로가 됐다는 분도 있고 제 칭찬도 있었다. 특히 눈빛과 목소리에 대한 칭찬이 기억에 난다”고 말했다.

작품은 개봉 이후 건물 유리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는 로프공의 시선으로 많은 메시지를 전한다. 특히 현대인들의 소통 부재를 색다른 그림으로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에 정재광은 “영화를 처음 볼 때는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더라. 두 번째 봤을 때는 관객들의 평이 이해가 갔다. 이후 세 번째는 몰래 영화관을 가서 봤다. 관객들이 못 알아보더라. 날 알아볼 거라는 생각은 없었다. 영화가 의도하는 바가 잘 전달 됐는지 정말 궁금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기도 했다.

정재광 버티고 / 사진=팽현준 기자


그런 만큼 첫 상업 영화 주연작을 맡은 정재광에게 쏠리는 스포트라이트 역시 컸다. 이에 대한 소감은 어떨까. 그는 “당연히 걱정도 있지만 쉽게 내려놓는 성격이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 한다. 또 무던하려 노력한다.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 한다”고 의연한 태도를 드러냈다. 덧붙여 그는 “캐릭터를 표현할 때 영감을 받기보다 내 안의 무언가를 스스로 끄집어냈다. 관우와 비슷한 면은 묵묵히 해내는 성격이다. 하지만 나는 관우랑 달리 말이 너무나 많다. 줄여야 할 정도다. 말의 소중함을 느끼게 됐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다면 전계수 감독이 정재광을 선택한 이유가 새삼 궁금해졌다. 전계수 감독의 10년 간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버티고’. 그런 만큼 정재광에게 핵심적인 인물인 관우를 맡긴 연유가 있을 터. 이에 대해 정재광은 본인 역시 궁금해서 여쭤봤노라고 토로했다.

그는 “전계수 감독님은 그동안 제가 연기했던 인물들의 공통분모를 ‘결핍’이라 표현했다. 극 중 관우 역시 큰 결핍이 있는 인물이다.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고 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이런 거라는 것을 생각했다. 감독님의 연출적 관점에 맞추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이후 중간부터는 혼자 완성시켜야 했다. 일기를 쓰면서 인물의 시점을 바라봤다. 그런 식으로 관우의 감정과 생각을 몸에 체화하려 했다”며 쉽지 않았을 과정을 덤덤히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계수 감독의 남다른 조언이 있었다고 전했다. 정재광은 “감독님이 ‘현장에 명상하듯 와라. 아무 생각하지 마라’. 내가 해석했던 것이랑 일맥상통했다. 더 자신감이 붙어 연기를 했다”고 덧붙였다.

“로프를 타고 건물에 매달리는 모든 장면들이 다 어려웠다. 아무리 세트장이지만 3층 높이에서 했다. 이것도 익숙하게 해야 하고 무서웠고 또 무서웠다. 물론 와이어도 달았지만 공포스러웠다. 키스신도 쉽지 않았다. 사실 저보다 천우희가 힘들었을 것 같다. 촬영 당시 감독님이 실제로 호흡이 변해야 한다고 하면서 제 힘으로 오롯이 천우희를 올려주길 바랐다. 너무 힘들어서 실핏줄이 터지기도 했다. 대신 힘든 만큼 아름답게 나왔다.”

그런가 하면 정재광은 천우희와의 키스신 장면을 두고 “NG는 별로 없었다. 여러 각도에서 찍느라 2, 3번 촬영했을 뿐이다. 그래도 배우 인생의 첫 키스신이라 부담감이 있었다. 그전부터 천우희와 많이 친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마지막 장면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은 같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정재광은 선배 연기자인 천우희의 첫 호흡을 떠올렸다. 그는 첫 촬영 당시를 몸으로 체감했다고. 정재광의 말을 빌리자면 첫 촬영장인 옥상 한 가운데서 천우희의 눈을 쳐다보는 순간 공기가 그를 관우 그 자체로 만들었다. 그 공기는 오랫동안 유지되며 정재광의 관우를 완성시켰다.

아픔과 동시에 순수한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했다는 평을 받는 그는 정작 스스로에게는 꽤 박한 점수를 매겼다. 정재광은 작품 속 자신의 연기에 대해 “100점 중 5점이다. 사실 점수는 짜야 한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어떻게 만족할 수 있을까”라면서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그렇다면 정재광에게 ‘버티고’는 어떤 의미로 남을까. 이에 그는 “위로의 영화다. 용기를 준 영화. 배우를 그만두지 말고 정진하라는 뜻이다. 모든 배우들이 그렇게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습관처럼 찾아온다. 관점을 변화시키면서 그 지점을 극복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정재광은 드라마 ‘구해줘’, 영화 ‘수난이대’, ‘복덕방’ 등 매년 한 작품 이상 선보이고 있다. 마치 계단을 하나씩 밟아 올라가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정재광은 스스로의 필모그래피를 가끔 돌이켜본다고 전했다. 의외의 답변을 두고 그는 “내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궁금한 마음이다. 제 연기하는 모습이 재밌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잘 구현해냈을지 궁금했기 때문에 재밌다”면서 끝 없는 탐구적인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호기심과 열정으로 가득찬 이 배우의 미래가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정재광은 자신의 연기적 목표에 대해 “자기가 살아온 흔적을 연기의 깊이로 만들고 싶다. 또 반대로 아예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 두 모습 다 내 이상향”이라면서 “롤모델은 이병헌, 하정우다. 김윤석과 최민식의 영화를 보고 자랐다. 학창시절 때 ‘올드보이’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주변 친구들에게 용기가 돼 주고 싶다. 자기 일을 꿋꿋하게 하다보면 좋은 기회가 온다는 선례가 되고 싶다. 저 또한 하정우, 곽도원을 보면서 의지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 목표다.”

배우라는 직업을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을 항상 상기시키는 정재광의 모습에서 짐짓 명배우의 뉘앙스가 느껴지기도 했다. 이처럼 정재광은 느리지만 다부진 태도로 주어진 기회를 충실하게 밟아가고 있는 연기자다. 그의 목표는 꽤 단순하면서도 포부가 느껴졌다. 저 너머 어딘가를 응시하는 정재광의 단단한 마음가짐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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