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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맨' 완벽함에서 자유로워져도 좋다 [무비뷰]
작성 : 2019년 10월 02일(수) 16:32

영화 퍼펙트맨 리뷰 / 사진=영화 퍼펙트맨 포스터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지극히 보편적인 이야기지만, 사람의 마음을 끄는 강력한 힘이 있다. 완벽함에 대한 욕구가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삶의 찬란한 가치를 예찬하는 짠하고 유쾌한 휴먼 코미디 영화 '퍼펙트맨'이다.

영화 '퍼펙트맨'(감독 용수·제작 MANFILM)은 '꼴통 건달'과 '전신마비 시한부' 로펌 대표,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이 엮이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장수(설경구)는 죽기 전 제 '버킷리스트'를 도울 인물로 영기(조진웅)를 택했고, 영기는 조직 보스 돈을 빼돌려 주식을 했다가 다 날린 통에 그리 어려울 것 없어 보이는 장수의 부탁을 들어준다.

돈 많고 성공했지만 결핍이 있는 인생과 하류 인생의 만남. 이같은 설정은 어디선가 봤음직할 만큼 단순하고 전형적인 클리셰다. 하지만 흥미로운 건 '퍼펙트맨'은 이처럼 흔하고 보편적인 설정과 이야기를 세련되고 찰지게 풀어낸다는 것이다. 인물과 그들의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디테일한 설정, 낭만적인 미장센들이 차별성을 갖기 때문이다.

영기는 누구보다 완벽함을 동경하는 남자다. 짝퉁 명품 옷을 걸치고도 잔뜩 폼을 부리고, 집은 달동네에 살지언정 벤츠는 남자의 영혼이라며 애지중지 끄는 철없는 인물. 반면 장수는 모양 빠지는 거 질색이라며 생명유지장치도 거부한 채 병실에서도 정갈한 슈츠 차림을 고집할 만큼 빈틈없고 완벽해 보이지만 내면엔 깊은 상실과 괴로움, 자책을 간직한 인물이다. 이처럼 완벽함의 기준이 다른 두 남자가 얽혀 들어간다.

장수는 눈치 보지 않고 저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단순 무식한 영기가 당황과 짜증을 유발하면서도 제법 흥미롭다. 영기는 별 생각이 없다. 어쩌면 신난다. 장수가 죽으면 저가 날린 보스 돈 7억이 거저 해결되니까. 그런 두 사람이 장수의 황당한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클리어해 나갈수록 관계성이 깊어지고 유대감이 형성된다. 영기는 장수를 저도 모르게 믿은 만큼 실망하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고 연민을 느끼기도 하며, 장수는 제게 호기롭게 털어놓는 영기의 과거사 속에서 남모를 유약함과 슬픔을 캐치해낸다. 이렇듯 감정을 공유하고 우정을 쌓아가는 두 사람의 '브로맨스'는 '웃픈' 감상을 전한다.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스토리에도 살아있는 캐릭터들의 넘치는 생동감이 이를 매력적으로 탈바꿈시킨다. 특히 영기는 전신마비면 그곳 기능도 죽어있는 거냐며 꼼짝 못 하고 누워있는 환자 앞에서 19금 동영상을 틀어놓고, 만취 상태로 그 침대를 뺏어서 세상모르게 자기도 한다. 살벌하고 무서운 보스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을 해놓고도 잘 차려입으란 보스의 말에 긴장하긴 커녕 제게 패션을 논하냐며 열 올리는 등 하는 짓은 '밉상 철부지'다. 그럼에도 미워지지 않는 건 그의 본성이 실은 따뜻한 정의감으로 가득 차 있음을 이미 알게된 탓이다. 장수는 근엄하고 까칠한 겉모습과 달리 영기를 만나 과거를 회귀하며 진정한 성찰을 이룬다.

영화 퍼펙트맨 리뷰 / 사진=영화 퍼펙트맨 스틸


이들의 존재는 각각 서로에게 유기적으로 맞물려 성장하고 성찰을 거듭하게 한다. 또한 "살아보니 그렇게 애쓰며 살 필요 없더라"는 장수의 말은 그 자체로 큰 위로를 전한다. 이는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다. '퍼펙트맨'은 완벽함을 강요하고 추구하는 현시대, 이를 벗어나 자유로워져도 충분히 괜찮다는 격려이자 위안을 전하고픈 영화다. 부족하고 힘들어도 그저 '오늘'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일인지, 그 '보통'의 삶이 주는 찬란함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렇기에 영화가 담은 부산 곳곳의 전경은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 부산이 지닌 특유의 정서가 담겨있다. 특히 황령산 전망쉼터의 야경은 신비롭고 화려하지만, 극 중 일만 하다 허리가 굽어 죽은 영기 모친의 하얀 뼛가루가 뿌옇게 뿌려진 곳이기도 하다. 낡은 욕망과 후회와 그리움 등 온갖 감정이 배어 나오는 이질적인 공간 활용이 돋보인다. 감독은 이처럼 두 캐릭터가 처한 상황과 감정을 장소를 통해 담아낼 만큼 섬세한 연출을 자랑한다.

용수 감독은 첫 입봉작임에도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영화를 완성했다. 가장 '보통'의 이야기와 설정들을 감각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영리하게 꿰뚫고 있다. 무엇보다 스스로 체화하며 깨달은 '오늘의 가치'를 전하고자 하는 제 진심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좋은 이야기꾼이다. 잔망스러운 철부지 '흥신흥왕' 조진웅은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다. 가뜩이나 제 홈그라운드 부산에서 맘껏 뛰놀며, 연기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눈짓 몸짓,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펄떡이는 생명력이 느껴질 정도다. 특히 마지막까지 익살을 떨며 80년대 홍콩영화를 따라 하는 모습은 미친 듯이 사랑스럽다. 10월 2일 개봉.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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