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가장 보통의 연애'. 얼핏 보면 얌전하고 평이한 타이틀이지만 속내는 다르다. 영어 제목인 '크레이지 로맨스'(Crazy romance)'만 봐도 그렇다. 사랑하며 느끼는 설렘, 분노, 후회, 미련, 부정 등 온갖 '미친 감정의 널뛰기'가 과감하게 담긴 매력적 현실 로맨스 영화의 등장이다.
대개의 로맨스 영화는 남녀의 이상적인 판타지를 그리며 완벽하고 정형화된 사랑의 환상을 고집한다. 하지만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감독 김한결·제작 영화사 집)는 다르다. 사랑에 대한 낭만적 포장을 죄다 까발리고, 이제 막 각자 최악의 이별을 경험한 남녀를 통해 '끝에서 시작되는' 리얼한 연애사를 낱낱이 담은 영화다.
한 남녀가 있다. 남자는 파혼 뒤 지독한 이별 후유증에 시달리며, 매일 술을 마시고 "뭐해?" "자니?"를 쉼 없이 보내는 전형적인 '구남친' 재훈. 바람을 피워놓고 뒤끝까지 있는 남친을 떼어놓는 중인 여자는 사랑도 해볼 만큼 해봤고 남자도 다 거기서 거기라며 환상조차 꿈꾸지 않게 된 선영이다.
영화의 주무대는 이들의 직장이다. 대표 포함 직원이 열명도 채 안 되는 작은 광고 회사. 여기에 새로 출근하게 된 선영이 팀장 재훈과 최악의 상황에서 서로를 인지하며 스토리는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사랑 방식은 물론 이별 뒤 극복하는 방식마저도 판이하게 다른 두 남녀의 솔직하고 현실적인 모습은 보는 이들에 저마다의 기억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별 후 술 취해 전 연인에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며 그리워하거나 혹은 좋았던 시절의 기억은 잊고 악감정과 분노만 남아 독한 저주를 퍼붓기도 했을 테다. 이처럼 현실에서 분명 겪었고, 봤음직한 에피소드들의 대향연이다.
그리고 때론 사랑의 역사(?)가 술자리에서 시작되기도 하듯, 재훈과 선영은 술을 매개로 마음을 열고 감정이 싹튼다. 술자리에서 오가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대화들, 여기에 더해진 응큼한 술자리 게임 등은 리얼한 사실감을 더한다.
특히 누구도 완벽한 정답을 내릴 수 없는 연애 방식은 기막힌 공감을 부른다. 재훈과 선영은 이해할 수 없는 서로의 연애 방식에 대해 답답해하고 화를 내며 질색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계속 신경 쓰고 마음이 쓰이는 과정의 반복이다. 분명 서로 끌리면서도 일부러 거리를 두고, 진심을 감추면서도 다가가고 싶어 한다. 이런 복잡하고 미묘한 연애의 이면과 인물의 심리를 자세히도 짚어낸다.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리뷰 / 사진=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스틸
영화는 이처럼 누구나의 보편적인 감정선을 건드리는 '보통의 연애'를 미사여구 없이 담백하게 담아낸다. 누구나 다 겪는 평범한 이야기임에도 영화적 재미는 상당하다. 이제껏 이토록 적나라하고 현실적인 연애사를 대놓고 드러낸 화법은 생소했던 탓이다. 게다가 평범한 캐릭터임에도 세세한 디테일과 영화적 설정들이 이들을 매력적으로 탈바꿈하게 한다. 이를테면 매번 숙취로 시작되는 재훈의 집에 각종 입간판은 물론 나날이 쌓여가는 옥수수 더미와 뜬금없이 고양이와 비둘기가 등장하는 설정이다. 또 술자리에서 실수한 뒤 다음날 오히려 근엄하게 체면을 차리다가도 이내 허둥지둥하는 상황들에 직면하게 돼 웃음을 유발한다. 빈틈없고 꼿꼿하며 직설적인 성격의 선영은 만취 상태에선 마음껏 흐트러져서 앙큼하고 귀여운 주사를 펼친다. 이는 유쾌한 매력을 더하고, 각각의 캐릭터를 지닌 직장 사람들의 모습도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게다가 직장인들이라면 십분 공감할만한 직장 내 에피소드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다. 단합대회랍시고 주말 등산을 강요하거나 회식도 업무의 연장선이라는 피곤한 상사는 물론, 뒤에서 남의 이야기를 함부로 떠들며 흉보는 군중 심리까지 리얼한 직장 사회를 고스란히 그려낸다. 그렇기에 신랄한 단체 카톡방 에피소드는 씁쓸한 공감을 부르기도 한다.
연애나 인생의 가치관은 누구나 제각각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고 사랑하는 과정이다. 때론 상처 받고 괴로울 때도 있지만, 이로 인해 또다시 위로받고 감정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 셈이다. 이토록 영리하게 '보통'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특별한'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다. 무엇보다 과도한 볼터치를 장착한 채 제2의 인격이 튀어나온 듯 주사 연기의 절정을 펼치는 김래원, 공효진의 '포복절도 리얼 케미'는 놓치기 아깝다. 10월 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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