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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 곽경택 감독의 따뜻한 진심 [인터뷰]
작성 : 2019년 09월 24일(화) 11:24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곽경택 감독 인터뷰/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스스로 마음이 동하지 않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매번 그의 이야기는 뜨거운 진심이 묻어난다. 역사가 묻고 감춘,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이야기를 꺼내놓은 이유도 그래서였다. 빛바래 퇴색된 772명의 어린 청춘들에 진심을 다해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전한 곽경택 감독이다.

한국사의 커다란 비극인 6.25 전쟁. 그 속에 군번 없는 영웅들이 있었다. 영광도 명예도 없고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기억되지 않은 그들의 역사를 곽경택 감독은 스크린에 되살려냈다. 평균 나이 17세, 제대로 된 훈련조차 하지 못하고 군복조차 보급받지 못한 채 폭풍우가 휘몰아치던 날 밤, 험난한 장사리 해변에 뛰어든 772명의 학도병 이야기를 그린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 장사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이행된 양동작전이었다.

곽경택 감독은 이 비극적 실화를 영화로 만들기가 두려웠다. 그럼에도 공동 연출에 나선 이유는 하나였다. '미안함' 때문이었다. "저도 전혀 몰랐던 이야기다. 당시 학도병들은 군번없는 용사로 어른들을 따라다니며 싸운 줄만 알았다. 그렇게 학도병들이 단체로 가서 어려운 작전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게 미안했다"는 그는 작가로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마이너리티의 희생이란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실제 사건을 알아갈수록 참담함은 커졌다. 당시 고등학생들은 대한민국에선 하이 클래스의 수재들이다. 똑똑하고 형편이 좋아 고등학교까지 진학한 학생들이 나라를 구하겠다고 나섰는데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을 갑자기 사지로 몰았다. 심지어 총 한번 못 쏴보고 파도에 휩쓸려간 아이들도 많았다. 해안가로 가는 길에도 수많은 총탄이 날아들었다. 감독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런 희생이 세상에 어디 있겠나. 거꾸로 내가 그 입장이거나, 내 아들이 그랬다면 어땠겠나"라며 비통함을 토했다.

전혀 준비도 하지 않고 있다가 아이들을 그렇게 사지로 내몬 결정을 한 군 간부, 그런 권력자들이 미웠다. 그랬기에 그들을 비난하고 싶었단 감독이다. 실제 영화는 북한군에 대한 묘사는 자세히 이뤄지지 않는다. 극의 유일한 안타고니스트 설정은, 아이들을 총알받이로 내몰고도 국가를 위한 일이라며 그릇된 신념을 지닌 권력자들로 묘사됐다. 그렇기에 영화는 더욱 전쟁의 참상과 끔찍한 비극을 극대화한다.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곽경택 감독 인터뷰/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곽경택 감독 인터뷰/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곽경택 감독은 "그들의 희생에 충실하자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는 키울 수가 없는 이야기다. 괜히 CG나 화려한 미술을 그리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청춘을 꽃피워보지 못한 학도병들의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췄다. 처음엔 이야기의 중심축을 학도병들을 데리고 장사리 해변에 가는 이명준 대위로 뒀다. 하지만 결국 학도병들이 중심이 되어야만 하는 이야기였다. 감독은 과감한 선택을 했고, 김명민 또한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곽경택 감독은 "김명민 씨에게 정말 미안했다. 그래도 쿨하게 먼저 이해하고 양보해줬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처럼 감독과 배우들 모두 작품의 가치와 의의만을 두고 사력을 다했다. 학도병들의 이야기는 미숙하고 앳된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부터 처절한 두려움, 치기 어린 행동 속에 숨겨진 여림, 그 나이 또래의 순수한 감정과 우정 등의 감정이 드러나며 더욱 생생한 몰입감과 안타까운 연민을 이끌어낸다.

캐릭터들의 설정도 곽경택 감독이 직접 겪거나 들었던 이야기들이다. 6.25 전쟁 당시 칠대 독자였던 이모부 대신 누나가 면사무소를 찾아가 "내 동생이 군대 가면 대가 끊기니 내가 가겠다"고 했단 사연은 정체를 숨기고 입대한 종녀 캐릭터에 녹였고, 아버지의 다섯째 사촌은 11남매 중 다섯째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 어릴 때 남의 집에 맡겨져 자랐는데 다시 집에 돌아와도 그 엄마가 그리 다섯째를 미워했단다. 이 캐릭터 설정은 삐딱하고 반항심 넘치는 하륜 캐릭터에 녹여냈다. 이렇게 있음 직한 인물들의 사연은 당시 시대상을 드러내며 리얼함을 더했다.

전쟁 영화라면 으레 스케일이 큰 법이고, 쉽게 감정 소모를 할 수 있음에도 곽 감독은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오롯이 진심과 사실적인 이야기만으로 공을 들였다. 그는 "제가 아무리 쥐어짜 봐야 감정이 나오는 게 아니다. 더 지나친 감정이 들어가면 오히려 제가 보기 힘들다"고 했다.

이같은 연출론은 늘 가슴에 새겨놓은 아버지의 말씀 덕분이기도 했다. "네 손안에 들어온 이야기가 아니면 절대 하지 마라. 이거를 네 손에 넣고 이렇게도 비벼보고 만들고, 완전히 떡 주무르듯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잘하지. 네 손 사이즈보다 큰 얘기를 올려놓고 건방지게 아는 척하지 마라." 이는 곽 감독이 평생을 이야기꾼으로 살며 한결같이 염두하고 경계하는 것이었다.

곽경택 감독은 "장사리유격동지회 회장님께서 감사패를 주시겠다고 했다. 감사패는 저희가 드려야 하는데. 제가 그걸 받을 자격이 있나 모르겠다.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우리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정서는 되도록 거짓말 덜하고, 약자 편에 서는 게 아닐까. 만약 이기고 싶고 누구 앞에 서고 싶고 돈을 벌고 싶으면 정치인이나 비즈니스맨이 되면 된다. 우리같은 직업을 택한 사람들은 내가 감동받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한테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이토록 다감한 사람이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 속에 빛바랜, 아름답고 애달픈 청춘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따스한 위로를 전하고픈 감독의 진심은 넘치게 전해졌다.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곽경택 감독 인터뷰/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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