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배우라는 책임과 소명. 김명민은 그 누구보다 절실히 이를 인지하며 스스로의 영향력을 올곧게 쓰기 위해 애쓰는 이다. 역사 속에 잊혀진, 아니 잊혀졌다 말하기도 면목없을 만큼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기억하지 않는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기 위해 그는 제가 할 수 있는 역할과 노력을 모두 기울였다.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감독 곽경택·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은 772명 학도병들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투입됐던 양동작전인 장사상륙잔전 실화를 그린 영화다.
김명민은 장사상륙작전을 알지 못했다. 영화가 꽤 오랫동안 준비 과정을 거치며 제작된단 사실은 알았다. 곽경택 감독이 제게 이 장사리 전투 실화를 들려줬다. 그는 기록으로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이 전투의 배경과 상황들을 상세히 설명하며 당시 느낀 흥분과 충격을 되새겼다. "굉장히 대단한 작전이었다. 적의 뒤통수를 쳐서 시선을 돌리게 하고 그 사이에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던 위대한 작전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작전이 역사 속에 묻혀있을 수 있나." 김명민이 처음 느낀 감상은 그랬다. 이후엔 분노로 이어졌다. "왜 이런 어린아이들을 전투에 총알받이로 썼나. 왜 성공한 작전임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작전이라고 치부하고 감추려 했나."
분노는 자책과 부채감으로 변모했다. 그는 "인천상륙작전 양동작전이라는 단순한 기만술이라 하기엔 어마어마한 공적을 세운 사건이다. 너무도 드라마틱한 사건이었다. 772명의 어린아이들이 거의 다 죽고, 포로로 잡혔다가 2년 만에 살아 돌아온 사람도 있었다"며 "심지어 이 아이들은 군인이 아니었다. 시간을 더 되돌려 올라가면 어린 민초들, 힘없는 백성들이 자신의 몸을 투하하며 나라를 지키려 했던 수많은 역사들이 있었다. 가장 가까운 현대사에 이런 사건이 있었음에도 모르고 있었다는 게 한심했다"고 했다. 이처럼 숨겨진 역사 속 이야기는 그에게 여러 가지 감상을 일으켰다. 결국 제 몫은 딱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 사건을 알리자."
김명민이 연기한 이명준 대위는 실존 인물 이명흠 대위를 바탕으로 한 캐릭터이며, 전투 경험이 없는 학도병들을 데리고 악천후와 열악한 상황 속에서 장사리 상륙을 시도하는 인물이다. 실제 이명흠 대위는 전투에 참여해본 적 없는 정보와 교육을 담당하는 군인이었다. 학생을 뽑아 유격대 훈련을 교육하던 그는 갑자기 아이들을 사지에 모는 명령이 떨어지자, 자신이 뽑은 아이들이니 제가 가겠다며 책임을 짊어진 인물이었다. 하지만 영화에선 이명준 대위의 드라마가 생략되고 학도병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당연히 배우의 분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김명민은 장사상륙작전을 알리는 것에만 의의를 뒀다. 그는 "감독님과 얘기할 때 '최대한 리더는 감성적이 되지 말자'고 했다. 이명준 대위의 전사나 심경이 더 드러나선 안 됐다. 결국 이 영화는 학도병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작품이 살아야 이 사건이 더 진실되게 다가갈 수 있다고 판단한 그였다.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김명민 인터뷰/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실제로 당시 전투에 참여한 참전 용사 생존자들을 만났을 때 전해 들은 이야기는 그의 마음을 더욱 요동치게 했다. 매해 열리는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식에 열명도 채 안 되는 참전 용사들이 남아 있었다. 바다를 향해 "얘들아 잘 있냐. 나도 너희들과 함께 갔어야 하는데"라며 이제 늙어버린 자신들을 기억할 수 있겠냐고 떠나간 친구들을 향해 울며 외치는 그들의 말에 비통함을 감출 수 없었던 김명민이다. "친구들을 먼저 보낸 게 평생의 한이라고 하시더라. 그 말을 듣는데 미치겠더라"는 그는 그새 눈시울이 붉어졌다.
당시 장사리에 도착한 학도병들은 엄청난 폭풍우가 휘몰아쳐 암초에 부딪힌 배는 좌초되고 무작정 임무 완수를 위해 뛰어들었다. 겨우 뭍에 도착했지만 엄청난 총탄이 날아들었고 살기 위해 손톱이 빠지는데도 모래를 파서 몸을 숨겼다. 그 사이에도 주변 친구들은 총에 맞아 다리와 눈이 없어지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고지를 점령했지만 3일 후에도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았다. 식량과 전투 물자도 부족한 상황에서 6일을 버티며 인민군들의 식량 보급로도 폭파시켰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작전이었다. 그렇게 국가를 위해 희생했지만 현재 우리는 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이 죄스러웠단 김명민이다.
촬영하면서도 그들이 말한 잔상이 계속 아른거렸단 그다. 학도병을 연기한 배우들이 끈끈한 정을 나누고, 수통에 도시락을 받아먹으며 해맑게 웃고 재잘대는 모습을 볼 때 그것이 실제 학도병들의 모습이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그는 "제 아들이 16세다. 아직도 응석받이인데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이런 대단한 일을 했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얼마나 지옥 같았을까"라며 "우리는 재현을 해서 흉내를 내고 있고, 촬영이 끝나면 쉴 수 있었지만 그들에겐 '컷'이 없었다"고 했다.
자연스레 통감하는 비극이었다. 또한 그 역시 아버지이기에 이 영화에 참여한 건 더 깊은 의미가 있었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가슴 아픈 비극이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 미래, 후손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며 기억하지 못할까 너무 속상했다. 역사를 기억하고 이어주며 물려줘야 할 우리 세대조차 알지 모르고 있는 역사라면 어떻게 역사가 이어지겠나." 그렇기에 이 영화가 세월이 지나도 계속해 회자될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길 바랐다.
김명민은 오랜 제 배우 인생을 지나며 확고한 인생론을 정립한 지 오래다. 선배 배우로서, 인생을 먼저 산 선배로서, 어른으로서의 몫을 하자는 것이다. "배우로서의 입신양명만을 위해선 연기하지 않겠다"는 것이 김명민의 신념이다. 자신이 배우기에, 제가 가진 재능과 영향력을 환원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지난 2005년 배우로서 모든 걸 포기하고 유학을 결심했을 때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촬영했던 '불멸의 이순신'이란 작품이 그에게 깨달음을 줬다. 투병 중인 소아암 환자들이 "장군님이 저렇게 힘들게 나라를 지켰는데 우리도 이 병을 이길 수 있다"며 힘을 내고, 60대의 여류화가는 투병 중에도 드라마를 보며 기뻐했다. 이를 두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고 표현한 그는 "가슴이 이상했다. 전 이 바닥에서 허덕이며 힘들고 머물지 못해 떠나려 했던 일개 배우인데, 그런 제게 그토록 송구스러울 만큼 감사와 칭송을 하며 삶의 원동력을 삼고 희망을 갖는다는 것이 놀라웠다"고 했다. 그 후로 자신을 위해 연기하지 않고 재능을 옳게 발휘하도록 결심했다. 그래서 남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후 '베토벤 바이러스'를 촬영할 때도 생계에 부딪혀 꿈을 잃었던 부모들이 드라마를 보고 장롱 속에 넣어뒀던 악기들을 새로 꺼내 꿈을 찾게 됐단 편지를 받았다. 그 기분은 말로 다 할 수 없단다.
이처럼 김명민은 배우로서 제 역할과 역량의 무게를 여실히 체화했다. '배우로서의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 삶의 방향을 바꿨음에도 "거창한 건 아니"라며 저를 낮추는 김명민이다. 배우로서의 사명, 인간으로서의 신념을 굳세게 지키는 그의 에고는 깊고 견고했다.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김명민 인터뷰/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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