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호영 기자] 코미디언 안일권은 천직을 만났다. 웃기는 거 하나만큼은 자신 있으니, 다 덤비라는 각오다. 싸움 실력에는 허풍이 깃들었지만, 웃음에 대한 철학만큼은 100% 진짜다.
최근 스포츠투데이와 추석 맞이 한복 인터뷰를 진행한 안일권. 그는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를 통해 '일권아 놀자' 채널을 운영 중이다.
콘셉트는 자칭(?) 연예계 싸움 순위 1위의 주인공이다. 허풍을 떨며 과장된 무용담을 덤덤하게 늘어놓고, 뻔뻔한 표정으로 구체적인 혈투 당시를 설명하며 연예계 싸움 고수들의 실명을 언급하는 개그다.
안일권의 주장에 따르면 가수 김종국, 그룹 DJ DOC 김창열, 방송인 강호동, 배우 마동석 등 싸움하면 빼놓을 수 없는 풍문의 고수들도 본인 앞에서는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고.
어쩌다 잡은 콘셉트냐 물으니 안일권은 "동료 노우진과 사석에서 농담 따먹기 하듯이 주고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이야기였다. 원래 그런 허풍 섞인 장난을 많이 치는 편"이라며 "그런 개그는 어설프면 안 된다. 내가 진지하게 눈을 부릅뜨면, 상대방은 웃겨 죽기 마련"이라고 밝혔다.
사실 안일권이 흉내 내는 싸움꾼 콘셉트는 평소 그가 싫어하는 인간 부류를 희화화한 것이라고. 안일권은 "'강강약약'의 마음가짐으로 주변 이들을 대하려고 노력하며 산다. 뒤에서는 허세로 무장해 떠들다가 강자와 마주하면 꼬리를 내리는 사람. 혹은 약자 앞에서만 기세 등등한 사람들 있지않나. 풍자하고 비꼬는 개그를 해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러한 '안일권식' 코드는 제대로 '통'했다. 순식간에 15만 명 이상의 유튜브 구독자를 끌어모으고, '일권이 형'이라는 존경심 담긴 애칭이 따라붙었다. 각종 지상파 대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방송인으로서 상한가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카메라 밖에서 만난 안일권에게 진짜 싸움 실력을 진지하게 묻자, 그의 눈빛은 돌변했다. '안일권식' 개그가 곧장 튀어나온 것이다. 그는 "어디서 맞고 다닌 적 없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실생활에서 착안한 아이디어가 어느 순간 콘텐츠가 됐고,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안일권은 이러한 대목이 유튜브 운영의 장점이라고 전했다. 그는 "방송에서 검사를 받고, 꽉 막힌 제한을 두게 되면 코미디언은 위축되기 마련"이라며 "개인 채널을 통해 내가 하고 싶었던 개그를 '안일권스럽게'할 수 있어 가장 기쁜 요즘이다. 감독 안일권, 작가 안일권, 주연 안일권이다. 희극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라고 설명했다.
안일권은 또 다른 성공 요인으로 팬들을 꼽았다. 그는 "정말 고마운 친구들이다. 댓글을 보면서 힘을 얻는다. 나의 개그는 호응이 없으면 자칫 분위기가 싸해질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며 "하지만 팬들이 댓글로 '티키타카' 호흡을 맞춰준다"고 자랑했다.
이어 "팬들 말에 따르면 내가 러시아 이종격투기 선수 표도르를 패는 광경을 목격했단다. 프로레슬러 브록레스너를 때려 눕혔다고도 설명하더라.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팬들이 하는 말이니 그랬었나 보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나에 대한 악성 댓글이 달리면, 이제는 팬들이 알아서 싸워준다. '일권이 형' 애칭을 붙여가며 내가 하고픈 걸 다 하란다"며 "정말 힘이 나는 존재들이다. 내 개그가 모든 사람을 웃길 수는 없다. 하지만 15만 구독자 중 단 한 명이라도 남아있다면, 이 콘셉트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웃겨줄 계획"이라고 자신했다.
팬들 덕분에 비로소 상한가를 달리게 된 만큼 자만하지 않겠다는 각오도 다졌다. 그는 "물들어온다고 무작정 노 젓고 싶지 않다. 그럴수록 노를 놓치고 자빠지기 마련이다. 이 순간을 즐기면서 하던 대로 해야겠다"며 "인기 좀 얻었다고 시건방 떨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주눅 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팬들에게, 대중에게 어떤 개그맨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물었더니 안일권은 "얼굴만 봐도, 이름 석자만 들어도 웃긴 개그맨"이라고 즉답했다. 그는 "가장 싫어하는 게 개그맨이 개그 무대에서 겉멋 들어 멋진 척하는 것"이라며 "웃긴 사람이고 싶다. 사석에서 마주쳐도, 내가 눈에 힘을 줘도, 싸움짱 콘셉트처럼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은 나를 보고 웃겨서 뒤집어졌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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