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3년의 공백. 박하선은 배우로서 비어있던 공간을 인생의 또 다른 경험으로 채워나갔다. 스스로를 가둬 놓은 틀을 이제서야 깼다는 30대의 박하선이 배우 인생 제2막을 알렸다.
박하선은 종합편성채널 채널A 금토드라마 '평일 오후 세시의 연인'(극본 유소정·연출 김정민, 이하 '오세연')을 '평생작'이라고 표현했다. 인터뷰 내내 그가 이번 작품에 가진 애정이 묻어나왔다.
박하선은 극 중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남편 진창국(정상훈)과 공허한 삶을 사는 결혼 5년 차 주부 손지은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오세연'은 끝이 났지만, 박하선은 아직 손지은에서 헤어나지 못한 듯 보였다. 그는 "끝난 게 실감은 난다. 원래는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걸 칼같이 잘하는데, 이번 작품은 조금 어렵다. 아직은 헤어지는 중"이라며 웃었다.
'오세연'은 채널A가 선보이는 첫 번째 드라마. 그렇게 주목받지도, 기대받지도 못 했던 작품이었다. 자신을 "하나에 꽂히면 하나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한 박하선은 불륜이 아닌 이야기에 꽂혀 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오세연'은 지금의 박하선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작품이었다.
이렇듯 박하선이 작품을 선택하는 조건은 바로 '지금의 나'였다. 그는 "배우는 연기를 하면서 성장한다고 생각한다"며 "'하이킥'을 할 때는 젊음이나 싱그러움, 애교 있는 모습을 보여드렸다면 '혼술남녀'에서는 이제 세상을 알게 된 젊은 세대를 표현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생각했더니 바로 이 작품 속의 손지은이었다. 제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해서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오세연'은 '불륜을 조장하는 드라마가 아니냐'라는 우려의 시선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박하선이 맡은 지은은 자신을 '엄마'라 부르는 남편(정상훈)과 싫은 내색도 없이 살아가다 유부남인 교사 정우(이상엽)에게 빠져드는 역할을 맡았다. 주연인 탓에 소재에 대한 부담도 있었을 터.
박하선은 "불륜을 전면으로 내세운 드라마는 맞다. 불륜을 조장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며 "그래서 사회적, 도덕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연기했다. 드라마는 불륜을 해서 처절하게 망가지고 사람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처럼) 가족도 잃고, 주변 사람도 잃고, 그게 불륜"이라고 밝혔다.
또한 박하선은 결말에 대해서도 "해피엔딩이라기보다는 열린 결말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온전한 자신으로 돌아온 상태고, 이들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것"이라며 "작가님이 불편한 분들도 계실 테지만 모두 다 채워줄 수는 없다고 하시더라"라고 말했다.
불륜에 대한 걱정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오세연'은 첫 방송 당일에는 0.9%의 시청률로 시작했지만 최종화에서는 2%(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을 기록하면서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박하선은 "마지막 회 방송이 끝나고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울컥했다"며 "매번 드라마가 끝날 때마다 보는 문구인데도 불구하고 그 의미를 처절하게 느낀 작품이다. 0%대로 시작해서 2%대까지 오는 게 남들한테 별 거 아닐 수 있는데 저한테는 굉장히 의미가 컸다"고 밝혔다. 결혼과 출산 후 첫 복귀작이었던 그의 부담감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이러한 부담감 속 박하선은 같은 일을 하는 류수영이 배우자인 점이 큰 힘이 됐다고. 그는 "격정적인 멜로 드라마라서 (남편이) 개인적으로 기분이 안 좋았을 수 있겠지만 티를 안 냈다. 오래 일한 배우라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만 해줬다"며 "절대 질투 안 할 거라고 했었는데, 하긴 한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이처럼 결혼과 출산으로 잠시 연기자의 삶을 내려두고 박하선은 약 3년간의 공백기를 가졌고, '오세연'을 통해 복귀했다. 그리고 그 공백기는 배우 박하선에게 큰 '자산'이 됐다.
20대 때는 연기가 참 힘들었고, 자만도 했다. 그리고 공백기가 생긴 30대에 자기 반성을 하게 됐다. 그는 "자연스럽게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연기하기 바빠서 주변을 못 챙겼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쉬다가 오랜만에 연기를 했더니 연기가 너무 재밌더라"라고 회상했다.
그가 겪어 온 경험은 참 소중했다. 그것은 곧 자만이 아닌 자산이 됐다. 박하선은 "텅 빈 상태의 제 안에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쌓아둘 수 있게 됐다. 여러모로 많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배우로서 마음가짐이 달라지게 된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이해의 폭 또한 넓히게 됐다. 박하선은 배우 활동 초반 키스신도 굉장히 찍기 싫었다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키스하는 것은 상당히 이상한 감정이었다. 그는 "어릴 때 이런 게 너무 싫으니까 '그만둬야 하는 거 아닌가'하는 고민도 했다"며 "드라마와 영화를 같이 찍을 때였는데 일주일 동안 두 명과 키스신을 찍는데 너무 싫었다"고 일화를 밝혔다.
그런데 불륜이라는 소재까지 이해할 정도가 됐으니. 그는 "배우는 사람이 이해하는 직업이다. 불륜이 개인적으로 싫더라도 이해를 해야 하듯이 말이다. '오세연'을 통해 연기적으로 폭이 넓어지고, 많이 열린 것 같다. 저를 가뒀었는데 무장해제를 시킨 느낌이다. '연기인데 뭐 어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여배우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박하선. 그는 '이상엽과 케미가 좋다'는 반응이 가장 좋았다고. 박하선은 "진짜 사활을 걸고 했다. 여자는 계속 여자이고 싶다. 결혼과 출산 후에도 멜로 드라마 할 수 있고, 남자 배우와 '케미'도 좋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해 좋았던 작품"이라며 뿌듯해했다.
3년 공백기 끝 성공적인 복귀를 알린 박하선은 하고 싶은 역할도, 작품도 많다. '혼술남녀'와 '오세연'을 하면서 총 5년을 쉬었던 그는 "쉴 만큼 쉬었다"고 말했다.
당분간 쉴 생각이 없다는 그는 "(결혼했고, 아이가 있다고) 느슨하게 할 생각은 없다. 드라마 환경이 좋아져서 집에 들어갈 수 있고,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무조건 쉰다"며 "일 열심히 해도 되는 여건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게 너무 아깝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데 제 작품을 많이 남기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의 꿈은 확실했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 되돌아볼 내 작품이 많이 생기는 것.
"'다작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에요. 제가 죽을 때 묘비에 '배우 박하선'이라고 당당하게 남기고 싶거든요. 그러기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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