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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일, 지정생존자' 이준혁, 품격을 높이다 [인터뷰]
작성 : 2019년 08월 26일(월) 09:03

60일 지정생존자 이준혁 / 사진=에이스팩토리 제공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악역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선역과 부딪히는 인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 선함과 악함이 공존하듯 작품 내에서 선역과 한 몸처럼 움직이는 악역이 있다. 선역이 빛이라면 악역은 그림자란다. 스스로 그림자가 되길 자처한, 품격이 다른 악역 이준혁이다.

드라마 '적도의 남자', '비밀의 숲',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에서 악역으로 존재감을 보여준 이준혁. 그가 또다시 악역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갑작스러운 국회의사당 폭탄 테러로 대통령을 잃은 혼돈의 대한민국을 그린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극본 김태희·연출 유종선)다. 그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정치인 오영석 역을 맡았다.

오영석은 폭탄 테러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하며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이를 이용해 정치에 뛰어들어 권력을 휘두른다. 강력한 안보 정책으로 국민들의 신임을 받지만 사실 그는 폭탄 테러의 배후로 어두운 내면을 지녔다. 이준혁은 자신만의 독보적인 표현력으로 악역 오영석을 완성했다. 이에 대해 그는 "작품 당시 오영석과 많이 싸웠다. 정의로운 것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그러나 많이 싸운 만큼 정도 들었다고 했다. 그는 오영석이 죽는 장면을 방송으로 보고 친구가 하나 없어진 기분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이준혁은 오영석과 친해지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악역 연기에 대한 고뇌가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사실 악역이 드라마의 주체라면 이렇게 고민하지 않았을 것 같다. 악역이 극을 끌고 나가면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공감한다. 그러나 '지정생존자'의 주체는 박무진(지진희)이다. 오영석은 최대한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철저하게 박무진의 그림자가 돼야 했다"며 "따라서 오영석의 서사는 썩 중요하지 않다. 불쌍했던 과거들이 다 나왔으면 아마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드라마를 볼 이유가 없어지지 않냐"고 소신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렇기 때문에 오영석은 극의 흐름상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존재감을 지워야 했다. 나는 한마디로 '귀신같은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 무형의 존재 말이다. 만약 오영석이 결혼을 한 설정이면 그가 어떻게 생활할지 느껴지지 않냐. 이 사람은 성적인 것까지도 물음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르게"라고 말했다.

서사가 많이 보이지 않는 오영석이기에 박무진과 한 몸이라는 이준혁의 설명이다. 그는 "한 인간의 몸에서 박무진은 선함이고 나는 악함이다. 박무진이 우유부단한 상황에 놓이면 오영석이 등장해 강력하게 극을 이끈다. 그렇기에 박무진이 성장할수록 내 존재는 쓰임을 다 한 것"이라고 했다.

60일 지정생존자 이준혁 / 사진=에이스팩토리 제공


배우로서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스스로 쓰임을 다 했다고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준혁은 "감독님과도 고민을 많이 했다. 작품만 생각했다. 그리고 깔끔하게 박무진이라는 빛이 떠오르면 사라지는 그림자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며 "특별히 죽기 전 박무진과 만나는 씬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한 장면이지만 여기서 오영석의 이야기를 다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 장면을 보면 오영석은 박무진에게 인간적인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 어쩌면 오영석은 박무진같은 정치인을 기다리다가 스스로 악해진 것이기 때문에 사랑이라고 볼 수도 있다. 솔직히 연인 간의 멜로라고 본다"고 말하며 미소를 보였다.

오영석은 내내 박무진과 강력하게 맞서다가 부하에 의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다소 허무한 죽임이 아니냐는 평이다. 이준혁은 "죽음은 원래 갑작스럽고 허무한 것"이라며 "오히려 허무한 죽음을 맞아서 더 좋았다. 오영석의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에 기능이 끝났을 때 떠난 느낌"이라고 흐뭇함을 표했다.

이렇듯 이준혁은 오영석의 깊은 내면까지 고뇌의 과정을 거쳐 연기에 녹였다. 역대급 악역의 등장이었다. 이준혁은 "봤을 때 그런 느낌인지 잘 모르겠다. 사실 악함으로 뭉친 역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장애물이 악역이라는 부분에서는 충실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준혁의 악역 연기는 하루아침에 완성된 게 아니다. 그는 '비밀의 숲'에서 비리검사 서동재 역을,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에서 부하의 죽음을 묵인한 박중위 역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 그는 "사실 선역을 훨씬 많이 했다. 악역은 몇 개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악역 전문 배우로 봐주신다"며 "그건 아마 악역을 맡았던 작품이 다 잘 돼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의 얼굴에는 선악이 공존한다. 덕분에 선역과 악역에서 자유자재로 연기를 펼쳤을 터. 그러나 그는 "30년 정도 이 얼굴로 살았더니 지겹다. 한 번쯤 얼굴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 바꿀 기회가 있다면 할리우드 배우 드웨인 존슨이 되고 싶다. 얼굴뿐만 아니라 몸도"라고 망언 아닌 망언을 전했다.

이처럼 그는 차근차근 악역 연기를 완성시켰다. 배우에게 쉽지 않은 존재감을 지우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존재감을 지움으로 품격을 높인 이준혁에게 내일이 기대되는 이유다.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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