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현혜선 인턴기자] 배우들에게 최고의 찬사는 무엇일까. 누군가에겐 신들린 연기력, 우수에 젖은 눈빛, 완벽한 딕션 등 기교와 감정일 수 있다. 그러나 배우 유해진은 작품에 녹아드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는 시대극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 시절 그곳에 있을 것만 같은 사람. '국사책을 찢고 나온 남자' 유해진이다.
영화 '택시운전사', '1987', '말모이' 등 근현대사의 굴곡을 그린 작품들에 연이어 출연한 유해진. 그가 시대극에 다시 한 번 도전했다. 이번에는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독립군의 첫 승리를 담은 영화 '봉오동 전투'(감독 원신연·제작 빅스톤픽쳐스)이다. 항일 투쟁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봉오동 한가운데서 그의 노련한 완급 조절 연기는 빛을 발한다. 그는 실없는 농담을 하다가도 일본군과의 전투가 시작되면, 매서운 눈빛으로 항일대도를 거침없이 휘두루는 황해철 역을 맡아 섬세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그렸다.
'봉오동 전투'로 또다시 근현대사의 인물을 연기한 것에 대해 유해진은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단지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내가 이 작품에 필요한가를 고려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고 싶어 선택했다"며 "마치 '말모이' 다음 작품이 '봉오동 전투'라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책임감은 느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대한 무언가를 말하는 게 아니라 작은 사명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교롭게도 작품 선택이 이렇게 됐으니 좋은 효과로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해진은 별다른 이유 없이 해당 작품을 선택했다고 말했지만 유독 대중들에게 시대극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와 관련해 그는 "어떻게 보면 옛날부터 친근감 있는 역할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 예를 들어 불량배 역할을 하더라도 어디 한구석 모자란 불량배라든지, 웃음을 주는 역할을 맡았다. 이런 점이 대중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것 같다. 무슨 역할을 맡아도 친근하게 느껴주셔서 다행"이라고 전했다.
유해진은 이어 "또한 시대극에서 친근하게 느끼는 건 아무래도 얼굴이 한몫하는 것 같다. 내가 되게 세련된 스타일은 아니지 않냐. 왠지 그때 거기 있을 것 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여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물론 최근 tvN '삼시세끼' 시리즈나 '스페인 하숙' 등 예능프로그램에 얼굴을 자주 비춰서 그런 걸 수도 있다"고 말하며 미소를 보였다.
그러면서 "사실 어떤 작품이든 간에 배우들에게 있어 최고의 숙제는 어떻게 녹아드느냐다.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면 자칫 작품 내에서 겉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어떻게 녹을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곳에 있을 것 같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유해진은 좋은 수식어라 만족한다고 하면서도 개봉 후 관객들의 반응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작품에서 시대상이 잘 반영된다는 것은 배우의 연기력도 중요하지만 이를 연출하는 감독의 역할도 크다. 아무리 배우가 노력했다 하더라도 감독이 얼마나 잘 고증하고 연구했는지에 따라 평은 갈릴 수 있다. 이에 유해진은 "원신연 감독은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이어 "원신연 감독과는 친구 사이다. 예전부터 같이 작품 하자고 했는데 드디어 하게 됐다. 하고 보니 큰 작품이었다. 만만치 않은 전투신들이 즐비하고 시대극이다 보니 감독이 신경 쓸 게 많았다. 고증을 잘 해야 되는데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아 고민이 컸다고 들었다. 그래도 그 시절 실제 입었던 의상, 소품 등을 잘 재현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해진은 의상, 소품, 액션신까지 그 당시를 재현하기 위해 힘썼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유해진은 "멋 부리지 않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서양이나 홍콩식 액션은 화려하고 볼 거리가 많다. 물론 국내 작품 중에도 화려한 액션신을 자랑하는 작품들이 많다. 그러나 '봉오동 전투'는 사실에 기반한 작품이기에 '멋'보다는 당시 그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에 치중하려고 했다"며 "살고자 하는 액션이었다. 살려고 뛰는 연기였다. 그 감정들에 집중해서봐주시면 더 와닿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때는 그랬을 것 같다. 생사가 오가는 가운데서도 그분들은 삶이란 걸 살아야 했다. 긴 시간은 목숨 바쳐 싸우다가도 회오리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감자를 쪼개먹으면서 사는 얘기도 하지 않았을까. 그런 장면들이 중간중간 배치돼 숨 쉴 구멍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봉오동 전투'에서는 긴장 가득한 액션이 있는가 하면 곳곳에 유머도 존재한다. 마치 그때 정말 그랬을 것처럼 영리하게 장면들이 배치돼있다. 유해진은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위험한 장면이 많다 보니 배우들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폭탄이 터지는 타이밍이 1~2초만 어긋나도 다시 찍어야 한다. 또 부상의 위험도 있다. 실제 전투처럼 예민해지는 거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늘 예민하게 있고 싶지는 않았다며 "나도 숨을 쉬어야 되지 않냐. 또 선배 입장에서 후배들에게 눈치를 주고 싶지도 않아서 먼저 가서 말도 걸었다. 장난도 치고 까불기도 했다. 선배가 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특히 유해진은 '택시운전사' 이후 류준열과 두 번째 호흡이다. 그는 "다시 만나게 돼 너무 좋았다. 작품 찍을 때도 좋았고, 작품 끝나고 나서는 정도 깊어졌다. 류준열은 '택시운전사' 이후 유머감각도 늘었더라. 톡톡 튀는 느낌이 재밌었다"고 설명했다. 조우진과의 호흡에 대해서는 "조우진은 재즈에서 즉흥 연주를 하는 사 람같다. 연기할 때 적당한 웃음을 주면서도 치고 빠지는데 그게 다 머리속에서 계산이 다 돼있다. 작품 들어가기 전에 주변에서 조우진이 괜찮다는 말을 많이 들어 궁금했는데 왜 그렇게 칭찬했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수많은 작품부터 예능프로그램까지 유해진은 대중에게 친근한 배우다. 친근한 만큼 이미지를 바꾸지 어려울 법한데 그는 적재적소에서 원래 있었던 사람 마냥 연기한다. '말모이'에서 '봉오동 전투'까지 국사책을 찢고 나온 유해진이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를 모은다.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인턴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