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연예계 생활 내내 스스로를 옭아매고 끊임없이 채찍질했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엄격했고, 항상 스위치를 켜놓은 채 살아왔던 가수이자 배우 노민우. 쉼없이 달리다 잠시 멈추니 비로소 보이는 게 있었다.
29일 종영된 MBC 월화드라마 '검법남녀 시즌2'(극본 민지은·연출 노도철)은 범죄는 진화했고 공조 또한 진보했음을 알리며 까칠 법의학자 백범(정재영), 열혈신참 검사 은솔(정유미), 베테랑 검사 도지한(오만석)의 돌아온 리얼 공조를 다룬 MBC 첫 시즌제 드라마. 극 중 노민우는 비밀을 감춘 다중인격 캐릭터로 장철과 닥터K를 오가며 강렬한 존재감을 뽐냈다.
그는 이 드라마에서 누구나 입을 모아 말하는 '키 플레이어'였다. 연출을 맡은 노도철 PD는 "시즌2에서 가장 핫한 캐릭터는 노민우"라고 자신했을 정도. 실제로 극에서 노민우의 역할은 상당히 컸다.
노민우는 냉철한 의사 이면에 연쇄살인범 닥터K의 모습을 감추고 있는 다중인격이라는 쉽지 않은 역할을 맡아 특유의 퇴폐미를 뽐내며 극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자신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탓에 당연하게도 그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부담감'이었다.
노민우는 "처음에 시놉시스를 받고 내가 소화해낼 수 있을까 부담이 많이 됐다. 시작 전에 감독님도 선배님들도 중요한 캐릭터라는 얘기를 많이 해주셨다"며 "그 기대를 저버리면 안 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고 부담감을 털어놨다.
그는 드라마를 찍는 내내 한 번도 잠을 푹 잔 적이 없었다고. 그를 짓누르는 부담감은 생각보다 더 거대했다.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사이코패스 영화 등의 잔인한 신을 무감각할 정도로 보고 또 보며 자신이 펼칠 연기를 그렸다. 노민우는 "잔인한 장면을 하도 많이 보니까 무감각할 정도였다. 평상시 생활할 때도 감성이 어두워진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단지 다중인격이라는 캐릭터의 어려움 때문에 그가 부담감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검법남녀 시즌2'는 노민우가 웹드라마 '먹는 존재' 이후 4년의 공백기를 가진 뒤 안방극장에 복귀한 작품이기도 했다.
노민우는 "4년 만의 복귀작에 너무 어려운 역할을 맡게 됐다. 자다가 불안해서 깬 후에 다시 대본을 읽다가 자기도 하고, NG 나는 꿈을 꾸기도 했다"며 자신의 부담감을 설명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연기에 힘을 주거나 멋을 내려고 하지 않았다. 부담감으로 인해 과한 욕심을 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노민우는 욕심을 내려놓고 오로지 대본과 연출을 믿고 다중인격 캐릭터를 표현했고, 이는 곧 '인생 캐릭터'라는 호평으로 이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노민우에게 '검법남녀 시즌2'란 참 감사한 작품일 수밖에. 그는 "엔딩까지 멋있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감독님께 얘기했다. 감독님께서는 '이런 캐릭터가 배우에게 평생 한 번 오기 어려운데, 어려운 역할을 잘 소화했다'고 격려해주셨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렇듯 노민우가 좋은 작품, 좋은 캐릭터를 만나고, 훌륭하게 소화하게 된 데에는 아이러니하게도 4년 공백기의 힘이 컸다. 그는 대중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4년 동안 1년은 일본에서 가수 노민우로, 또 나머지 시간은 대한민국 국민 노민우로 국방의 의무를 다했다.
그는 "20대 때는 소속사 분쟁도 있었고, 제가 지치는 부분이 많았다. 거기서 오는 불안감도 있었고, 이 직업이 저한테 맞는지에 대한 진지한 생각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러한 그에게 군대 생활은 단연코 아까운 시간이 아니었다. 군 생활을 할 때는 아티스트 노민우가 아닌 그냥 보통 누구와 같은 군인이었고, 동기들과 함께 어울리며 생활하는 시간 동안 비로소 그는 인간 노민우를 마주 보게 됐다.
밤늦게 라면을 먹고 바로 잔다거나 운동을 게을리하고 뱃살이 나오는 등의 모습은 아티스트 노민우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곧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저는 그런 나태함이 용납되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사람을 조금 놔주니까 사는 게 행복하더라"라며 웃었다.
4년 전 노민우의 세상에서는 아티스트 노민우가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인간 노민우가 그의 중심이다. 그래서일까. 노민우는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4년 동안에도 잊혀질까 불안하지 않았다. 단지 한 번 작품을 하더라도 좋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싶을 뿐이었고, 그의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됐다. 이렇듯 누군가 공백기라고 부르는 4년간은 노민우에게 '터닝포인트'가 됐다.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재충전의 시간을 거쳐 노민우는 한층 더 성장한 연기를 보여주며 대중들에게 자신의 연기력을 각인시켰다. 내려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려 한다.
드러머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한 노민우는 음악을 만드는 일에도 열심히다. 그는 여전히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노민우는 "올해 안에 앨범을 내고 싶다. 곡 작업은 이미 다 끝나있는 상황"이라며 "드러머 출신이다 보니까 정규 앨범을 한 번도 내본 적이 없다.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된 그다.
연기와 음악, 그리고 '나'라는 존재에 대한 자신감. 누군가는 멈춰있다고 생각했던 4년, 노민우는 물 밑에서 쉴 새 없이 다리를 움직여 아름다운 백조가 될 준비를 마쳤다.
"할리우드 배우 자레드 레토는 연기로도, 가수로도 인정을 받아요. 그 사람이 걷는 길이 제가 이루고 싶었던 꿈 그 자체에요. 제가 상상만 했던 꿈을 실현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많은 힘을 받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어느 정도 성공해서 앞으로 저와 비슷한 후배들에게도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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