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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차 배우' 안성기의 묵직하고도 깊은 연륜 [인터뷰]
작성 : 2019년 07월 29일(월) 09:33

사자 안성기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배우 안성기, 그를 논하기 위해서는 그가 걸어온 길을 봐야한다. 국민 배우라는 호칭이 이보다 더 탁월할 수 있을까. 존재만으로도 좌중을 압도하는 안성기다.

‘사자’(감독 김주환·제작 키이스트)는 격투기 챔피언 용후(박서준)가 구마 사제 안신부(안성기)를 만나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 강력한 악(惡)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안성기가 분한 안신부는 한국에 숨어든 강력한 악의 검은 주교를 찾기 위해 바티칸에서 온 구마 사제로, 위험의 순간 눈앞에 나타난 용후의 능력을 직감하는 인물이다.

안성기는 데뷔 이래 수많은 작품을 통해 탄탄한 신뢰도를 구축해 온 국민 배우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는 극 중 아버지와 같은 따뜻한 매력으로 이야기의 긴장감을 완화하며 관객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쉼표를 마련한다. 아울러 후배인 박서준과의 나이 차이가 무색할 만큼 자연스러운 연기 앙상블을 선보이며 그의 가치를 뽐낸다.

이를 두고 안성기는 원래 장난치는 걸 좋아한다면서 “김주환 감독이랑 상의하면서 시나리오에 없는 걸 현장에서 만들곤 했다. 보는 이들이 실제로도 재밌어 하더라. 또 맥주 마시는 신도 웃음 포인트가 있는데, 그때 실제로 맥주를 마셨다. 눈까지 벌그레한 게 좋을 것 같아 미리 두 잔 마시고 촬영에 임했다. 나는 원래 주량이 약해서 금방 얼굴이 붉어지는 편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얼굴을 벌겋게 만들어놓고 연기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안성기는 구마 의식을 행하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동시에 선보이며 관객들을 압도했다. 고통 속에서도 신앙만으로 움직이는 안신부의 압도적인 구마의식은 가히 ‘사자’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촬영 현장을 회상하던 안성기는 "라틴어를 그냥 읊는 것이 아니라 쏟아내듯 외쳐야 했다. 통문으로 외우다 보니까 중간에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촬영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안성기는 시간이 없어서 대사의 번역은 포기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라틴어 연기를 하면서 김주환 감독이 ‘다시 한 번 하자’고 하면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모든 라틴어 장면을 NG없이 한 번에 OK사인을 받았다. 김주환 감독도 내 연기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사자 안성기 / 사진=영화 사자 스틸컷


그런가 하면 안성기는 ‘사자’를 통해 나름의 육탄전을 기대했노라 밝혔다. 안성기는 “처음 대본을 받고 안신부라는 캐릭터가 퇴마를 전문적으로 하기 때문에 운동량이 제법 있을 것이고, 또 육체적으로 부마자와 맞붙어 싸우는 장면이 있으니까 싸움 실력도 있어야 한다고 구상했다”면서 “하지만 무술 감독이 말리더라. 무술 감독은 ‘안신부는 당하는 사람이고 구해주는 사람이 용후’라고 설명했다. 결국 내가 뭘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 생각과 달리 넘어지고, 엎어지는 연기를 많이 했다. 아이에게도 정말 많이 맞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들과 동년배라는 박서준과 완벽하게 호흡을 맞춘 안성기는 극 중 자신의 모습이 "용후의 아버지 같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연기했다"고 밝혔다.

“국내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선배들이 없다. 많이 활동을 접었거나 돌아가셨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과 소통을 더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하곤 했다. 늘 내가 먼저 가까이 다가가려고 한다. 후배들이 현장을 두고 ‘빨리 가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현장 자체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덕분에 후배들도 좋아하고 편하게 여겼다. 박서준, 최우식, 우도환 모두 부담이 있었을 텐데도 서먹하거나 어려움 없이 대해줬다. 다행스럽게 우리의 좋은 위기가 영화에 반영이 됐다.”

안성기는 1957년 영화 '황혼열차'의 아역배우로 연기를 시작한 이후 지금껏 출연한 작품이 약 130편 이상이다. 올해로 데뷔 62주년을 맞이한 안성기에게는 매년 하루 하루의 현장이 남다른 의미로 기억될 터. 그에게도 대중에게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이에 대해 안성기는 “사실 신선한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현장에 더 남고 싶은 욕심이 더 크다. 로버트 드니로와 딱 10살 차이가 난다. 그를 보면서 나 역시 저렇게 오랫동안 현장에 남고 싶다. 좋은 배우, 좋은 제작진, 좋은 스태프들과 오랫동안 일하고 싶은 게 가장 큰 목표“라 말했다.

또 안성기는 “10년 뒤 내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늘 갖고 있다. 나 혼자 현장에 있고 싶다고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만나는 관객들도 좋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도 좋은 상태가 유지돼야 하는 것”이라 조심스러운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면서 안성기는 흐르는 세월 속 존재했던 슬럼프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간 많은 배우들이 슬럼프를 두고 '극복하는 과정'이라 표현하며 부정적인 단어로 치부해왔다면, 안성기는 오히려 준비하는 시간이라 설명했다. 그는 "나 역시 슬럼프라면 슬럼프가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동안에도 꾸준히 체력을 관리하고, 나 스스로를 다졌다. 언제라도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기다리면서 감을 잃지 않도록 준비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내가 꾸준히 기다려 온 모습이 감독들에게는 좋은 영향으로 보이지 않았겠냐"고 전했다.

실제로 그는 체력 관리를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한다고. 안성기는 컨디션 조절을 위한 노력으로 “매일 빨리 걷고 뛴다. 웨이트 등 1시간 정도 쉬지 않고 늘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안성기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단어, ‘한국 영화계’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안성기는 먼저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어느덧 20주년을 맞이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일제시대를 제외하고 한국 영화와 인생을 같이 한 셈이다. 그 어려운 세월을 우리 영화계가 잘 지켜왔다. 특히 올해는 칸 영화제의 정점을 찍은 ‘기생충’으로 더욱 의미 있는 시기다. 그동안 한국영화는 전성기였던 60년대를 거쳐 정치적으로 힘들었던 70년대, 80년대를 쉽지 않게 넘어갔다. 또 한국영화 점유율이 15%로 정말 힘들었을 때도 버텨냈다. 스크린쿼터제도 넘어갔다. 그러면서 우리 영화의 힘이 있었다”고 전했다.

안성기의 말을 빌리자면 한국 영화계는 어느덧 경쟁력을 갖췄다고. 안성기는 국내 영화들이 가져야할 덕목으로 ‘소프트웨어’를 꼽았다. 그는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다. 앞으로 한국 영화계가 해야 할 일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안성기는 과거를 회상하며 선배 영화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들이 격동의 시기를 지나 꾸준히 존재했기 때문에 지금의 한국 영화계가 있었다는 의미다. 안성기는 거듭 “현재와 앞날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지나왔던 것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 영화 100주년을 두고 그런 지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영화계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안성기는 한국 영화계를 두고 “위기가 아닐 때는 없다. 항상 위기라는 이야기가 존재해왔다”면서도 “현재 큰 영화와 작은 영화의 간극이 너무 크다. 너무 재미로 치우칠 때도 있다. 예전 문성근 배우가 ‘영화는 관객이 만드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맞는 말이다. 영화는 관객의 수요를 따라가야 하지만 작품 스스로가 끌어나가야 하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지금은 영화의 규모가 커지다 보니 작품성과 재미가 분리됐다. 중간에 다시 합쳐지는 부분이 필요하다. 독립영화의 규모가 더 커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해결된다면 우리 영화계가 더욱 커질 것”이라 소신을 밝혔다.

이제 안성기는 이야기 속 존재만으로도 깊은 연륜과 묵직함을 고스란히 전하는 이로 남았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의 이력이 마침표가 아닌 진행형이라는 것. 그처럼 62년이라는 긴 시간을 두고 단순하면서도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연기자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가 서 있는 지금 시점에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안성기와 같은 배우는 없을 터. 스스로의 연기에 스스로의 무늬를 새겨넣는 안성기는 보다 더 높고 넓은 이상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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