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나랏말싸미'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한글창제, 그 이면의 이야기를 수려하게 펼쳐낸 수작이다.
1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영화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제작 영화사 두둥) 언론시사회에는 조철현 감독과 주연배우 송강호, 박해일이 참석해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랏말싸미'는 모든 것을 걸고 한글을 만든 세종과 불굴의 신념으로 함께한 사람들, 역사가 담지 못한 한글 창제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문자와 지식을 권력으로 독점했던 시대, 모든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세종의 마지막 8년. 우리가 알지 못한 그 시기를 재해석했다. 나라의 가장 고귀한 임금 세종과 가장 천한 신분 스님 신미가 만나 백성을 위해 뜻을 모아 나라의 글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억불정책을 가장 왕성하게 펼쳤던 임금 세종이 죽기 전 유언으로 신미 스님에 '우국이세 혜각존자'(나라를 위하고 세상을 이롭게 한, 지혜를 깨우쳐 반열에 오른 분)이란 법호를 내렸다는 기록과 김만중의 '서포만필'에 있는 훈민정음과 불경을 기록한 문자인 범어와의 관계 등은 한글 창제와 관련된 여러가지 설 중에 하나이다.
조철현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 전부터 신미스님의 존재를 알았으나 이를 확신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많은 논문과 동영상, 현재 신미스님의 행적을 찾아 탐방도 했다고. 아시아 모든 소리글자는 스님들이 만들었다고 기록된 것을 찾았고, 이런 연구 결과 등에 영감을 받았다고.
감독은 허구와 사실의 기준에 대해 "저도 이제 잘 모르겠다. 사실과 허구란 카테고리를 뛰어넘어 과연 진실이라 믿지 않으면 그걸 할 수 있나 싶다. 그런 현상이 벌어져서 지금은 어디까지가 팩트이고, 허구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시간적 순서가 바뀌고 그랬을진 몰라도 가급적으로 사실대로 하려 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나랏말싸미'는 해인사의 장경판전부터 사찰 등 영화 속 배경이 되는 장소들을 아름답게 담아내며 견고하고 위대한 감동을 더한다. 이에 대해 조철현 감독은 "컴퓨터 그래픽을 많이 안 쓰려 했다. 한지와 빛과 붓으로 그 아름다운 한글 창제 과정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송강호는 대왕 세종의 이면에 있는 인간의 모습까지 다채롭고 섬세하게 그려냈다. 송강호는 "세종대왕은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성군이시다. 우리가 봐온 모습도 있지만, 우리 스스로가 그린 모습도 분명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히려 저는 배우로서 새롭고 창의적인 파괴를 하려했다"고 밝혔다. 이어 "세종대왕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 훈민정음인데 지금까지 만드는 과정이나 그 과정 속에 느낀 고뇌나 군주로서의 외로움 등에 대한 초점은 처음이었다"며 "그런 면에서 우리 영화가 특별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사도'에서 영조를 연기했을 때를 떠올렸다. 송강호는 "영조나 세종을 우리가 직접 보지 않았다. 많은 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 그분들의 모습이 쌓여서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이 됐을거다. 이를 깨뜨리고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배우의 기본 의무가 아닌가 싶다. 그게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는지가 중요하다"며 "그것이 예술가들의 기본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이미지 속에 갇혀 있는 위대한 성군의 새로운 면모를 새롭게 쌓아나갔다고.
박해일 또한 꼴통, 또는 반골. 질서에 녹아들지 않고 반기를 들거나 자신이 정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강단있고 진리를 좇는 신미 스님으로 분해 미지의 인물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박해일은 "저도 시나리오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인물이었다. 이 결과물이 만들어진다면 이 영화를 관람하실 많은 분들이 낯설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궁금한 캐릭터란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제가 맡은 역할에 집중했을 뿐이었다"고 밝혔다.
영화는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세종과 신미가 서로가 믿는 진리의 차이를 넘어 서로를 인정하고 한 길을 가는 모습에서 위대한 감동을 준다.
두 배우 외에도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뭉클하고 안타까운 인물이 등장한다. 극 중 소헌 왕후로 차분하면서도 기품과 위엄이 배어나오고 현명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며 극의 무게감을 갖는 인물이다. 또한 혜안과 강단으로 신미와 세종의 길을 터주는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故전미선의 모습이다.
조철현 감독은 고인을 떠올리며 목이 매어 말을 잇지 못하면서도 "극 중 백성들은 임금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은 전미선 배우가 직접 만드신 말이다. 저는 도저히 생각하지 못했을 말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나랏말싸미'는 위대한 역사의 이면을 포착해 세밀하게 그려낸 조현철 감독과 낯섦까지 믿고 보게 만드는 송강호, 박해일. 그리고 아름다운 배우 故전미선으로 완성된 거룩한 기록이다. 7월 2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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