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삐딱한 시선은 유쾌한 뒤섞기에 담긴 본질의 철학을 꿰뚫고, 수십 년간의 노하우는 새롭고 환상적인 동화세상과 그 속의 모든 것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영화 '레드슈즈'의 홍성호 감독과, 애니메이션 감독인 김상진 감독이다.
'레드슈즈'는 빨간 구두를 신고 180도 변해버린 주인공 레드슈즈와, 세상 억울한 저주에 걸려 초록 난쟁이가 된 '꽃보다 일곱 왕자'를 주인공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동화 왕국을 구하기 위한 모험을 그렸다. 기존의 수많은 동화들을 뒤집어 시종일관 유쾌한 비틀기로 웃음을 주면서도 현대인들의 편협한 시각과 편견을 꼬집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기발한 스토리.
이는 사실 홍성호 감독의 '삐딱한' 시선에서 비롯됐다. "늘 편견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는 홍성호 감독은 어릴 때부터 '백설공주' 이야기에 불만(?)이 많았단다. 백설공주 곁을 지켜준 건 일곱난쟁이인데 왜 왕자와 떠났을까. 왜 말도 할 줄 아는 신기한 마법 거울에게 '누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니'만 물어볼까. 이런 생각을 했다고. 역시, 범인과는 다르다. 그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바라보는 관점이 남달랐던 셈이다. 이에 "어릴 때부터 좀 그랬던 것 같다. 동화를 보는데 이해가 안 되고 억울한 부분이 많았다"며 웃어 보인 홍성호 감독이다. '내가 보는 나와 남들이 보는 나는 왜 다를까'란 물음도 계속 그의 머릿속을 맴돌던 것이었다. 이를 풀어낸 시나리오는 2010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그때부터 '레드슈즈' 프로젝트가 가동됐다.
애초 제목은 '레드슈즈'가 아니라 '일곱난쟁이'였다. 최종 시나리오 완성까지 5년이 걸렸다. 영화가 나오기까지는 총 9년이 걸렸다. 게다가 국내에서 대작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니, 투자받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지난한 인고의 세월을 버텨왔지만 이에 대한 넋두리는커녕 "그동안 회사도 키우고 노하우도 쌓고 김상진 감독님도 열심히 설득했다. 그전에 시나리오 작업할 때부터도 계속 말씀은 드렸었고 디자인 작업도 조금씩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매일 바꾼다고 뭐라 하시더라"며 익살인 유쾌한 성격의 홍성호 감독이다.
세계적 명성의 꿈의 직장 디즈니에서 20년을 수석 애니메이터로 활약한 김상진 감독은 홍성호 감독의 설득에 기꺼이 응했다. 그 결단력도 실로 대단하다. 누구나 선망하는 세계 최고의 환경에서 존경받으며 일하는 위치의 사람이, 척박하고 고된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으로 그것도 자발적으로 돌아오다니. 하지만 김상진 감독은 "다들 '왜?!'라고 하시는데 한 직장에 20년을 계셔보시면 아실 거다"라고 별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말한다. 그는 "뭐랄까 정체된 느낌도 있었고 그때 잡혀 있던 라인업이 '랄프2' '겨울왕국2'였다. 두 작품 다 했었기에 비슷한 걸 또 하기가 재미없을 것 같아 싫었고 홍 감독의 유혹의 손길은 계속 뻗쳐오고 있었다"며 너스레다. 무엇보다 모국에서 한국 아티스트들과 모국어로 대화하며 작업하고 싶은 환경이 그리웠다고.
그러면서도 "처음 시나리오 봤을 땐 '또 공주야?' 싶어서 하고 싶지 않았다"고 웃으며 볼멘소리다. 심지어 캐릭터도 많은데, 마법 풀린 본모습까지 두 배로 만들어야 했다. 캐릭터 좀 줄이라고 핀잔도 했다지만, 속내는 '레드슈즈'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김상진 감독이다. 그는 "익숙한 소재의 색다른 스토리가 재밌었다. 독특한 설정이 재밌을 것 같단 생각과 다른 작업들과 비교되는 작업이라 생각했다"며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후회는 없다.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고 즐겁게 작업했다"고 미소 지었다.
영화 레드슈즈 홍성호 김상진 감독 인터뷰 / 사진=영화 스틸
김상진 감독은 '레드슈즈'를 극 중 인물 멀린의 성장 영화로 봤다. 이미 레드슈즈는 건강한 매력과 주체적인 소신을 가진 인물이다. 반면 멀린은 자신의 뛰어난 외모와 자신만만한 성격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작용하는지 잘 아는 인물이다. 그래서 요정 공주의 저주로 난쟁이가 된 이후엔 주변을 돌아보고 진심으로 타인의 처지에 공감하기보다 자신의 저주를 푸는 일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레드슈즈를 만나 타인과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법을 알게 되며 성장하는 캐릭터다. 김상진 감독은 그런 멀린에 대해 "아직 덜 성장한, 진정한 사랑을 하는 법을 모르는 멀린이 자기희생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이 좋았다"고 애정을 표했다.
홍성호 감독도 멀린의 성장을 통해 본질적 메시지를 담았다. "내면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편견이다. 내면이 어떻든, 외면이 어떻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는 것이 답이 아닐까." 결국 '레드슈즈'는 궁극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고, 타인을 만나서도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더 나은 자신과 더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본질을 전한다. 당연하면서도 어려운 일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며 삶을 헤쳐나가는 지혜를 갖춘 이들 감독이 전하는 얘기인 만큼 충분한 설득력과 의지를 갖게 한다.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의 열악함에 대해서도 이들은 마냥 한탄만 하고 있지 않다. 홍성호 감독은 "성공 사례가 없어서 선뜻 용기 있게 투자할 사람이 없다. 투자가 안 되니 연습할 기회가 없는 거다. 이렇게 몇십 년을 공들여서 하나의 결과물을 겨우 만들어내는 상황이 안타깝다"면서도 "기술적 문제, 부채적 문제 등의 한계가 있지만 끊임없이 도전하는 거다. 실패의 경험을 계속 보완하며 갈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우린 이를 갖췄고 우리가 대한민국 최고라는 자부심을 늘 갖는다. 관객들에게도 의미있는 성과로 남고 싶다"고 강한 확신을 보였다.
김상진 감독 또한 "저는 행운아라 디즈니에서 일할 수 있었다. 초창기부터 쌓아온 월트 디즈니란 사람의 유산을 소중히 간직하며 그다음 세대들에 대대로 내려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 또 굉장한 라이브러리가 있다. 손으로 끄적인 메모 하나까지 전부 디지털화돼 직원들이 자유롭게 서치 할 수 있다. 아티스트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편하게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끔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도 그렇다"며 "우리도 그런 환경을 만들며 더 좋은 작품을 향해 나아가는 날이, 언제가 될진 몰라도 반드시 올 거라 생각한다"고 희망을 설계했다.
애니메이션을 정말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그리고 즐겁기 때문에 이 오랜 시간 계속할 수 있었고 그것에 자부심을 갖는다고. 그렇게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낸 모든 스태프들이 자랑스럽다는 김상진 감독이다. 홍성호 감독 또한 "전 욕심이 많아서 1등이 되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며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원더풀데이즈' 때도 그렇고 지금도 도전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추구할 거고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이라고 자부했다.
자신의 일에 끝없는 애정과 열정을 지니고, 모든 힘을 다해 노력하고 실천하는 사람들. 그런 이들이 만든 '레드슈즈'는 韓 애니메이션에 대한 선입견을 깨트릴 혁신적 수작임엔 틀림없다.
영화 레드슈즈 홍성호 김상진 감독 인터뷰 / 사진=이노기획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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