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누가 '봄밤'을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자가복제판 드라마라고 했던가. 안판석 감독과 배우 정해인이 또 하나의 '인생 멜로'를 만들어냈다.
11일 MBC 수목드라마 '봄밤'(극본 김은·연출 안판석)이 종영됐다. '봄밤'은 어느 봄날 두 남녀가 오롯이 사랑을 찾아가는 설렘 가득한 로맨스 드라마.
드라마의 제목처럼 '봄밤'은 이정인(한지민)과 유지호(정해인)이 모두의 반대를 극복하고 결혼을 약속하며 꽉 닫힌 해피엔딩을 맞았다. 두 사람에게 찾아온 진정한 '봄'이었다.
'봄밤'은 배우 한지민, 정해인의 만남과 지난해 큰 인기를 끈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김은 작가와 안판석 감독이 다시 뭉쳐 선보이는 작품으로 시작부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드라마 시작 전 기대만큼 짙게 드리운 건 안판석 감독과 김은 작가의 전작인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라는 그늘이었다. 같은 제작진이 비슷한 느낌의 작품을 또 한 번 만들어내는 '자가복제' 드라마가 아니냐는 것.
뚜껑을 열자 우려는 어느 정도 현실이 됐다. 단순히 감독과 작가가 똑같은 점 빼고도 '봄밤'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비슷한 느낌의 음악과 색채, 분위기를 풍겼다. 남자주인공 정해인을 비롯해 전작에 출연했던 익숙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기도 하는 등 전작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일까. 실제 '봄밤'은 방송 초반 4% 안팎의 낮은 시청률(이하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을 보이며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보였다.
그러나 극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우리 주변에서 실제 있을 법한 사건과 상황들은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높였다. 오랜 연인과의 느슨해진 관계에 염증을 느끼고, 결혼을 앞둔 여성인 이정인의 새로운 감정이 찾아온 순간의 흔들림은 현실감을 더했다. 또한 사랑에 대한 트라우마를 느끼고, 사랑하는 여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싱글대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이서인(임성언), 자신의 이익을 위해 딸의 결혼을 재촉하는 아버지 등 우리의 현실과 맞닿은 이야기들이 곳곳에 배치됐다.
'봄밤'은 이렇듯 현실 속 공감대로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큰 자극적인 전개가 아니어도 웃음과 눈물을 자아낼 수 있는 이야기였다. 시청자가 몰입하기 시작하자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봄밤'의 유사성은 안판석 감독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색채로 받아들여졌다. 안판석만의 독보적인 장르로 느껴지게 된 것.
안판석 감독은 호흡이 긴 롱테이크에서 전달되는 인물들의 실제적인 감정과 대사로 특유의 리얼리티를 구현하며 시청자들이 실제 인물들의 대화를 엿듣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내 이야기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환상 속의 멜로 같은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안판석의 감각적인 연출력은 '명불허전'이라 불릴 만 했다.
또한 이 연출을 더욱 빛나게 하는 데에는 배우 정해인의 힘이 컸다. 평범한 듯한 일상과 감정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정해인의 눈빛과 섬세한 감정 표현이었다.
특히 술을 마시고 내가 좋아하는 여자의 남자친구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던 자신의 상황에 분노, 과감한 발언과 행동으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던 그의 섬세한 연기력은 단연 압권이었다.
이렇듯 '봄밤'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자가복제라는 비판과 우려를 딛고 현실적인 로맨스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봄밤' 마지막회는 9.5%를 기록,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시청률 부진 탓에 MBC가 약 40년 간 유지해왔던 10시 드라마를 9시 시간대로 편성 변경을 시도한 후 첫 작품인 '봄밤'은 수목드라마 1위를 기록하며 MBC 드라마국의 체면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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