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영화의 장르적 재미를 추구하기보다, 관계와 불신이란 인간 내면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따라서 관점에 따라 감상이 달라질 수 있는 영화 '진범'이다.
끔찍한 살인 사건으로 아내를 잃었고 심지어 가장 친한 친구가 용의자로 지목됐다. 남자는 용의자 아내 다연(유선)와 함께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 한다. 영화 '진범'(감독 고정욱·제작 곰픽쳐스)의 설정은 꽤 흥미롭다.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피해자 남편과 용의자 아내라는 정반대 지점의 두 사람이 공조를 한다는 아이러니하고 독특한 상황만 보면 그렇다. 그러나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은 진부하다.
피해자 남편, 용의자, 용의자 아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 네 등장인물들이 각각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고 관객에 혼선을 주며 '진범' 찾기가 시작되지만, 각 인물의 행위들이 설득력을 갖고 지속되진 않는다.
이를테면 살인자로 몰린 남편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필사적인 아내는 남편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이기보단 아빠 없는 아이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속내가 더 큰 듯 보인다. 의문스러운 목격자의 존재 또한 마찬가지다. 그를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처럼 등장시켰지만 정작 제 목숨이 위협받는 위기의 순간에 직면해서도 절박함과 생존 의지를 드러내기보다 다른 인물의 갈등을 부추기는 목적으로 쓰이는 캐릭터의 모습은 충분한 당위성을 주기 어렵다.
과거와 현재를 쉼없이 오가는 산만한 교차 방식 역시 매끄럽지 못하고 시제 변화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도리어 몰입을 방해하며 혼란을 준다. 마지막 '진범'이 밝혀지는 순간의 긴장도 미약하다.
하지만 '진범'은 사건과 해결, 진범의 정체를 밝히는 것에 중점을 둔 장르 영화가 아니다.
'진범'은 누구도 믿지 못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의심과 불신이 반복되고 진실이 무엇인지, 결국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인물들의 행위를 통해 관계와 불신, 믿음에 대해 고찰한다.
그러니 '진범'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에 중점을 두지 않고 인물들이 왜 갈등을 하고, 흔들리는 믿음 속에 어떤 선택을 하고 이는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집중한다. 다시 말해 추적 스릴러의 긴장을 기대한 장르 마니아들에겐 진부하고 평면적인 이야기로 여겨질 테다. '진범'은 인간 내면 심리를 파헤친 심리물에 가깝다.
제한적인 장소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인 만큼, 디테일한 설정들은 눈여겨 볼만하다. 특히 끔찍한 살인사건 현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집을 청소하는 유족의 모습은 가장 극적이면서도 사실적인 부분이다. 실제 살인 사건이 벌어진 후엔 대부분 유족이 직접 현장을 치우게 된다는 사건 이면의 디테일을 세밀하게 담아낸 감독이다.
해당 신에서 이성적으로 집안을 청소하고 말라붙은 핏자국을 지우던 영훈의 미세한 떨림이 느껴지는 뒷모습은, 몹시 건조하고 메마른 신임에도 인물의 과잉된 슬픔과 연민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영훈으로 분한 송새벽의 연기는 '진범'의 최대 볼거리다. 갑자기 세상 절망을 떠안게 된 남자의 분노와 슬픔을 피폐한 감정의 극단을 오가는 날카롭고 예민한 얼굴과 성대를 긁는 듯한 쉰 목소리로 표현해낸다. 의심과 혼란에 휩싸여 폭주하는 독기와 그 끝의 허무를 고독하고 황망하게 담아낸다. 7월 10일 개봉.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