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배우 송새벽의 얼굴은 다채롭다. 볼품없고 지질하지만 사랑스러운 '소심남'의 모습부터, 섬찟하고 날카로운 모습까지 능수능란하게 오간다. "매번 시나리오에 충실하려고 노력할 뿐"이라고 멋쩍어하며 웃어 보이는 사람 좋은 배우 송새벽이다.
끔찍한 살인 사건으로 아내를 잃은 남자. 심지어 가장 친한 친구가 용의자로 지목됐다. 송새벽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다 갑자기 세상 절망을 떠안게 된 남자의 분노와 슬픔, 의심과 혼란에 휩싸여 폭주하는 독기와 그 끝의 허무를 덤덤하게 담아낸다. 영화 '진범'(감독 고정욱·제작 곰픽쳐스) 속 영훈으로 분한 그는 과잉되지 않고도 이같은 감정의 동요를 여실히 관객에 전달한다. 새삼 놀라운 연기력이다.
살인 사건으로 아내를 잃은 남자의 모습을 위해 7kg을 감량했을 정도다. 그렇게 피폐하게 쉰 목소리와 날카롭고 예민한 모습으로 진범을 찾기 위해 추적하는 영훈을 리얼하게 그려낸 그다. 송새벽은 "일부러 긁는 듯한 목소리를 낸 게 아니라 배가 고파서 힘이 없었다. 감독님이 맥없는 느낌의 목소리를 좋아하시더라"며 순박하게 웃어 보였다.
물론 다이어트를 하느라 몸을 혹사시켜서 스스로 미안하긴 했단다. "하루라도 배불리 먹으면 안 됐다.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티면서 조금만 먹고 뛰고 그랬다. 그래도 '먹방'을 보며 눈요기를 많이 했다. 그렇게만 해도 좀 먹은 것 같은 기분이더라"며 "다이어트를 끝낸 뒤 제일 먼저 먹은 건 신 김치에 라면이었다. 그게 그렇게 생각이 났다"고 다시금 회상하며 익살스럽게 입맛을 다신다. 연기를 위한 혹독함이었기에 대수로워하지 않았고 그만큼 '진범'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그다.
"늘 새로운 것에 끌리며, 시나리오를 봤을 때 굉장히 요동치는 느낌." 송새벽이 '진범' 대본을 보고 느낀 감상이다. 그는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이를 파헤치는 이야기는 다른 영화에서도 많이 쓰인 소재다. 하지만 대본을 읽으면서 구성적인 부분이 좋았고, 누가 범인인지를 계속 추리하고 긴장하게 되는 것이 좋았다. 짜임새가 좋고 감독님이 글을 정말 잘 쓰셨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특히 세밀한 디테일들이 그를 사로잡았다. 어떻게 보면 상투적이지만 사실은 생소한 대사와 신들이 너무도 매끄럽게 연결이 됐다고. 그중에서도 영훈이 끔찍한 살인사건 현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자신의 집을 청소하는 장면은, 충격적이면서도 리얼한 설정이었다. 실제 살인 사건이 벌어진 후엔 대부분 유가족이 직접 현장을 치우게 된다. 영화는 이런 사건 이면의 디테일까지 세세하게 살려낸다. 그렇게 많은 부분 고민을 하고 공을 들여 쓴 시나리오임이 여실히 느껴졌단다. 현장은 말할 것도 없겠단 생각이 들었고 이미 처음부터 "아, 나만 잘하면 되겠구나" 싶었단 송새벽이다.
이성적으로 집안을 청소하고 말라붙은 핏자국을 지우던 영훈의 미세한 떨림이 느껴지는 뒷모습은 지켜보는 이들마저 안타깝고 고통스러운 연민이 일게 했다. 송새벽 또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었다며 "그 신을 찍을 때 정말 많이 힘들었다. 저는 연기의 한 부분이지만, 실제 유족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를 생각하게 되니 굉장히 힘들더라"고 했다. 극 중 허망함과 공허함을 담아낸 그의 표정도 여운이 상당하다. 송새벽은 이에 "이런 일을 실제로 겪는다면 굉장히 극심한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그런 느낌을 담아내려 했다"고 밝혔다.
송새벽은 특별하고 대단한 설정 없이도, 일반적이고 평범한 상황에서 조그만 오해로 인해 큰 사건이 벌어지고 이를 파헤치는 구조가 좋았다며, "개인적으로 많이 기억될 영화"라고 '진범'을 표현했다. '진범'은 관계와 불신, 믿음에 대해 고찰하는 영화다. 송새벽은 사람을 좋아하기에 주로 사람을 믿는 편을 택하는 유형이다. 물론 관계 속 믿음이 깨진 순간들도 당연히 겪어봤다. 그러나 "상처 받을까봐 두려워서 사람을 안 믿는 건 어리석은 게 아닐까"라는 그의 말에서 따스하면서도 곧은 성품이 느껴진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 일명 '세팍타크로 형사'로 등장해 신묘한 발차기 능력으로 대중에 눈도장을 찍었던 그다. 이후 '음치클리닉' '방자전' '위험한 상견례' 등을 통해 심드렁하고 어수룩한 남자로 독보적인 코믹함을 자랑하다가도, 날카롭고 잔인한 얼굴이 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평범하다. 참으로 종잡을 수 없이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그다.
송새벽은 도리어 10년 전 희대의 캐릭터였던 변사또를 떠올리며 "요즘은 그런 역할들이 안 들어오더라. 지금 생각해도 참 재미있게 찍었다"고 너스레다. 송새벽은 자유롭게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이질감 없는 배우다. 그만큼 예측하기 어렵고 한계가 없다. 그럼에도 "그냥 매번 좀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걸 만나고 싶고, 그렇게 능통하지도 않은 것 같고 딱 그 정도인 것 같다"며 겸손한 자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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