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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이선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짜증 연기' [인터뷰]
작성 : 2019년 06월 04일(화) 10:53

이선균 인터뷰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인간의 미묘한 감정들이 뒤틀리는 순간, 찰나의 노여움이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젠틀한 매너를 가장한다. 낯익지만 낯선, 순간을 그리는 '기생충' 속 배우 이선균이다.

배우 이선균이 그토록 동경하던 봉준호 감독의 7번째 장편 영화 '기생충'(제작 바른손이앤에이)에 참여하게 된 건, 그가 찰나에 담아낸 '이미지' 덕분이었다. 이선균이 영화 '악질경찰' 개봉 당시 찍었던 한 화보를 보게 된 봉준호 감독은 그 이미지를 보며 '기생충' 속 박사장을 떠올렸다. 날카롭고 예민하면서도 피곤한 기색이 묻어나는 인물. 봉준호 감독은 이선균을 만나 "사진을 우연히 봤는데 박사장과 잘 맞을 것 같단 느낌이 있었다"고 말했고 이는 이선균에겐 꿈만 같은 순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25년 전, 학생 시절 봉준호 감독의 단편 영화 '지리멸렬'부터 그에게 매료됐고 비디오 가게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플란다스의 개'를 수없이 돌려볼 만큼 좋아했던 작품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동경했던 이가 제 순간의 이미지를 보고 작품 제안을 해준 것이다. 이선균은 봉준호 감독을 처음 만난 것만으로도 무척 설레고 긴장했고 이런 기회가 제게 주어진 것만으로도 "꿈만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이선균은 박사장을 만났다. 절대적인 계층 구조로 나뉘어진 극 중 설정에서 경제적 계급과 사회적 지위가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인물. 이선균은 박사장을 익숙한 듯 낯선 인물로 묘사하며 탁월한 재주를 발휘했다. 이를테면 박사장은 고용인들에게도 격식을 차리는 교양 있는 인물이지만 은연중에 그들을 무시하는 엘리트 특권 의식이 자연스레 배어있는 인물이다. 그는 천박하고 치졸한 내면과 가부장적인 권위를 지녔지만 부유함과 여유로움으로 이를 억제하는 인물이다. 운전기사를 고용할 때 매너 좋고 사람 좋은 척하던 박사장이 실은 상대를 시험하기 위해 커피 잔을 가득 채우고 수면의 파동을 지켜보거나, '냄새'와 '선'을 운운하는 모습 등은 묘한 흥미를 끄는 것이었다.

그가 느끼기에도 박사장은 기존에 생각했던 재벌 이미지와는 달랐다. 그는 "잘 나가는 벤처기업 대표라는 설정은 새로운 시대의 재벌 이미지를 담고 있다. 겉보기엔 나이스하고 소통도 잘하고 멋져 보이지 않나. 아마 그런 것에 대한 강박이 있는 인물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선균은 박사장 스스로 '나는 기존의 인물들과는 다르다'는 강박이 있었고, 보여지는 것과 다른 이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자신만의 선이 있는 인물'로 봤다. 그러면서도 그 안엔 치졸하고 천박한 본능이 있었다고. 그래서 박사장의 천박한 이중성이 어떻게 하면 잘 드러날 수 있을지에 집중해서 연기를 했단다. 갑자기 급정거한 차 안에서 몸이 구겨진 채 그가 짓는 뒤틀린 표정, 그러나 교양을 지키느라 분노를 삼키는 일그러진 냉정함은 팬들 사이 '짜증계의 스칼렛 요한슨'(?)이라 불리는 그의 진면목을 자랑하는 신이기도 했다. 노여움을 교양 있게 눌러 참는 은근한 '짜증 연기'는 가히 이선균을 능가할 자가 없을 테다.

이에 이선균은 박사장의 예민함이 잘 드러났다면 다행이라며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짜증에도 선이 중요하다며 너스레를 떤 그는 "이전까진 제가 늘 상황에 쫓기는 절박하고 억울한 역할들을 많이 했고 사건의 중심에 선 인물이었다면, 이번엔 어떻게 그 선을 잡고 가야 할지 이에 따라 여지가 많이 달라지는 인물이었다"고 분석했다. 스스로 박사장을 해석하길 "부유하게 자랐던 것 같지만 지금의 성공은 부를 물려받기보다 자신이 이룬 것 같다. 기업을 번창시키기 위해 뭐든지 열심히 했을 거다. 그렇기에 일중독에 예민하고 지쳐 보이는 인물"이었을 거란다. 또한 성격적으로도 자신이 정해놓은 기준과 선을 지켜야 되는 강박의 예민함도 있었을 거라고. 이 경계를 표현해내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과제였을 테고, 의심할 여지없는 결과물을 완성한 그였다.

이선균 인터뷰 / 사진=영화 기생충 스틸


그러면서도 이선균은 이미 봉준호 감독의 머릿속엔 이야기의 템포와 리듬부터 캐릭터의 묘사까지 완벽하게 설정돼 있었기에 저는 그저 대사만 잘 외우면 됐단다. 그는 "감독님께 백 프로 신뢰를 갖고 임했다. 모든 게 대본에 디테일하게 잘 표현돼 있었고, 이미 그림을 명확히 갖고 계셨다"고 설명했다. 사실 연극적인 구조로 쓰인 대본을 볼 때부터 감탄해마지 않았단 그다. 극의 주요 인물과 주무대는 두 가족과 집뿐이다. 이는 장르적으로 몹시 연극적인 표현이지만,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게 이선균이 느낀 '기생충'의 첫 번째 재미였다. 이어 그는 "처음에 볼 때는 굉장히 심플하게 보인다. 그런데 굉장히 다양한 장르와 '가족 희비극'이라 말하듯 가족을 이야기하지만 결국은 사회를 이야기한다. 굉장히 웃긴 것 같아도 몹시 비극적이다. 이런 지점들이 굉장히 입체적으로 다가왔고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그리고 계속 이야기를 곱씹으며 볼수록 가슴이 먹먹하고 마음이 아팠다고. 그는 "굉장히 영화적이면서도 현실적이고 그 자체로 코믹하면서도 무서운 영화였다. 우리 사회가 극처럼 양극화되어가는 모습을 돌이켜보게 되고 박사장이 '냄새'와 '선'을 말하는데 과연 나는 그런 선이 없었나 반문하게 되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게 다 감독님의 '계획'이었구나"라고 '기생충' 속 핵심 단어를 사용하며 혀를 내두른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부와 권력에 따라 서열화된 시대의 계급 문제를 수평적으로 그렸지만, '기생충'은 수직적으로 담고 있음을 언급하며 작품 해석에 열을 올렸다. 그는 "반지하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되게 밑에 있지만 위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공간이다. 반지하 공간이 주는 의미가 그렇다. 봉준호 감독님은 그런 표현과 상상을 하시는 것이 아주 기가 막히신 분"이라고 또다시 감독 예찬론이다.

이토록 봉준호 감독과의 작업은 이선균에게 철학적 사유와 영감을 전해줬다. 이선균은 그 기쁨과 흥분을 마음껏 만끽하는 중이었다. 그는 제 영화를 다시 극장에서 찾아보는 편은 아니지만, '기생충'은 다시 보려 한다며 "관객 분들이 어떻게 봐주시고 어떻게 호흡해주실지 궁금하고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라고 했다. 또한 그는 많은 관객이 '기생충'을 보며 느끼는 절망과 허무에 대해 "영화가 우리 삶을 고민하고 반문하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면서도 “하지만 저는 우리 사회가 꼭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규정돼 있진 않다고 본다. 부의 기준이 꼭 행복과 연결돼 있는 건 아니다. 그런 절망과 먹먹함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우린 행복하게 살아가야 하지 않나"라고 긍정적인 가치관을 전했다. 그가 느끼는 행복도 그리 거창하지 않다. "이런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술 마실 때"라며 웃어 보인 이선균이다.

사실 이선균은 꾸준히 연기를 해오면서도 옛날과는 달리 점점 두려움이 생길 때가 있단 속내를 털어놨다. 제 모든 게 소진되고 자주 노출될수록 뭔가 지겹고 익숙해지는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고. 하지만 그는 "후배들도 제게 같은 고민을 묻는다. 저는 지금 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현재 주어진 일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다른 걸 바라기보다, 여기에 집중해서 후회 없이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존경해마지 않는 봉준호 감독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듯, 순간을 즐기며 그저 열심히 하다 보면 겹겹이 작품이 쌓이고 좋은 사람을 만나며 인연과 인연이 이어지는 것 같다고. 그렇기에 한 순간도 게을러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이선균이다. 결과가 어떻든 적극적인 방식의 삶이 더 가치로움을 아는 그였다.

이선균 인터뷰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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