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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조여정, 연교! 이 아름답고 기묘한 여인 [인터뷰]
작성 : 2019년 06월 02일(일) 08:59

조여정 인터뷰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조여정 인터뷰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배우 조여정의 재발견이 아니다. 이제야 비로소 그를 제대로 알게 된 것뿐이다.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제작 바른손이앤에이)에서 단연 돋보이는 인물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조여정을 택하겠다.

극 중 과외 선생 면접을 앞두고 정원 테이블에서 엎어져(?) 자고 있다 황급히 깨어나는 조여정의 첫 등장만으로도 그는 전형적이지 않고 예측 불가한 인물의 기묘한 매력을 발산하며 단숨에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조여정은 봉준호 감독에 처음 캐스팅 제안을 받았을 땐, '나를 어떻게 생각하셨지? 어떤 역할일까? 감독님 영화에 내가 할만한 그런 캐릭터가 있다니. 대체 어떤 역할이길래 그럴까. 어려운 역할이면 어떡하지'라며 궁금증이 증폭됐고 한편으론 신기했단다. 대본을 받고 난 뒤엔 그냥 좋았다. 그는 "요 근래 계속 어려운 캐릭터를 많이 했다. 비장하고 어두운 캐릭터를 많이 해서 연교가 진지하지 않고 재밌는 여자라는 것만으로도 좋았다"고 했다.

이름도 고상하고 아름다운 연교. 그는 IT기업 사장을 남편으로 둔 미모의 부잣집 사모님이다. 남편 내조는 물론 자녀 교육에도 열성적이라 고액 과외를 들이는 일도 주저 없다. 은근히 치졸하고 가부장적인 면모가 있지만 이를 잘 포장한 특권계층 엘리트 남편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이 가득하다. 물론 부잣집 특유의 허세와 우월감이 있지만 순수하고 악의 없는 행동이다. 의외로 엉뚱한 면모가 가득하고 참 귀도 얇으면서 타인을 의심할 줄 모른다. 은근히 허술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여인. 조여정은 날 때부터 부유하고 티 없이 맑게 자라 성장한 듯한 연교의 모습을 능청스럽고도 우아하게 그려냈다.

그럼에도 조여정은 "감독님의 힘"이라고 자신을 낮추며 공을 돌린다. 그는 "어떻게 보면 이런 유형의 인물을 처음 만드신 거다. 감독님이 다양하게 이런 이미지들을 보여주셨고, 이를 같이 구현해나갔다"며 "이런 풍성한 캐릭터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이 배우로서는 너무 감사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봉준호 감독의 캐릭터 설계를 바탕으로 두 사람은 함께 아이디어를 내며 연교 캐릭터를 구축해나갔다. 서로의 경험에서 실제로 봐왔던 사람들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이런 이야기 속 특징들이 모여 조금씩 좁혀 들어가며 사실적인 이미지의 연교를 빚어낸 것이었다. 이 작업 과정에서 느낀 즐거움과 만족감에 몹시 행복했단 조여정은 "이를 관객들도 같이 느껴주시면 더 행복할 것 같다. '맞아, 저런 사람 진짜 있는 것 같아'라는 말은 배우에게 최고의 칭찬"이라고 밝혔다. 이미 연교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던 조여정이다.

비닐장갑을 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불결하고 발칙한(?) 물건을 집어 들며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모습이나, 순진해서 세상 물정 모른다며 누가 누구에게 할 소리인지 모를 충고를 권하는 모습, 한우 넣은 '짜파구리'를 먹으며 사는 게 다 그렇다고 인생을 논하는 모습 등등. 조여정은 코믹함과 진지함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여유로운 연기 내공을 여실히 드러냈다.

사실 조여정은 깊은 감성과 통찰을 갖춘 배우다. 그는 '기생충'을 보며 제 캐릭터보다 가난한 기택네 가족에 감정이 이입돼 괴로웠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전체 맥락을 짚으며 대중에겐 다소 뻔뻔하고 얄미워 보이는 기택네 가족의 행위를 진작부터 이해하고 연민했다. 그는 "이 가족의 절실함이 너무 보였다. 나쁜 의도로 했다기보단 뭐랄까 다른 선택권이 없는 상황에서 내린 결정들이라 밉지 않았다"고 했다.

악의 없는 언행이 누군가에겐 씻을 수 없는 수치심을 주는 장면도 특히 안타까워했다. "일련의 모습들에 마음이 정말 안 좋았다. 모두가 열심히 살고 싶었을 뿐인데 모두가 참 가슴 아팠다"는 그는 "그렇다고 누구 하나 탓할 수 없고,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는데 상황이 우스꽝스럽게 흘러가다 정말 말도 못 하는 비극으로 빠지는 것도 참 삶의 아이러니였다"고 감상을 전했다. 하지만 그게 바로 '기생충'의 매력이라고. 영화 속 다양한 상징들 또한 배우들에게 즐겁고 흥미로운 토론 거리가 됐다. 그는 "그 자체도 좋더라. 우리가 만들어왔는데도 아직까지 이야기할 게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며.

조여정 인터뷰 / 사진=영화 기생충 스틸


제 캐릭터도 곱씹을수록 많은 감상이 들었다. 조여정은 "연교는 좋은 사람이다. 나쁜 의도가 없는 사람이라 좋았다. 구김이 없는 성격도 좋았고, 에너지가 밝았다"고 했다. 하지만 면면이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객관적으론 부족한 인물이었다고.
그가 말하길 연교는 아이들 교육에 힘을 쏟지만, 정작 정서적으로 엄마가 필요한 아이들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그러니 자식의 장래만 보고 좋은 선생님을 찾는 일에만 몰두한다. 이는 연교가 딱 자신이 아는 만큼, 그렇게 살아온 만큼만 행동하는 것이었다. 조여정은 이를 두고 "빈곤한 기택네는 끈끈하고 결속력이 느껴지는데, 부유한 사람들은 오히려 부에서 오는 결핍이 보이더라. 이들의 경제적 빈부와는 달리 마음의 빈부격차가 참 재밌었다"고 밝혔다. 촬영하면서 갈수록 더 재밌어지는 기분은 오랜만이었단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영리함과 센스에 매번 놀랐단 조여정이다. 봤음직한 상황, 있음직한 인물의 행위를 좀 더 유니크하게 만들어낸다고. 조여정은 스스로 보는 제 모습 중에는 너무 오랜 시간 봐서 뻔하고 질릴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새로운 자신을 알기 어려울 때가 있다고. 하지만 자신의 치부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드러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용기 있고 멋진 배우였다.

조여정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 있는 인생관을 지닌 사람이다. 배우 아네뜨 베닝의 말처럼 "연기한다는 건 인간의 영혼을 탐구하는 일"이라는 조여정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을 통해 계속 변해가는 스스로의 영혼을 탐구하는 일도 제겐 중요한 일인 것 같다고 밝혔다. "신기한 게 작품을 점점 해나갈수록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했던 모습이 작품을 하며 꺼내질 때가 있다. 저도 놀라면서도 즐겁다. 보시는 분들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기생충' 속 조여정은 대중이 지금껏 알고 있던 그의 모습과는 다르다. 대중이 만들고 가둬놓은 이미지에서 벗어난 진짜 '배우' 조여정이 거기 있었다. 이토록 자유롭고 아름다우며 섬세한 배우의 진면목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조여정 인터뷰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조여정 인터뷰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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