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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박소담, 다시 찾은 '감' [인터뷰]
작성 : 2019년 06월 02일(일) 08:54

박소담 인터뷰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악령 씐 여고생의 소름 끼치는 연기로 단숨에 대중을 사로잡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이면에선 성장통도 겪었다. 주저앉기보다 이를 뼛속 깊이 새겼고 그는 스스로 입증했다. 박소담은 여전히 독보적인 배우라는 것을.

박소담은 여러 가지로 자존감이 많이 낮아져 있을 때 영화 '기생충'을 만났단다. 정확히는 봉준호 감독을, 3년 전에 만났을 땐 소속사도 없고 일도 없던 상태였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 대뜸 봉준호 감독이 저를 만나보고 싶다더라 말을 전하니 장난전화인 줄 알고 답을 안 했다. 두 번째 연락이 왔고 자리에 나갔을 때 봉준호 감독은 그러더란다. "왜 이렇게 사람을 못 믿냐"고.

박소담은 당시 꽤 지독한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 첫 시작부터 워낙 독보적인 배우로 각인됐던 만큼 대중은 그에게 특별한 작품적 행보를 기대했건만, 그의 선택은 다소 영리하지 못했다. 집단의 달콤한 환호는 때론 한순간에 싸늘하고 날카로운 비수로 바뀌곤 한다. 박소담은 그 후로 딜레마에 빠진 듯했다. 이 곳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제게 쏟아지는 반응을 보며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했다. 어디서부터 다시 공부를 해야 할지도 몰랐단다. 배우로서의 자산은 탄탄히 쌓아 올린 필모그래피인데, 그저 연기가 즐거워 무작정 요령 없이 달리다 보니 제 것은 이내 무너질 것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고 겁을 먹은 듯했다.

하지만 박소담은 강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장률 감독의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에 출연하며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그리고 제가 가져야 할 태도와 가치관을 재정립한 것이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매니저도 없이 혼자 군산에 가서 영화를 찍으며 20대 초반, 단편 영화를 찍고 연기 공부를 했던 때가 많이 생각났다"고 했다. 그렇게 자신을 다잡고, 다시 현장에 나가고 싶고 연기하고 싶단 생각이 들던 때 봉준호 감독이 그를 이끌어낸 것이다. 박소담은 앞서 봉준호 감독의 '옥자' 미팅에서 그를 처음 만난 적 있었단다. 제 어떤 이미지를 보고 10대 산골소녀 미자 이미지를 엿본 감독이 미팅을 요청했고, 실제론 자신이 너무 커서 안 되겠다 했단다. "미자는 안 되겠지만 차나 한잔 하시고 가라" 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돌아왔던 게 첫 만남이었다.

그를 다시 만났을 때도 감독은 "영화 새로 들어가려는데 시나리오나 구체적인 건 없다. 송강호 선배 딸 역할이다. 가족 이야기다"라고 했다. 정말 작품에 들어가는 것인지 알 수도 없고 기약 없는 기다림이 계속되는데 봉준호 감독은 연락도 없고 가끔 두어 달에 한 번씩 밥 먹자고 연락이 오더란다. 진짜 하는 게 맞냐고 걱정하던 박소담에 봉준호 감독은 "시나리오 쓰느라 바빴다. 하자고 하면 하는 거지 뭘 그리 걱정을 하냐"고 했단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시나리오가 나왔고, 박소담은 처음 읽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했다. 우선 글에서도 느껴지는 굉장한 속도감, 모든 동선까지 완벽히 계산된 견고함, 복합적인 장르를 모두 녹여낸 이야기에 "감독님의 머릿속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을까" 하고 궁금해졌단다. 동시에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먹먹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유쾌하기도 하지만 씁쓸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았다가도 갑자기 슬퍼지고. 마치 삶 그 자체의 시나리오였다. 우리도 살다 보면 이렇게 감정이 말도 안 되게 확확 바뀔 때가 있지 않나. 그 부분이 표현된 게 매우 신기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제가 맡은 캐릭터와 자신의 모습이 너무 닮아 깜짝 놀랐단다. 그는 "그동안 저를 계속 관찰하고 계셨나 보더라. 제 대사를 소리 내 읽어보는데 대사가 정말 잘 붙었다. 굳이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술술 잘 읽혔다"고 했다. 일상적인 언어로 연기를 하고 싶단 갈증이 있었는데 이를 단번에 해소했다며.

박소담 인터뷰 / 사진=영화 기생충 스틸


박소담은 극 중 전원 백수 기택네 막내딸 기정 역을 맡았다. 막내여도 오히려 제 오빠 기우보다 상황 판단력이 빠르고 야무져서 누나처럼 여겨질 정도다. 미술에 남다른 재능이 있고 "서울대 문서위조 학과가 있다면 수석입학 감"일 만큼 컴퓨터 실력과 손재주가 대단하다. 박소담은 기정에 대해 "이렇게 재능이 많은데 늘 운이 비껴가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똑똑하고 눈치도 빠른 데다 준비성도 철저하다. 하지만 마냥 센 캐릭터는 아니라고 봤다. 그는 "물론 기택네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세 보이긴 하지만, 제가 볼 때 기정이는 힘들어도 가족들에 티 한 번 안 내고 막내지만 한 번도 어리광을 부리지 않았을 친구였다"고 했다. 그렇기에 가족들 앞에서 술주정을 할 때 처음으로 "나한테 집중해줘"라고 어리광 아닌 어리광을 부렸을 테다.

그는 한편으론 꽤 뻔뻔하고 거북한 기택네 가족들의 행위도 안타까운 애정과 연민으로 감쌌다. 그는 "저희 가족이 한 일이 떳떳한 일이 아니지만, 나쁜 의도는 아니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족들이란 믿음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며 "반지하에서 가난하게 살지만 저희 가족은 사랑으로 똘똘 뭉쳐있다. 어릴 때부터 그런 부모님의 영향을 받고, 처음부터 그렇게 살아왔기에 불평이나 불만이 없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매번 반지하 창문을 위협하는 취객을 대하는 가족의 태도, 식빵의 곰팡이를 떼어내고 아무렇지 않게 먹고 집안을 활보하는 꼽등이를 놀란 기색 없이 쳐내고, 무료 와이파이 신호 찾기 삼매경에 빠진 남매, 어머니의 구박과 사랑의(?) 발길질에도 꿈쩍않는 아버지. 오프닝 신에 드러난 이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박소담은 이미 집안 막내딸이 돼 넘치는 가족애를 드러냈다.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유쾌하게 풀어내는 가족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감독님이 원하시는 이 가족의 분위기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는 박소담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박소담 연기의 압권은 똥물 튀기는 변기에 앉아 젖은 담배를 태우는 모양새다. 박소담은 처음엔 이해가 안 돼 "이 난리통에 저러고 있어도 되는 거냐"며 물을 정도였지만, 막상 그 공간에 들어가는 순간 모든 게 온몸으로 이해가 됐단다. 정말 인생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고, 살면서 이렇게 절망적인 순간이 또 있을까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단다. 박소담은 "기정이가 그동안 속상한 일이 있었을 때 그나마 여기 와서 위로를 받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장면이 저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털어놨다.

박소담은 처음 봉준호 감독의 연락을 받은 후로부터 벌써 3년이 지났다. 다시 돌이켜보면 얼마 전 칸 영화제에 다녀온 사실도 벅차고 믿기지 않을 정도란다. '검은사제들' 이후 이 같은 인터뷰도 처음이라고. 그는 처음엔 용기가 없고 두려웠다고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작업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과 배려가 필요한지를 알았고, 누군가 앞에서 다시 연기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의 즐거움을 되찾았다. 박소담은 "이번 작업하면서 '넌 왜 이렇게 신이 나 있니?'란 말을 들었다. 에너지가 좋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누구보다 이 일을 즐기고 있다.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고 연기할 수 있어 재밌다. 그래서 정말 행복하다"고 밝혔다. 이제야 비로소 연기를 제대로 즐길 줄 알게 된 박소담이다. 그리고 그런 그가 내뿜는 열기와 강렬한 생동감은 역시나 눈 뗄 수 없이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었다.

박소담 인터뷰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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