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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송강호, 역시 또 낯설다 [인터뷰]
작성 : 2019년 05월 31일(금) 06:23

송강호 인터뷰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배우 송강호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 익숙하고 친숙한 얼굴이 뿜어내는 다양하고 강렬한 감정들이 매번 강한 자취를 남기는 탓이다. 응어리진 시대의 고통을 통감하는 소시민일 때도 시대가 낳은 괴물로 변이 할 때도 언제나 감쪽같이 인물에 동화된다. 이는 시대와 상황에 놓인 그들의 처지에 몰입해 육화 하기 때문이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감독 봉준호·제작 바른손이앤에이). 배우 송강호는 유독 기뻐했다. 제 출연작이라서가 아니라 그의 영화 인생 동반자인 봉준호 감독이 세계적으로 우뚝 선 모습이 감동적이고 자랑스러웠던 것이다. 당시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 혼자 칸에 남아 있으면 외로워 보일까 그의 곁을 지켰고, 수상 후 저를 무대로 부른 봉준호 감독의 깜짝 퍼포먼스가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20년 절친은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서서 쏟아지는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았다. 한국 관객들에도 더할 나위 없이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익히 알려진 얘기지만, 두 사람의 오랜 인연과 유대관계를 다시 설명하자면 22년 전 연극 무대에선 유명했던 송강호가 영화계로 넘어와 아직은 무명 배우이던 시절. 장준환 감독과 '모텔선인장' 연출부로 있던 봉준호는 '초록물고기' 속 송강호 모습이 너무 강렬했고 미팅을 요청했다. 당시를 회상하던 송강호는 "어디선 오디션을 보고 떨어졌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다. 신인 배우인데 누가 보자고 하면 기쁜 마음으로 가지 않나. 기분 좋게 차 한잔 하고 헤어졌다. 그게 첫 만남이었다"고 했다. 결국 캐스팅되진 않았지만, 봉준호 감독은 송강호의 삐삐에 장문의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송강호는 이를 두고 저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그렇게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간절한 진심을 다해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이야기를 하길래, '하 이런 젊은 친구가 있나. 뭔가 돼도 될 것 같다' 생각했단다. 이는 처음으로 봉준호란 사람이 인식된 계기였다고.

이후 '반칙왕'으로 승승장구하던 송강호는 동시기 개봉해 흥행 참패를 겪은 봉준호 감독 연출작 '플란더스의 개'를 보게 됐다. 그의 작품이라 인지하고 본 건 아니었다. 비디오 시장이 활성화됐던 시대, 집에서 비디오를 빌려 보다가 너무 웃겨서 소파에서 굴러 떨어질 정도였다.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는 처음이었단다. 마침 다음날 한 시상식에서 송강호는 남자 배우상을, 봉준호 감독은 올해의 신인 감독상을 수상하게 돼 마주쳤다. 그때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그를 보며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전날 본 그의 영화 감상평을 "와르르르르르" 풀었단다. 이렇게 재밌는 영화는 처음 봤다, 보다 굴러 떨어졌다 등등. 그런데 봉준호 감독은 "네, 그러셨어요" 라며 웃고 말았단다. 그게 두 번째 만남.

그리고 송강호는 '살인의 추억' 제의를 받게 됐다. 원작 연극을 알고 있었고, 그 내용도 알고 있었다. 하고 싶었다. 처음 봉준호 감독과 작업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좋았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건 마지막 촬영이었다. 비 내리는 날, 여중생 사체를 보는 신이었다. 비가 안 왔다. 그 장면을 찍기 위해 한 달을 기다렸다. 물론 인위적으로 비를 뿌릴 순 있지만, 그렇게 되면 하늘은 파랗고 쨍쨍할 터였다. 그 서글픈 장면을 그렇게 찍을 수 없었고 한 달을 기다렸다. 드디어 날이 흐려졌고 다 같이 마지막 촬영을 하고 철수하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또다시 봉준호 감독이 논두렁을 걸어오고, 송강호도 걸어가다 마주쳤다. 그때 서로 아무 말 없이 포옹한 장면이 송강호는 아직도 잊히질 않는단다. "무언의 고마움을 서로에게 표현했던 것 같다. 봉준호 감독과 제가 이십 년의 세월을 함께 했지만 그때 그 느낌과 첫 만남, 첫 작업의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는 송강호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 해왔던 두 사람이다. 그리고 송강호는 이번 '기생충'이 봉준호 감독의 20년 영화 인생 중 최고의 정점에 오른 작품이며 "봉준호 감독의 진화이자 한국영화의 진화라고 감히 이런 말씀드리고 싶다"고 자부했다. 봉준호 감독만이 가지고 있는 통찰력, 그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와 완성도가 절정에 달한 작품이라고.

특히 그는 칸에서 외신 기자들로부터 공통된 많은 질문을 받았다. "'기생충'은 한국 사회를 직시하는 영화인가?" 송강호는 "한국 사회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이건 모두의 이야기다. 당신의 나라, 그 어느 사회에서도 존재하는 이야기"라고 확신했다. '기생충'은 여전하고 확실하게 봉준호다운 영화이면서, 완벽하고 성숙하게 진화한 봉준호만의 세계를 드러낸다. 그가 담은 메시지는 한국적인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느낄 공포의 희비극으로 가치를 더한다. 송강호는 바로 그 지점을 예찬했고 "보편적인 이야기로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을 직시하고 통찰하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예술가로서 존경한다"는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송강호 인터뷰 / 사진=영화 기생충 스틸


송강호 또한 '기생충'이 묘사한 시대의 자화상을 공감했다. 그는 무사 태평한 가장 기택 역을 맡았다. 하는 일은 번번이 실패했고, 피자 박스 접기로 근근이 살아가는 백수 가족의 가장. 딸이 만든 학력 위조문서를 보고 "서울대 문서 위조 학과가 있으면 수석입학 감"이라고 하질 않나, 그 위조문서 들고 면접 길에 오른 아들에 "너는 계획이 있구나"라며 자랑스러워하는 한심하고 무능한 가장. 하지만 송강호는 그들의 삶의 방식, 짙게 깔린 페이소스를 안타까워했다. 그가 말하길 기택은 나름 열심히 살던 인물이다. 그러나 이 사회구조와 환경은 노력과 동떨어져 있다. 이를 인식하고 있기에 아내가 질타는 할지언정, 자식들도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무능함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조적이고 어쩔 수 없이 연체동물이 될 수밖에 없는 이들이었고, 그런 환경에 적응하고 사는 그런 대표적 인물들로 봤다. 그리고 이는 우리의 자화상 같기도 했다고.

극 중 계획이 없는 게 계획이라 말하는 기택의 대사도 마찬가지다. "계획을 한다고 이뤄지지 않는 것을 알고 있는 거다. 이는 굉장히 자조적이고 사회적 좌절감이 담긴 대표적 대사였다"는 송강호다. 그 역시도 '기생충'을 통해 형식의 낯섦을 느꼈다. 변화무쌍하고 복합적인 장르의 전복이 배우들에 주어진 큰 과제였단다. 하지만 오를 수 없는 절대적인 계층 분리, 그 밑바닥에서 생존 욕구를 위해 부질없는 발버둥을 치는 빈곤한 자의 얼굴, 수년 동안 쌓이고 곪아 온 종기가 터지듯 붉게 독 오른 얼굴로 우발적으로 폭발한 뒤 몽롱한 환상 속을 헤매고 있는 듯한 그 행위, 그리고 모멸감으로 얼룩진 가난에 찌든 냄새까지 묘사한 송강호다. 극 속에서 송강호 역시 슬픔과 공포, 서스펜스가 뒤섞인 감정을 느낀 까닭이다. 그럼에도 "과찬이시다"며 "봉준호 감독의 역량 덕분이다. 모든 것이 치밀한 계산 끝에 감독의 머릿속에 있고, 전 오래 함께 하다 보니 잘 따라간 것 뿐"이라고 자신을 낮춘다.

송강호는 한국 영화사에 다양한 족적을 남겨왔음에도 배우란 일희일비해선 견디지 못하는 직업이라고 못박는다. 단거리 육상처럼 승부가 나는 일이 아니다. 긴 인생을 살아가며 사람에 대해 탐구하며 이를 표현하는 직업이다. 그렇게 긴 인생을 마라톤처럼 생각하며 오히려 무상한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그러면서도 그는 스스로를 "저는 평범한 사람이다. 뭐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 말한다. 대배우의 이유 있는 겸손이다.

송강호 인터뷰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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