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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언엽 작가의 개척지이자 목적지 '디오라마' [인터뷰]
작성 : 2019년 05월 29일(수) 10:30

신언엽 작가 / 사진=DB

[스포츠투데이 김샛별 기자] 축소된 모형을 설치해 특정한 장면을 만드는 디오라마 기법에 스토리와 음향, 조명 등의 기술을 더해 색다른 예술을 만들어냈다. 이는 신언엽 작가의 목표였고, 동시에 또 다른 목적지를 향한 시발점이 됐다.

신언엽 작가가 처음부터 디오라마에 뛰어든 건 아니었다. 무대 디자인을 공부했던 그는 전공을 살려 드라마, 영화, CF, 공연 등 다양한 작품들의 미술감독을 역임했고, 세트 디자인을 담당했다. 하지만 무대나 건축 인테리어 등 디자인을 할 때는 정해진 틀 안에서 연출가와 상의를 해야만 했고,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마음껏 펼쳐내지 못했다. 이는 신언엽 작가에게 점차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결국 혼자서 자신의 디자인을 마음껏 그려낼 수 있는 것을 찾던 그는 디오라마와 마주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디오라마란 생소한 단어이자 낯선 분야다. 이에 신언엽 작가는 자신만의 디오라마를 "하나의 피규어들에게 집을 만들어준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면 흔히 우리가 아는 주상복합모형들이 있지 않나. 하지만 여기에는 스토리가 없다. 전 이런 모형들에 스토리를 추가시키는 거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동적인 디오라마를 표방한다. 조명과 음향, 4차 산업에 관련된 기술들은 거의 다 넣고 있다. 아트와 기술의 컬래버레이션을 계속 선보일 수 있는 유니크한 디오라마를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기존에 있던 디오라마들 사이에서 빛을 발휘한 신언엽 작가만의 차별점은 '영상'이었다. 그는 모형물이 액션 피규어이기에 언제든지 행위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영상으로 촬영했고, 여기에 음악을 입혔다. 작은 영화의 탄생인 셈이다. 신언엽 작가는 "영상 촬영은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하루 만에 촬영하곤 한다. 아무래도 영상을 전공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영화미술을 하면서 직접 찍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고 밝혔다.

디오라마는 작은 모형을 만드는 만큼 정교함과 세밀함이 필요한 작업이다. 이에 신언엽 작가는 '수작업'을 강조했다. 디테일한 소품들을 표현하기 위해 하나하나 자신의 손을 거쳤고, 제품 양산의 목적이 아닌 하나의 세트를 만든다는 일념으로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신언엽 작가 / 사진=DB


신언엽 작가는 디오라마를 시작한 초반, 주로 자신이 취미로 모은 히어로 피규어들 이용해 영화 속 장면이나 상황을 재연했다. 그렇게 영화 '배트맨' '백 투 더 퓨처' '매드맥스' '트랜스포머' '스타워즈' 등이 신언엽 작가를 통해 디오라마로 재탄생했다. 하지만 그는 어딘가 허전한 느낌에 계속해서 갈증을 느꼈다. 그러던 찰나 지난해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나머지 퍼즐을 맞췄다.

"남의 히어로물을 할 바에야 우리나라의 국가 히어로물을 만들고 싶은 열망이 있었어요. 그러다 4.27 판문점 선언이라는 역사적인 상황이 감동적으로 다가왔죠. 어떤 통일을 바란다는 신념보다는 이 상황을 재연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작품에 대한 열정을 내세운 그는 과감하게 큰 틀로 디자인했고, 이를 수소문 끝에 소개받은 통일부 관계자에게 보여줬다. 신언엽 작가는 자신의 논문부터 포토폴리오, 직접 만든 피규어, 여러 자료 등을 가지고 통일부에게 생소한 디오라마를 설득시켰다. 그 노력을 알아준 통일부는 신언엽 작가의 4.27 판문점 디오라마 프로젝트를 수용했고, 전시할 수 있는 장소 또한 제공했다.

이렇듯 4.27 판문점 디오라마를 통해 만화나 영화를 넘어서 현실적인 사건을 재연한 신언엽 작가다. 그만큼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할 지점도 늘어났다. 그 중 전체적인 질감을 표현해야 하는 것이 대표적이었다. 신언엽 작가는 "만드는 과정에서 제일 힘들었던 건 군사협회의장이었다. 파란색의 초소를 만들어야 했는데, 옛날 창고의 촉감과 시간이 흘렀을 때의 느낌 등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정교함에 신경 썼다. 예를 들면 모래의 흔적이나 빗물의 흔적 등을 표현하기 위해 분무기로 물을 뿌려가면서 디테일을 살렸다"고 말했다.

이 지점을 생각하는 것부터 소화해내기까지 모두 신언엽 작가 홀로 개척해야 하는 길이었기 때문에 쉽지 않았을 테다. 그럼에도 그가 해낼 수 있었던 건 그동안의 경험 덕분이었다. 그간 무대 미술을 하며 공부했던 노하우부터 드라마, 영화, 광고를 돌아다니며 체득한 스킬들의 집약체가 '신언엽만의 디오라마'로 표현됐다.

비록 과정은 고됐을지라도 신언엽 작가가 개척한 길이 빛날 수 있었던 건 시민들의 반응이었다. 신언엽 작가는 "아무래도 가지 못했던 공간, 느껴볼 수 없던 공간이다 보니 많은 분들이 보시고 나면 감동을 받더라. 또 아이들에게는 교육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부분도 보람찼다. 외국인들은 작품을 보면서 30분 동안 남북문제에 관한 토론을 한다"며 자신의 작품이 미친 영향력에 뿌듯해했다.

신언엽 작가 / 사진=DB


역사적인 결과물을 이뤄낸 신언엽 작가이지만, 그는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들을 기점으로 신언엽 작가는 만들고 싶은 것에 대한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다. 그는 "충무공 이순신 같은 영웅들의 서사도 담고 싶다. 더 나아가 위안부를 위한 작품도 만들고 싶다"며 "우리가 아픈 역사만을 생각하는데, 그 장면을 누구나 쉽게 관심 있게 볼 수 있게끔 좀 더 생생하게 구현하는 게 목적"이라고 귀띔했다.

이처럼 신언엽 작가의 개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디오라마의 새로운 판도를 연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통해 세운 목표를 밝혔다. 가장 먼저 이번 4.27 판문점 작품의 후속작으로 9.19 남북 정상회담, 조선노동당 로비 청사에 선 각국 정상의 모습 등을 만들어 내는 거다. 뿐만 아니라 이후에는 북한에서도 전시를 하는 게 신언엽 작가의 바람이었다. 그는 "그렇게만 된다면 제가 남북 간의 문화 교류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며 웃어 보였다.

또 다른 목표는 교육에 있었다. 신언엽 작가는 자신이 개척해온 디오라마의 길과 과정을 교과서에 싣고 싶어 했다. 추후에는 이와 관련된 학부 강의를 만들고 싶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결국에는 하나의 직업군으로 이어져 디오라마와 관련된 새로운 직업이 창출되기를 바라는 궁극적인 목표가 존재했다.

"전 디오라마 작업을 하는 순간이 즐겁기만 해요. 작업을 끝내고 완성된 작품을 보고 있으면 보람도 있고요. 그래서인가, 매일이 행복해요. 빨리 가서 작업하고 싶은 마음에 아침에 해 뜨는 게 기다려져요. 디오라마는 평생 할 수 있는 놀이예요. 나중에 나이가 들어 눈이 나빠지면 안 보이는 대로 천천히 할 수도 있고요. 그렇게 제 작품을 만들다 보면, 제대로 된 디오라마 박물관을 하나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스포츠투데이 김샛별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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