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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들' 문소리, 비중을 잊게 만드는 명배우의 무게감 [인터뷰]
작성 : 2019년 05월 14일(화) 15:32

문소리 배심원들 / 사진=CGV 아트하우스 제공

[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문소리는 결정적 한 순간을 위한 배우다. 그러나 그 결정적 한 순간은 허투루 나오지 않는다. 수도 없는 노력이 있어야 만들어지는 한 장면. 문소리는 그 순간을 만들어낼 줄 아는 여유로운 배우의 면모를 갖췄다. 문소리는 극적 전개를 한 층 한 층 쌓아올린 후 반드시 터트리고야 만다. 그는 '마침내'를 완성시키는 명배우다.

2008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의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영화 '배심원들'(감독 홍승완·제작 반짝반짝영화사)에서 문소리는 법과 원칙에 따라 판결하는 판사 김준겸 역을 맡았다. 8명의 배심원들이 각기 다른 캐릭터를 표방할 때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는 재판장은 적은 분량에도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특히 배심원들과 재판부가 판결을 두고 갈등을 빚는 상황 속에서 정확하고 신속하게 재판을 이끌어가야 하는 판사의 역할인 만큼 문소리의 위치는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그런 점에서 문소리는 사건과 인물의 밸런스를 정확하게 맞출 줄 아는 힘을 알고 있는 배우다. 그는 매 장면마다 낮은 톤으로 분위기를 휘어잡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가 자칫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게 흐름을 정제시켰다.

문소리가 처음 이 시나리오를 선택했을 때, 주변의 우려는 적지 않았다. '첫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소재 특성상 배심원들에 초점이 맞춰지며 그가 맡은 재판장의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소리에게는 배역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문소리는 역할에 대해 "김준겸은 기득권, 권력 지향적인 인물이 아니다. 배심원들이 보기엔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고 자신의 캐릭터를 설명했다.

또한 '배심원들'을 "새로운 한국 영화 이야기"라고 정의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전복적인 영화적 시도를 하거나 새로운 이야기 전개를 가지지 않는다"고 영화를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자극적인 이야기가 난무하는 요즘의 충무로에서 '배심원들' 속 진지한 정의는 되려 신선함을 자아낸다. 문소리 역시 '배심원들'을 처음 만났을 때 새로움을 느꼈다고 전했다. 극 속 녹아든 뭉클한 감정이 관객들에게 전해지면 좋겠다는 기대감이 있었다고.

문소리의 말을 빌리자면 그간 충무로에서는 검사도, 변호사도 폭력을 행사하며 불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것. 바로 이 점에서 '배심원들'은 차별성을 갖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중요한 문제를 대화로 해결한다. 실제로 작품에서는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이 존재하지 않는다.

문소리 배심원들 / 사진=CGV 아트하우스 제공


앞서 다양한 작품과 장르에서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해왔던 문소리는 '배심원들'을 통해 카리스마 있는 여성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가 생각하는 김준겸의 강점은 모두를 품을 수 있는 큰 사람의 멋짐이다. 이를 위해 문소리는 발로 뛰며 캐릭터를 구현해했다.

문소리는 실제로 김영란 전 대법관부터 다양한 여성 판사들을 만나고 그들의 판결문을 소리 내 읽으며 김준겸을 완성시켰다. 그는 "재판을 몇 번 참관한 후에 판결문에 익숙해지기 위해 자주 읽었다. 법의 기초부터 공부해 뉴스를 매일 읽곤 했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했다.

"여성 판사들을 만난 후 느낀 건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으면서 다르더라. 김준겸은 문소리에서 출발해서 접근해도 가능하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판사라는 직업이) 멀게만 느껴져서 걱정했는데 판사도 다 인간이다. 권위를 갖고 있는 만큼 짐도 많다. 양형을 내리게 되는 경우는 심적으로 부담이 크다고 한다. 고충이 크겠다고 생각했다."

'배심원들' 중 인상 깊은 점은 극이 진행될수록 문소리는 단순히 스크린 속 재판장이 아닌 이 사회의 불화를 모조리 떠안는 듯 무거운 표정을 짓는다. 김준겸이라는 캐릭터는 원칙과 규칙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심원들의 감정 호소에도 쉽게 동조하지 않는다. 김준겸은 관점은 정의를 향한 사투 보다는 이성과 진실에 중점을 둔다. 오롯이 또렷한 자세로 세상을 관통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소리의 마지막 판결문 낭독은 올바르고 정직하다. 이는 문소리가 표현하려 했던 판사의 몫이자 의미가 아닐까.

이야기가 가장 클라이맥스로 닿으며 재판은 점점 더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그 속에서 문소리는 그 만의 무게감으로 중심을 잡는다. 문소리의 '한방'이 있고 나서야 '배심원들'은 비로소 결말을 짓는다. 문소리가 움직이는 방식이 곧 '배심원들'의 흐름인 덕분이다.

문소리는 명배우라는 호칭답지 않게 본인의 연기를 겸허하게 평가했다. 그는 실제로 매 작품을 보고 나서 아쉬운 점만 남는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번 작품 역시 문소리에게는 모자란 연기력만 보였다고. 하지만 문소리의 기우는 작품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문소리의 또렷한 눈매가 관객들을 압도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문소리의 잔상이 강하게 남아 다시 한 번 배우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기도 한다.

'배심원들' 언론시사회가 끝난 후 영화적 재미와 메시지를 동시에 잡았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좋은 시선과 평가가 줄지은 만큼 배우진의 기대감이 남다를 터. 이에 문소리는 "워낙 평가가 좋아 모든 배우들이 흥행을 기대하고 있다. 사실 작업 과정에서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팀워크다. 예산이 많은 영화가 아니었기에 입소문을 기대하고 있다"면서도 "지금은 분위기가 좋지만 아직 샴페인을 터트릴 때가 아니다. 개봉 첫 주 끝나고 다시 만나자고 진정시켰다"고 유머러스하게 덧붙이기도 했다.

문소리는 대한민국 영화사와 함께 한 만큼 어느덧 현장에서 선 굵은 선배 배우가 됐다. 그는 "선배라는 책임감을 주변에서 자꾸 준다"며 "나는 선배 배우들 혹은 사람보다 좋은 작품으로 위안을 많이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잡으며 20년 연기 인생을 버틴 문소리다. 하지만 문소리는 "버티려는 마음이 듣는 순간 집착이고 욕심이 된다"고 털어놨다. 버틴다는 마음보다 배우로서의 즐거움을 찾을 뿐이라고. 그는 지난 연기 인생을 돌이키며 많은 이들이 인생작으로 손꼽는 영화 '박하사탕' 속 대사를 읊기도 했다. "그 꿈이 아름다운 꿈이었으면 좋겠다." 문소리는 여전히 아름다운 꿈을 꾸는 중이고 연기할 수 있는 곳은 "어디든 찾아가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드러냈다. 문소리는 그저 이야기를 따라 흘러가는 한 마리 나비 같은 배우일 뿐이다.

[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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