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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사 vs 노조, 방송가 52시간 '동상이몽' [ST기획③]
작성 : 2019년 05월 11일(토) 13:03

화유기, 손 더 게스트, 황후의 품격, 아스달 연대기 / 사진=각 드라마 포스터

[스포츠투데이 공동취재기획팀] 밤샘 촬영이 일상이던 방송가 스태프들에게도 볕 들 날이 왔다. 근로기준법 52시간 개정안이 통과된 것이다.

정부는 본격 법 시행에 앞서 방송가에 올해 6월 30일까지 주 68시간 근무제를 시범 운용할 수 있는 1년의 유예기간을 줬다. 10개월이 지났지만, 현장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관계자들은 '과도기'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제작사와 노조 사이에는 양보할 수 없는 입장 차이도, 갑작스러운 정책으로 인한 고충도 존재했다.

주 52시간 적용까지 불과 2개월 밖에 남지 않은 현재, 스포츠투데이는 근무제를 앞둔 노조와 제작사, 양측의 입장을 들어봤다.

사진=각 제작사 로고


▲본사진은 글의 내용과 무관

◆ 제작사들 "68시간 후 제작비 상승, 52시간은 더 문제"

익명을 요구한 제작사 관계자 A씨는 입장을 전하기에 앞서 "제작사마다 입장이 다른 것이 현실"이라고 운을 뗐다. 정책 시행이 제작사의 규모나 리더의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규모가 작은 회사들은 중간에서 스태프와 방송사의 눈치를 보지만, 되려 규모가 큰 제작사는 자신들 중심으로 일을 처리한다는 설명이다.

A씨가 꼽은 가장 큰 고충은 '제작비 상승'이다. 근로시간이 단축되면서 촬영 일수가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그 비용이 늘어났다. A씨는 "68시간 안에서 스태프들의 하루 근무시간과 휴식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제작팀이 두 팀으로 나뉘어 촬영이 진행되어야 한다"며 "현재 제작 환경에서는 A, B팀으로 나눠져 촬영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제작사가 단축된 시간에 맞춰 촬영을 끝내기 위해 팀을 나누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A씨에 따르면 이러한 방식은 시간을 줄여주는 대신, 제작비 상승을 초래한다. 팀을 두 개로 나누는 만큼, 꾸려야 하는 스태프도 많아지기 때문에 비용이 더 들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긴박한 드라마 촬영장의 특성상 각 팀에서 끝내지 못한 분량을 재촬영해야 하는 상황도 자주 발생한다. 이러한 경우 다시 현장을 세팅해야 하기 때문에 장소 대여비를 비롯, 소품 준비 비용이 또 생긴다. 현실적으로 줄어든 시간에 촬영을 마치지 못해 제작비가 자꾸 추가되는 것이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도 현실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협회의 수장인 배대식 국장 역시 제작비에 대한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법적인 문제니까 68시간을 맞추려고 노력하면서 겨우 하고는 있다. 문제는 7월부터 적용되는 52시간"이라며 "지금도 제작 비용이 100% 상승했는데, 52시간을 시행한다면 비용 증가 부분이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그 부분에 대해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지적했다.

물론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전제작으로로 진행되는 드라마의 경우 개정된 근로 시간에 맞춰 노동 배분이 가능하다. 문제는 한국의 드라마 촬영 시스템에서 사전제작으로 진행되는 작품들이 극히 일부라는 점이다. 협찬, 간접광고(PPL) 섭외가 어려운 것도 사전제작드라마가 정착하기 힘든 요인으로 꼽힌다.

배 국장은 "사전제작을 하게 되면 실시간으로 협찬이 붙기 어렵다. 광고주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투명한 사전제작드라마에 섣불리 돈을 쓰지 않는다"며 "유명한 작가와 톱배우의 라인업이 아닌 이상 대부분 사전에 협찬을 받기 힘들기 때문에 사전제작드라마가 부족한 것"이라고 말했다.

예측이 힘든 촬영장의 유동성도 52시간 정착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배 국장에 따르면 드라마는 PD가 현장을 주도하기 때문에, 연출자의 재량과 능력에 따라 제작 시간이 좌우된다. 연출자들은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똑같은 장면을 여러 번 찍는다. 연출자의 스타일에 따라 촬영이 길어지거나 짧아지는 것이다. 촬영이 길어지면 개정된 근로기준법 시간 준수가 어려워지지만 제작사 입장에서 연출자의 권한을 터치하기란 쉽지 않다.

사진=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페이스북


◆ 스태프들 "개정 후에도 열약, 턴키 계약이 문제"

이번 개정법을 가장 몸으로 부딪히는 이들은 현장 스태프들이다.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의 김두영 지부장은 '표준근로계약서'를 강조했다.

김 지부장은 "노조 측이 제작사, 방송사에 가장 주안점을 두고 요구하는 건 개별계약건과 현장근로시간"이라며 "지난해 현장 스태프들은 노동자로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일을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일명 '턴키 계약'(turn key contract)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턴키 계약은 스태프 개개인과 근로계약을 맺는 것이 아닌, 조명, 연출, 카메라 등 각 팀의 대표인 감독과 계약을 맺는 방식을 뜻한다.

김 지부장은 제작사가 스태프들과 개별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려 감독들을 내세워 대리계약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방송 현장의 노동자들은 수십 년간 법의 사각지대서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수많은 사고를 겪으면서도 4대보험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현장 스태프) 노조와 제작사의 의견이 가장 엇갈리는 부분은 근로 시간을 적용하는 기준이다. 예를 들어 노조 측은 스태프가 여의도에서 버스를 타고 세트장으로 이동하는 시간과 다시 여의도에 도착하는 시간까지를 근로시간으로 본다. 반면 제작사는 현장 도착 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양측 주장 사이에는 하루 약 두 세 시간의 차이가 발생한다. 김 지부장은 "일주일에 계산하면 20시간 가까이 되는데, 그렇게 되면 결국은 이전과 달라진 게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 52시간 최대 걸림돌이 PPL 이라고?

하지만 제작사와 방송사, 스태프가 이구동성 공감하는 문제가 있다. 바로 제작비 상승 문제다.

김 지부장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보다 제작 환경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드라마는 4회분의 대본만 나오면 편성이 가능하다. 이렇게 되니 완성되지 않은 대본으로 편성을 받고 촬영이 들어간다. 이게 쪽대본이 되는 거다. 결국 이 편성기준만 변경해도 제작 비용을 감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지부장의 설명에 따르면 대본이 100% 완성돼 있다면, 미리 촬영 동선을 짤 수 있어 불필요한 이동 시간을 줄이는 것은 물론, 대여비와 교통비도 효율적으로 책정할 수 있다. 그는 "대본이 완성됐다는 것은 이미 사전에 합의가 충분히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촬영 중 작가와 연출이 부딪치고 현장에서 대본이 계속해서 수정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이 또한 제작 비용 감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방송 스태프, 방송사, 제작사, 언론 노조가 모여 드라마 제작 환경 개선 협의를 두고 4자 회담을 진행 중이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제작, 노동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절충안과 협의점을 찾아내는 일이다.

[스포츠투데이 김샛별, 이호영, 김나연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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