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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경기는 끝났다, 방송가 52시간제 개막 D-2개월 [ST기획①]
작성 : 2019년 05월 11일(토) 13:01

사진=이하늬 인스타그램 / ▲ 본 사진은 글의 내용과 무관합니다

[스포츠투데이 공동취재기획팀] "촬영 현장,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스태프들의 주당 근로시간이 68시간으로 바뀐 이후 25년차 배우 차태현의 말이다. 드라마 제작발표회나 기자간담회에서 이 얘기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최근 MBC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박원국 PD는 "근로기준법에 대해 다루는 만큼 그 내용을 잘 지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스태프 대표를 선출하고 제작진과 협의 하에 근로시간과 휴식시간 기준을 확실하게 정해 이행하고 있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신경 쓰고 귀 기울이고 있다"고 자부했다.

최근 방송가에서 가장 '핫한' 이슈는 근로기준법 개정이다. 방송노동자도 노종자로 보호받는 근로기준법이 7월 1부터 시행되면서 방송가에도 주당 최장 68시간 근무제가 적용됐다. 또한 같은 해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됐고, 300인 이상 회사는 주 52시간 근로제를 시행해야 한다.

그러나 업무 환경이 발목을 잡고 있다. 연장 촬영, 야근이 많은데다 업무 주기가 일정하지 않은 방송사가의 특수성 탓이다. 이를 감안해 1년의 유예기간을 얻은 방송가는 주 68시간 근무제를 임시 적용해 이를 시범적으로 운용해왔다. 즉 하루 근무시간 14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고, 주 근무시간은 68시간으로 제한하는 방침이다. 이전까지 드라마 촬영기간 동안 주 130시간을 넘을 정도로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감내해야 했던 것에 비하면 절반 가까이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 셈이다.

◆ 강력한 변화의 바람에 모두가 '휘청휘청'

근로시간 단축은 큰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며 방송가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이 바람이 순탄하게 불지만은 않았다. 모든 변화의 시작이 그렇듯 말이다.

지상파 3사는 노동 시간 단축을 위해 드라마 방영시간을 60분으로 줄이는 데 합의하고, 제작 가이드라인도 만들었다. 현재 드라마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CJ E&M도 마찬가지다.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이한빛 PD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뒤 CJ E&M의 제작 환경에 대한 성토가 잇따랐고, CJ E&M은 방송 제작환경과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제작인력의 적정 근로시간 및 휴식시간 등 포괄적 원칙 수립, 합리적 표준 근로계약서 마련 및 권고 등 9가지 개선과제 실천을 약속했다. 노조단체 한빛센터는 지난해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과 협상을 진행, 1일 최대 근무 시간 14시간, 1주 68시간 근로시간 준수 등을 약속하는 제작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제작 가이드라인은 '그림의 떡'이었던 걸까. 제작환경에 대한 잡음이 끊이지 않으며 무용지물이 된 모양새다.

사진=정의당 추혜선 의원실


지난해 노동시간이 길어지는 등의 문제가 심각했던 SBS 드라마 '황후의 품격'의 경우, 해당 드라마 스태프들이 SBS와 제작사 에스엠라이프디자인그룹을 서울지방노동청에 고발했다. 드라마 제작진과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고, 연속 촬영이 이뤄진 10일 동안에만 총 207시간을 일하는 등 법정 노동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노동이 촬영기간 내내 이어져 제작진이 심각한 건강상의 위협을 받았다는 것이 고발 이유였다. tvN '나인룸', OCN '플레이어', '손 the 게스트' 제작진도 고발을 접수했다. 그러나 아직 노동당국의 위법 여부 확인은 결론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또한 최근에는 '아스달 연대기'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이 스태프들에게 고발당했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스태프와 개별적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점 ▲근로시간과 연장근로 제한 규정을 지키지 않은 점 ▲또 연장 야간근로를 시키며 법에 따른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점 ▲브루나이 촬영에서는 최장 7일간 151시간 30분의 휴일 없는 연속 근로를 한 점 ▲스태프 1명은 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 점이 그 이유였다. 장동건, 송중기, 김지원 등 최고의 스타들이 뭉친 '아스달 연대기'는 제작비만 400억 원에 달하는 대작으로 올해 스튜디오 드래곤의 최고 기대작이었다. 그러나 스태프들의 연이은 처우 고발로 첫 발부터 삐끗한 상황이다.

이에 스튜디오드래곤 측은 "제작가이드의 본래 취지에 따라 제작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스태프협의체 구성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원자가 없어 난항을 겪는 등 가이드 정착 초기에 어려움도 있지만 주 68시간 제작시간, B팀 운영 등을 준수하며 제작환경 개선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렇듯 같은 현장임에도 각자의 의견은 상이하다. 법이 개정된 만큼 당연히 지켜야 할 일이지만 제작사는 갑작스럽게 늘어난 제작비를 감당하기가 힘들다는 고충을 토로한다. 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스태프를 A팀, B팀은 기본이고 C팀까지 만들어서 촬영해야 하는 상황. 그러나 이는 곧 제작비의 엄청난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제작사와 방송국의 앓는 소리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태프는 물론 제작사와 방송국 모두 법 개정 취지에는 적극 공감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 없이 시행된 정책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법 개정 이후 스태프들의 고발이 이어지고 있지만 제작사와 방송국도 할 말은 있는 것. 근본적으로 큰 틀을 바꾸지 않는 이상은 구성원들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릴 것으로 보인다.

◆ 제3자가 아닌 당사자인 배우

이와 함께 작품을 완성하는 요소는 또 하나 있다. 바로 배우들이다. 배우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 마치 제3자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가장 가까이에서 변화의 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한 한 배우는 "배우들의 밤샘 촬영은 당연할 정도로 숱하게 이어졌다. 여전히 드라마 촬영 현장은 촉박하더라. 법이 바뀌었다고 얼핏 들었는데, 배우들에게는 여전히 가혹하더라. 대신 스태프들이 덜 고생하는 느낌이었다. 배우들이 온종일 촬영을 하고 있으면, 스태프들의 얼굴은 계속 바뀌었다. 교대로 돌아가며 근무 시간을 지키나보다"라고 말했다.

스태프들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만 배우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 스태프들은 16시간(휴게시간 포함)이 지나면 교체된다 해도 배우들이 바뀔 수는 없기 때문. 스태프들의 노동 단축으로 원래는 하루만에 끝냈을 장면들이 2~3일로 늘어지다보면 배우들의 스케줄은 물론 감정선까지 깨지게 되는 고충이 있다.

스태프, 방송가와 제작사, 그리고 배우들까지. 어떤 부분도 안정된 것이 없는 법 개정에 앓는 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여기까지는 주 68시간을 시행했을 때의 일이다. 2021년 7월부터는 주 52시간의 근로시간 제한이 적용된다.

68시간도 모자라 이제는 52시간 도입이다. 시범경기는 끝났고, 정식 경기를 앞둔 방송가에는 또 한 번의 비상이 걸렸다.

[스포츠투데이 김나연, 이호영, 김샛별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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