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스포츠
포토
스투툰
'노무현과 바보들' 한 사람의 진심이 불러 일으킨 파동 [무비뷰]
작성 : 2019년 04월 18일(목) 12:09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 리뷰 / 사진=영화 노무현과 바보들 포스터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한 사람의 순수한 열망과 진심이 불러 일으킨 파동은 연민과 동경, 통한의 그리움, 그리고 좌절 끝에서 피어난 희망이 됐다. 故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기억과 입을 통해 넘쳐흐르는 감정들이다. '노무현'이란 이름이 상징하는 보존적 가치를 담은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이다.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감독 김재희·제작 바보들)은 봉하마을의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정취로 문을 연다. 그러나 경이로운 자연 풍광에 휘감기는 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육성은 쓸쓸하고 가엾은 회한을 일으킨다.

"나는 봉화산 같은 존재야. 산맥이 없어. 이 봉화산이 큰 산맥에 연결되어 있는 산맥이 아무것도 없고 딱 홀로 서 있는 돌출되어 있는 산이야. 여기서 새로운 삶의 목표를 가지고 돌아왔는데 내가 돌아온 곳은 이 곳을 떠나기 전의 삶보다 더 고달픈 삶으로 돌아와 버렸어… 어릴 때는 끊임없이 희망이 있었는데 지금은 희망이 없어져 버렸어."

영화의 시작이다.

1981년 부림사건의 변호인을 시작으로 숱하게 벌어지는 이 사회의 부정과 불의를 알았고 이에 분노로 맞선 한 남자. 그는 원칙이 승리하는 시대를 꿈꿨다. 정경유착이나 권모술수로 성공하는 시대가 아닌, 정직하고 성실하게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성공하고 대접받는 시대.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며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지도자가 되려 한다며 도와달라 목이 터져라 외친다. 참으로 희한한 남자다.

색깔론과 지역주의, 정치 모략이 판치는 한국 정치판에서 소위 말하는 돈도, '빽'도, 인지도도 없으면서 어쩜 그리 당당하게 홀로 싸우는 괴짜다. 그런데도 권력에 머리 조아리고 굴복하지 않고 힘없는 보통 사람들한테 그렇게 도와달란다. 달걀로 바위 치기 해보잔다. 정치인이란 사람이 이렇게 괴짜일 수 있나, 아니 바보가 맞겠다. 근데 그의 미련한 우직함이, 그 순수와 열정이 결국 연민과 동경을 불러일으켰다.

영화는 바보 노무현을 사랑한 바보들, '노사모'의 이야기로 흐른다. 최초 정치인 팬클럽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통칭 '노사모'. 노사모의 시작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실패한 노무현의 낙담과 좌절을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이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주의, 색깔론에 대한 회의감과 부당함의 발현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노사모가 처음부터 비범한 일을 한 건 아니다. 그저 마음 맞는 사람끼리 온라인에서 모여 소소한 일상을 나누던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작은 진심과 위로가 모여 노무현을 다시 희망으로 이끌었다.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 리뷰 / 사진=영화 노무현과 바보들 스틸


영화가 담은 노사모의 추억은 따스하고 다정한 온기를 띄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설렘, 감정의 공유와 연대로 들떠하며 활력을 얻는 이들의 모습은 순수하고 풋풋하다. 그러다 좋아하는 사람이 엄청난 도전을 한다니 덜컥 겁부터 나고, 여전히 무기라곤 열정과 진심뿐이라니 안타까워 도무지 그저 두고 볼 수가 없다. 그렇게 정치와는 무관한, 조직도 돈도 도울 방법도 모르는 보통 사람들이 모여 인지도 3%의 만년 꼴찌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이끌었다. 중요한 면접을 포기하고 목이 터져라 선거 유세에 나섰고, 당의 대위원들 마음을 돌리려 수십, 수백 통의 편지를 썼고, 선거 활동을 위해 돼지 저금통을 모았다. 달걀로 바위 치기가 정말 되더라며 놀라워하던 이들의 찬란한 환희가 일렁인다.

기쁨의 순간도 잠시, 미숙한 농부는 밭을 다 일구지 못한 채 수확을 바랐고 결국 스스로 키운 희망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권위주의 병폐 속에 온갖 조롱과 멸시를 당하며 프레임에 갇힌 대통령을 지켜보거나 외면했다. 영화는 노무현의 분노와 좌절 그 속의 외로움을 담는다. 노사모는 뒤늦은 후회와 회한으로 고통스러운 기억을 곱씹는다. 영화는 이 흐름을 계절로 비유해 담아냈다. 단 수확이 없는 가을을 흘려보낸 미숙한 농부를 책망하고 위로하며.

결국 영화는 이같은 비극을 담고자 함이 아니다. 노무현은 반사체였고, 노사모로 대변되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모여 빛낸 힘은 발광체였노라 말한다. 2009년 5월 23일, 봉하마을 사저에서 찍힌 마지막 CCTV 장면에서 노무현은 집 앞에 난 잡초를 뽑는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또다시 사계는 반복된다. 여름의 폭염과 가뭄 그리고 겨울의 혹한과 추위가 올지라도 봄은 온다. 상식적인 민주주의 사회에서 발광체는 시민이며 그들의 작은 빛이 모여 세상을 바꾸고,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기를 영화는 희망한다. 4월 18일 개봉.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ent@stoo.com]
스투 주요뉴스
최신 뉴스
포토 뉴스

기사 목록

스포츠투데이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