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스포츠
포토
스투툰
이창엽, 앞이 훤히 보이는 말들 [인터뷰]
작성 : 2019년 03월 26일(화) 09:17

왜그래 풍상씨 이창엽 / 사진=팽현준 기자

[스포츠투데이 이호영 기자] 배우 이창엽은 스스로를 꾸미는 말에 능하지 않다. 정석의 말만 늘어놓으면 될 것을 자꾸 솔직하고 싶어 한다. 덕분에 알찬 속이 도드라진다. 그래서 훤히 보인다. 맡겨두면 얼마나 잘 해낼지가.

이창엽은 KBS2 수목드라마 '왜그래 풍상씨'(극본 문영남·연출 진형욱)로 인생의 첫 주연 신고식을 마쳤다. 가족을 위해 살아온 중년 남자 이풍상(유준상)과 속만 썩이는 동생들의 사건 사고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드라마다.

극중 이창엽은 검은 조직의 유혹을 받는 배다른 막냇동생 이외상을 연기했다. 집안의 아픈 손가락으로 맏형의 의중과는 다르게 비뚤어졌다. 이외상은 부모 사랑을 못 받아 결핍으로 뭉쳐 툭하면 화를 냈다. 이창엽은 거칠고 포악하게, 때로는 짠하고 안쓰럽게 이외상을 표현했다. 결과는 호평일색이었다. 이창엽은 많은 이들에게 본인의 이름 대신 역할의 이름 이외상으로 불렸다.

의외로 이창엽은 이외상 캐릭터를 처음 접했을때 '뭐 이런 애가 다 있나' 싶었단다. 그는 "실제의 나와는 달랐다. 거칠고 포악해 보였고, 몹시 감정적이더라. 난 매사 이성적으로 다시 한번 생각하려 노력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자제한다. 겉면만 보고서는 나와는 다른 인물이라 느꼈다"고 설명했다.

달라서 더 끌렸다. 이창엽은 자신과 다른 이외상에게 더욱 매력을 느꼈다. 그는 "나에게 없는 성격을 연기해보고 싶었다. 역할 설명을 보고서 조폭이라는 말에 덜컥 영화 '비열한 거리' 조인성 선배처럼 머리를 깎고, 가죽재킷을 입고서 미팅 자리에 갔다. 감독님이 놀라시더라. '저 안 써주시면 이 옷 반품해야 해요'라고 떼를 썼다"고 전했다.


그다음 과제는 다른 이외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 이창엽은 '결핍'에 주목했다. 그는 "외로움은 모두에게 형용될 수 있는 감정이었다. 결핍도 마찬가지다. 내가 무언가 가지지 못해 화가 났던 때들을 떠올렸다. 거기에 이외상을 덧댔다. 심지어 가지지 못한 것이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사랑이라니. 아찔했다"며 "그때부터 이외상과 교집합이 생겼고, 공감에 젖어들었다"고 밝혔다.

두 번째로 이창엽이 초점을 맞춘 것은 이외상과 이풍상의 관계였다. 아버지의 부재를 대신해준 감사한 형, 매사 속박하고 기대의 눈을 하고 있는 부담스러운 형이었다. 이창엽은 "쉽게 말해 형이 아닌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치부하고서 연기하고 싶지는 않더라. 그 이상의 무언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이외상의 서사를 알게 된 이상 단어 하나로 그 관계를 정의 내리기는 싫었다"고 전했다.

이어 "연극 무대에 서며 배운 것"이라며 "사랑 연기를 한다고 다 같은 사랑이 아니더라. 사랑이라는 단어는 인간이 만들어 둔 포장지다. 이외상과 이풍상의 사랑 속에는 원망도 가지 치고 애증도 뻗쳐나갔다. 자꾸 되뇌었다"고 곱씹었다.

'왜그래 풍상씨'는 평일 황금시간대 배치된 미니시리즈지만, 주말드라마의 모양새를 띄었다. 주말극에 능한 문영남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타이틀롤 원톱 주인공 한 명 혹은 남녀 주인공 두명에게만 시선이 모아지지 않았다. 넘쳐나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가 제한된 시간 안에 풀어져야 했고, 주인공 오 남매 중 막내였던 이외상의 분량은 줄어들었다.

이창엽은 "물론 이외상의 주인으로서는 아쉬운 부분이었다. 촬영 이후 덜어낸 서사의 조각들이 꽤 있었다"며 "로맨스도 살짝 가미되어 애정신에 공을 들였으나, 대부분 편집됐다"면서도 얼른 제자리를 찾았다. 그럴수록 연출진의 말에 귀를 기울인 것이다.

그는 "눈빛을 강조하시더라. 사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러한 구조를 깨닫고서 알아듣고 신경 썼다. 이외상은 과거의 아픈 일들을 대부분 타인의 말로 알아채고 아파한다. 눈에 많은 사연을 담아 압축해 상대 배우는 물론, 시청자에게 전달해야 했다. 값진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사람들은 '왜그래 풍상씨' 이외상이 이창엽의 '인생 캐릭터'라고 치켜세운다. 그만큼 잘했다는 칭찬이다. 이창엽은 "하나부터 열까지 고민 투성이라 고마웠던 작품과 이외상이었다"고 한마디 더했다.

그는 "나의 결과는 달랐기에 더욱 잘하고 싶었는데, 잘했다 칭찬들을 해주시니 몸 둘 바 모르겠다"며 "공통점이 없다며 질색하다가 하나씩 찾아가며 교집합을 이뤄봤다. 대사 대신 눈으로 연기해봤고, 작은 멜로를 돋보이게 하려 애도 써봤다. 깡패 역할로 액션도 경험했다. 이것들을 한번 더 하면 더 잘할 수 있겠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흔히들 미니시리즈 주연 데뷔는 승승장구의 발판이라고 일컫는다. 이창엽은 "상상만 해도 어색하고, 낯설다. 마냥 기분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라며 한 발 뺐다. 이유를 물으니, 빠르게만 달리면 흔들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란다.

이창엽은 "예전부터 사람 냄새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해왔다. 뼈대를 지키고 싶다. 눈이 멀어 앞만 보고 달리는 건 나의 성향과 맞지 않는다"며 "건강하고 행복해야 멀리 더 오래 달릴 수 있지 않겠나"라고 되물었다.

"연기가 재밌냐고요? 하면 할수록 힘들어 죽겠는데, 동시에 좋아 죽겠어요. 이 짜릿한 일을 허투루 하고 싶지 않습니다. 묵직하게 앞으로 나아갈 테니 맡겨만 주세요."

[스포츠투데이 이호영 기자 ent@stoo.com, 사진=팽현준 기자]
스투 주요뉴스
최신 뉴스
포토 뉴스

기사 목록

스포츠투데이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