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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이종언 감독, 세월호 참사 고통을 나누는 법 [인터뷰]
작성 : 2019년 03월 25일(월) 18:16

영화 생일 이종언 감독 인터뷰 / 사진=방규현 기자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상실과 결핍, 절망과 좌절. 너무 괴로울지라도 이를 직시해야 할 용기가 필요한 까닭은 이 또한 슬픔을 치유하고 희망을 찾기 위한 삶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종언 감독이 세월호 참사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그려낸 이유는 바로 그래서였다.

영화 '생일'(감독 이종언·제작 나우필름)은 전국민을 비탄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2014년 4월 16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첫 상업영화다.

왜 그토록 많은 생명을 허무하게 떠나보내야 했는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의혹 앞에서 모두를 지독한 상실감과 부채감에 빠지게 한 국민적 트라우마. 이를 영화로 담아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테다. 그럼에도 이종언 감독은 용기를 냈다. "아픔이 목까지 차 있는데, 바늘로 찌르면 터질 것처럼 차 있을 때 꺼내지 않으면 우리가 마주해야 할 것을 외면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그 울음을 들어주고 받아주고 그렇게 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고, 힘들었던 사건을 다시 볼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같다. 이 목까지 찬 눈물을 꺼낼 수 있는 여건이나 상황을 우리가 함께 했으면 좋겠고, 이 영화가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그 역시도 영화가 특별히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영화나 소설, 시나 칼럼 등 다양한 수단을 거쳐 소통을 주고받다 보면 어제보단 나은 오늘이 될 거란 희망이 있었다. 살면서 극장에서 모든 위로를 받았던 감독이었던 만큼 제 영화 또한 사람들에 건네고 싶은 이야기이자 함께 나누고 싶은 소통이 되길 바랐던 것이다.

이종언 감독은 5년 전 그날을 회상했다. 허리디스크 수술을 하고 집에서 쉴 때였다. 조금 늦게 TV를 켰다. 그날 뉴스를 킨 이후로 며칠간 TV를 끌 수 없었다. 왠지 자꾸만 진도를 가야 할 것만 같았다. 저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가서 할 일도 없는데 가서 뭐라도 하고 싶었다. 수술 탓에 현관 밖으로 혼자 나가기도 힘들 만큼 거동이 불편할 때여서 가족들이 만류했다. 그 이후 며칠, 몇 달을 잊을 수 없는 긴 시간을 보냈다고.

이종언 감독은 "저는 그날 이후로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벌써 4~5년이 지났지만 저는 멈춰있고 시간이 건너뛰어버린 느낌"이라고 지난 시간을 회상했다. 참사 다음 해인 2015년, 감독은 안산에 갔다. 그곳에 위치한 치유공간 '이웃'에서 봉사를 하다 실제 우리 곁을 떠난 아이들의 생일이 다가오면 그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생일 모임을 갖는 것을 보며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그려야겠단 결심을 했다.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이는 생의 이면에 잠복해 있는 실존적 비극성을 맞닥뜨리는 지점이지만 이들의 '생일하다'는 곧 '기억하겠다'는 의미이자 다짐이었다. 이종언 감독은 "생일은 누군가 태어난 날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 안에선 살아내야 하는 날들로 보여진다. 제게 '생일'은 좀 더 살아가는 날들로 더 의미가 생긴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어 "슬프고 아픈 이야기를 왜 굳이 영화로 만들어서 보여주느냐고 할 순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각자 자신의 소중한 사람, 소중한 기억들을 떠올리는 경험이 된다면 관객 스스로에 작게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고 속내를 전했다.

결국 진심의 힘은 통하게 마련이다. 세월호 유족들이 인터뷰와 취재에 응해줬고 "힘내서 잘 찍으라"는 격려를 해줬다. 관객에 인정받기보다 제일 먼저 그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랐던 감독의 마음이 전해진 까닭일터. 실제 그들에게서 "잘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제야 처음으로 마음이 놓였단 감독이다. 함께 해준 제작자, 투자자, 스태프, 그리고 배우들에게도 고마움이 컸다. "하나하나 꾸려져 가는 과정이 하나씩 힘이 보태지는 것 같았다"고 회상한 감독은 이들의 용기가 더욱 대단한 것이라고 공을 돌렸다.

특히 설경구 전도연은 '생일'을 완성하는 또다른 키워드였다. 이들은 그저 역할을 해내는데 그치지 않고, 캐릭터의 감정을 공감하고 동화된 모습을 보였다. 메이킹 필름만 봐도 북받치는 감정에 눈물 흘리는 이들의 모습이 종종 포착됐다. 함께 공감하고 감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는데 이들은 더더욱 조심스레, 그리고 모든 진심을 쏟아부은 것이다.

영화 생일 이종언 감독 인터뷰 / 사진=영화 스틸


"대본을 보고 얼마나 당황스럽고 고민을 했겠나. 그러나 이 작품에 다가와주셔서 너무 놀라웠다"는 감독은 촬영을 시작하고 모니터에 담긴 이들의 모습이 자신이 상상했던 결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고 했다. 자신이 안산에서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시나리오를 쓰며 상상했던 모습들을 이 두 배우는 고스란히 얼굴에 담아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제가 아마 가장 먼저 이 영화가 잘 만들어질 수 있을 거란 가능성을 느꼈을 거다. 배우들 때문"이란 감독이지만, 그 또한 촬영하며 저도 모르게 울고 있을 때가 많았다. 스스로 기억이 나지 않는데 메이킹 촬영을 하는 이가 귀띔해줘 알았단다.

하지만 감독은 촬영하며 제 감정을 묶어놓으려 했다. 충분히 조심할 만큼 조심해도 또 조심해야 했다. "이 영화가 사람들을 다 만나고 내려올 때까지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만들었다고 해도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것에서 실수나 상처가 생겨나질 않길 바랐다"는 감독이다. 누구보다 그들에 공감했고 연대했던 감독의 이같은 진심은 이미 영화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그날의 사건 이후 일상을 살아가는 혹은 버티는 이들의 이야기를 조금의 과장도 없이 너무도 사실적으로 그려낸 감독이다. 이를테면 분향소를 찾은 부모들이 이제 성인이 된 아이들의 사진 앞에 맥주 캔을 놓으며 왁자지껄 농담을 하고 분위기를 살리다가도 "소풍 왔냐"는 날 선 말 한마디에 무너지는 모습이다. 덤덤한 일상에도 아주 미세한 균열이 일게 되는 순간 금세 울컥하며 고통과 슬픔이 수반된다.

이종언 감독은 "우리에게 일어났던 그 사건이 평범하고 보통의 삶을 살던 우리 모두의 삶을 마음대로 바꿔놓고 변화시켜 놓은 것을 잘 보여주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 아픔을 다시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통해 희망과 위안이 될 수 있음을, 그 어떤 강요 없이 그저 진심으로 담아내고 있는 '생일'이다. 모든 신, 모든 배우에게서 진정성이 묻어나고 그들의 유대감이 영화를 따스하게 감돈다. 이를 두고 이종언 감독은 "이 영화는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이 다들 같은 마음을 가지고 다가왔고 이 작은 마음이 모여서 만들어진 영화"라며 "너무 아픈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피하기만 하지 않고 마주해서 기억하고 잊지 않고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애쓰는 이들 모두를 응원하고 싶다"고 했다. 이종언 감독이 소통과 위로를 통해 치유를 전하고자 하는 진심이었다.

영화 생일 이종언 감독 인터뷰 / 사진=방규현 기자


영화 생일 이종언 감독 인터뷰 / 사진=방규현 기자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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