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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는 이정재와 싸운다 [인터뷰]
작성 : 2019년 02월 20일(수) 18:15

사바하 이정재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츠투데이 이호영 기자] "'사바하' 마쳤으니, 또 다른 '이정재 신상품' 만들어야죠."

배우 이정재(46)는 남이 아닌 자기 자신과 싸운다. 보여줬던 연기 또 보여주면 자칫 지루할까 봐 행여나 익숙할까 봐 싶어서다. 오래된 배우로서의 본분이란다.

이 골 아픈 전쟁은 이정재가 데뷔한 지난 1993년 이후부터 26년간 이어져왔다. 그는 영화 '사바하'(감독 장재현·제작 외유내강)가 좋았던 이유를 묻자 "새로웠다"고 답했다.

'사바하'는 '검은 사제들'(2015) 장재현 감독의 신작이다. 신흥 종교 집단을 쫓던 박목사(이정재)가 의문의 인물과 사건들을 마주하게 되며 시작되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이정재가 연기한 박목사는 사건을 관찰하고, 말로 설명하며 풀어나가는 화자의 역할을 한다.

이정재는 "사이비 잡는 목사, 그걸로 돈을 버는 목사, 신을 믿지만 동시에 원망도 가득한 목사다. 아주 독특한 캐릭터 아닌가. 새로웠다"며 "장 감독의 '검은 사제들'을 보고서 신선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도 있었다. 어려운 내용임은 사실이지만, 알고 싶은 이야기임에도 틀림없다. 현대극이라는 지점도 반가웠다. 새로운 작품, 새로운 역할, 또 다른 나를 보여줄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사바하 이정재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현대극이 반가웠다는 그의 말에 관객도 공감할 것이다. 실제로 스크린 속 코트를 걸친 이정재의 모습은 오래간만이다. 그는 '암살'(2015) '인천상륙작전'(2016) '대립군'(2017)으로 역사 속에서, '신과 함께'(2017, 2018) 시리즈로 사후세계에 살며 분장과 고전 의상을 걸쳤다.

반면, '사바하' 박목사는 이 시대를 살아가며 주변 어딘가 한 명쯤 있을법한 인물이다. 이정재는 "오래간만에 생활연기를 보여줄 생각하니 괜히 들뜨게 되더라. 제발 자연스럽게 나오길 기도하고 노력했다"며 "껄렁한 느낌을 주기 위해 연신 줄담배를 피워도 보고,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며 일상 연기에 몰두했다"고 전했다.

이정재는 박목사가 자칫 심심한 인물이 될까 염려해 장 감독에게 많은 것을 제안했다고. 아쉽게도 해당 설정들은 영화에서 지워졌다. 그는 "여러 아이디어를 제안해 촬영했으나, 사라졌더라. 연출자가 그리 선택했다면, 내가 틀렸던 것"이라며 "전혀 서운하지 않다. 서운해서는 안 된다. 작업을 함께하며 나의 설정들을 지켜본 감독 포함 스태프가 200명이 넘는다. 그들이 최초 관객이며, 그 선택이 옳다고 믿는다. 딱 적절한 수위로 맞춰졌다"고 말했다.

대신 이정재가 지키고자 한 호흡의 너울은 그대로 녹아들어 '사바하'를 채웠다. 작품 속 박목사는 초반부 다소 가벼운 인물로 그려진다. 돈만 밝히는 목사라는 희극적 요소를 도맡아 허당기를 뿜어낸다. 이내 중후반부 접어들어 사건을 파헤쳐가며 점차 박목사의 분위기는 무거워진다. 사건에 집착하고 진실을 찾고자 광기를 뿜고, 결국 원망스러운 절규를 토해낸다. 이정재는 이러한 박목사의 리듬에 맞춰 눈빛과 톤, 몸짓의 완급을 능란하게 조절한다.

이정재는 "괜한 불안감에 카메라를 들고 장 감독을 따로 찾아가 수없이 리허설을 맞췄다. 박목사를 얼마나 가볍고 유연하게 시작을 할 것인지, 첫 수위를 정하는 것이 나에게는 정말 중요했다"며 "너무 하이톤으로 시작하면 중후반부 지나 괴리감을 줄 수 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어둡게 시작하면 지루한 인물에서 그친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 만족스럽게 조절됐다"고 설명했다.

사바하 이정재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일상에서 나올법한 생활연기, 연기하는 동안 유지해야 하는 호흡 등에 대한 열변을 토로하던 이정재. 심지어 그는 "'사바하'에 박정민, 이다윗 배우가 출연한다. 이들이 나오는 영화는 모조리 찾아봤다. 그 친구들이 내가 말하는 이 호흡을 잘 지키는 배우들이다. 배우고 싶다"고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까마득한 후배의 특출 난 재능을 인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닮고 싶으며 당장 배우고 싶단다. 자칫 고고한 자존심에 감출법도 한 이야기를 이정재는 스스럼없이 뱉는다. 진심이기 때문이다. 그는 "'박정민처럼, 이다윗처럼 해야 하는데'라고 생각했다. 일상적으로 툭툭 던지는 연기, 정말 어려운 것"이라며 "사실 연기 오래 한 배우들은 다들 비슷한 괴리감을 느낄 것이다. 내 느낌이 관객에 전달되지 않을까 싶은 조바심은 오래 할수록, 많은 가짓수의 역할을 할수록 커진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정재는 26년째, 훗날 노배우가 될 때까지 잘하고 싶은가 보다. 역할을 고르는 기준도 치열하다. 했던 거 또 하기는 죽어도 싫단다. 그는 "염라대왕도 해보고 장교에 친일파 역할도 해봤다. 내 역할의 리듬을 살펴보니 '강약강약' 아닌, '강강강강'이더라"며 "직업군이 독특하거나, 캐릭터가 비현실적이면 같은 배우라도 이전과 달라 보이기에 유리하다. 그런 역할에 항상 목말라있다. 시작부터 그랬다. 어렸을 때는 '다양한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다'는 욕심만 앞섰고 표현에는 서툴렀다. 도전 아닌 도전을 거친 시기다. 여전히 해보지 않았던 느낌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이정재는 '사바하' 이후 차기작 선택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확신했다. 이렇듯 이정재가 연기와 대중을 대하는 자세는 저자세다. 반면, '새로운 걸 해내'라며 스스로를 다그치는 목청은 엄격하다. 그는 "공급자로서 신상품을 만들어 대중에게 내놓고자 고심하겠다"며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스포츠투데이 이호영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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