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스타일뉴스 최지영 기자] 현재 나이 65세. 36년간 디자인 활동을 하고 아직도 현역에 있는 주인공은 바로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다. 웨스트우드는 펑크의 여왕이자 영국 패션의 대모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참여했던 펑크 문화는 영국을 대표하는 혁신적인 하위문화 스타일로 정착됐다.
1965년 말콤 맥라렌(Malcolm McLaren)과의 만남은 웨스트우드의 삶과 경력에 대전환점을 가져왔다. 맥라렌과의 만남을 통해 웨스트우드는 주류 문화에 대한 반권위주의적 태도를 갖게 되고 이를 표출하는 패션의 힘을 배우게 된다. 그것이 펑크였다.
이 커플은 1971년 영국 런던의 킹스로드에서 첫 번째 매장을 오픈하며 디자인을 시작했다. 웨스트우드는 이 매장에서 컬렉션 때마다 매장의 이름과 인테리어를 바꿔가며 그만의 아이디어를 살려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첫 매장 이름은 ‘Let It Rock’. 그 후 ‘살기엔 너무 빠르고 죽기엔 너무 이르다(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 등 이름이 바뀌었다. 이때까지 그는 도발적인 펑크스타일을 추구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1976년 펑크와 반란 선동자를 주제로 ‘세상의 끝(World's End)이란 또 다시 이름을 바꾸며 펑크와 결별했다. 이 이름은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 인정받는 웨스트우드
웨스트우드는 7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까지 영국적인 아방가르드의 표현에 심취하는 작업을 했다. 1981년 런던 올림피아 컬렉션에서 처음으로 ‘해적(Pirate)'을 선보였다. 웨스트우드는 과거의 역사, 문화를 되돌아봄으로써 현재 결핍되어 있는 것들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방식을 더욱 발전시키게 된다.
1989년 유명 패션 전문지 ‘WWD(Women's Wear Daily)’의 편집장 존 페어차일드(John Fairchild)는 이브 생 로랑, 크리스티앙 라크루아, 조르조 아르마니, 엠마뉴엘 웅가로, 카를 라거펠트와 더불어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패션 분야의 진정한 스타이자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로 선정했다.
1990년과 1992년에는 올해의 영국 최고 디자이너 상을 받았다. 그의 명성은 버킹엄 궁정에서 이슈가 되어 엘리자베스 여왕 2세에게 훈장(O.B.E)을 수여 받기도 했다.
◆ 본격적인 포트폴리오 확장
웨스트우드는 여성복에 국한하지 않고 포트폴리오 확장에 나섰다. 1990년 7월 남성복 컬렉션을 선보였다. 스와치와 협업을 통해 시계를 탄생시켰다.
향수 ’BOUDOIR‘도 선보였다. 웨스트우드는 자신의 첫 번째 향수를 이렇게 말했다. “향수의 이름은 ‘Boudoir'이다. Boudoir는 드레스 룸이자 옷을 걸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다. 여자들을 위한 특별한, 그녀 자신의 단점이나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는 친밀한 공간이다.”
◆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2003년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미술관에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방대한 작품 세계를 정리하는 대대적 회고전이 진행됐다. 전시회를 이끈 클레어 윌콕스(Clair Wilcox)는 웨스트우드의 삶을 이끌어온 것은 위대한 지적 호기심이었다고 언급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개성과 혁신을 추구하는 아방가르드 디자이너의 감수성과 여성으로서의 자의식, 문화적 전통에 대한 향수를 혼합해 그만의 스타일을 창조했다. 옛 문화와 전통이 창조적 혁신의 재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웨스트우드는 "창조적인 디자인은 전통과의 교류에서 비롯된다"고 믿었다. 브랜드 로고 역시 ‘전통을 살려 미래로’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는 여전히 새로운 미래를 찾고자 하는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스포츠투데이 스타일뉴스 최지영 기자 stnews@s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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