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문수연 기자] 배우로 평생을 살아가도 인생 캐릭터를 한 번이라도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김서형은 신드롬급의 사랑을 받은 인생 캐릭터를 벌써 두 번이나 만났다. SBS ‘아내의 유혹’ 신애리에 이어 JTBC 금토드라마 ‘SKY 캐슬(극본 유현미·연출 조현탁)’ 김주영으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김서형에게 이런 축복이 생긴 이유는 그저 운이나 타이밍이 좋아서는 절대 아니었다. 연기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끊임없는 노력이 이뤄낸 당연한 결과였다. 물론 김서형 스스로는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김주영은 베테랑 배우도 연기하기 힘들 만큼 어려운 캐릭터였다. 사고로 뇌 손상을 입으면서 천재였던 딸은 정신 장애를 앓게 됐고, 이루지 못한 욕망으로 생긴 열등감은 그를 집어삼켰다. 명문가 아이들의 입시 코디네이터로 살아가며 가정을 파멸로 이끈 것이다. 이처럼 김주영은 많은 사연을 가진 복합적인 캐릭터였지만 감정 표현이 절제된 성격의 인물이었기에 배우로서 캐릭터를 표현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서형은 섬세하고 절제된 연기로 김주영을 완성시켰고 그야말로 ‘스카이 캐슬’ 신드롬을 이끈 주역이 됐다. 그러나 김서형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이번 작품을 하면서 시청률은 좀 나오겠다 싶었지만, 내 전성기가 10년 만에 올 거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 못 했다. 김주영은 정말 어려웠다. 감정 표현을 참고 안 한다는 것에 대한 답답함과 괴로움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김서형의 이러한 걱정과 고민은 더욱 완성도 높은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김주영은 제가 아닌 다른 배우였어도 만들 수 있었을 거다”라고 겸손한 모습을 보인 그였지만 말투부터 스타일링 하나까지 김서형의 손이 닿지 않은 부분이 단 하나도 없었다. 김서형은 “김주영의 대사는 생활적인 말투는 아니다. 특히 ‘감수하시겠습니까?’ 대사를 보고 ‘뭐지? 사극도 아니고 어떻게 표현하라는 거지’라는 고민이 생겼다. 대사 톤을 잡기 어려워서 스타일링을 먼저 잡았다. 스타일링이 주는 힘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옷은 검은색 옷만 입기로 했다. 흰색조차도 캐릭터의 힘이 떨어져 보이더라. 박수창(유성주)이 김주영에게 총을 겨누는 신을 밤 신으로 착각해 베이지색 옷을 입었는데 후회했다.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저와 스타일리스트 눈에는 힘이 떨어져 보였다. 또 옷은 검정만 입었지만 너무 한 옷 같아 보이지 않게 감정선에 따라 소재를 다르게 했다. 대본이 일주일에 두세 개씩 나오는데 평균적으로 5시간 피팅을 하며 준비했다. 올빽 머리는 처음에 샵에서 ‘이 머리를 하신다고요?’라며 놀라더라. 사극에서도 머리를 조금씩은 내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하고 나서 몇 회는 후회했다. 너무 아파서. (웃음) 초반에는 두통 때문에 화남과 짜증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어느 작품에서나 늘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김서형을 보면 ‘연기력은 타고났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김서형은 노력파 배우였다. 진작에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배우였지만 그는 늘 만족하지 않고 더 잘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내의 유혹’ 김순옥 작가님께 죄송하지만 ‘신애리 2’는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신애리를 뛰어넘으려면 제 연기는 물론 그럴 수 있는 대본을 만나야 하잖아요. 이번에 그런 대본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씩 웃는 모습을 하면 신애라 같더라고요. 김서형이 신애리를 했기 때문에 분명히 제 평소 습관 같은 것들이 캐릭터에 묻어나올 거예요. 그런데 저는 저만의 트라우마가 있거든요. 신애리가 지금의 저를 있게 했지만 트라우마를 남기기도 했죠. 제 연기를 답습하기 싫다는 생각이 강해요. 이전 캐릭터랑 조금이라도 비슷해 보이는 게 그렇게 싫더라고요. 이번 작품을 하며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이 컸죠. 이렇게까지 도망가고 싶었던 적은 처음이었어요.”
하지만 시청자의 눈에 신애리는 조금도 없었고 온전히 김주영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매회 연기 호평 또한 쏟아졌다. 하지만 김서형은 “아니다. 발음 지적 많던데. 저는 다 인정한다”며 누구보다 자신의 연기를 냉철하게 평가했다.
이어 “시청자분들이 지적하시는 부분은 저도 안다. 시옷 발음이 샌다. 발음에 대해 ‘더 신경 써야지’라고 다짐하고 촬영장에 갔지만 김주영에 몰입을 하게 되면 잘 안 될 때도 있더라. 호흡의 문제가 크다. 최대한 안 들키고 싶었지만 잠을 못 자거나 밥을 못 먹은 날 같은 경우에는 들킨 날도 있을 거다. 그런데 어떨 때는 대사 전달도 중요하지만 신 느낌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도 항상 노력하려고 한다”며 “꼭 써주세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실제로 김서형은 발음 개선을 위해 작품을 할 때도 하지 않을 때도 꾸준히 노력 중이었다. “지금도 큰 소리로 책을 읽는 건 늘 하려고 한다”는 그는 “집에서도 좋은 책들은 큰 소리로 읽는다. 큰 소리를 내서 읽으면 내용은 빨리 안 들어오는데 자꾸 하다 보면 나중에는 조용히 볼 때처럼 들어오게 된다. 그런 훈련을 계속 하고 있다”고 전했다.
‘SKY 캐슬’을 통해 ’인생 캐릭터’를 갱신한 김서형이지만 그는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와 동료 배우들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SBS ‘샐러리맨 초한지’와 ‘자이언트’에서 ‘인생 캐릭터’가 바뀔 줄 알았다는 김서형은 자신보다는 ‘SKY 캐슬’의 힘이 크다고 했다.
“김주영만의 힘은 아니에요. 연출, 촬영, 조명 등이 잘 맞아떨어졌고, 배우들의 연기들과 시너지 효과를 낸 거죠. 다만 김주영은 김서형이 할 만큼은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그걸 극대화한 건 제가 아니죠. 특히 김주영이 카메라를 보는 건 감독님이 시킨 거예요. 카메라를 보면서 캐릭터가 더 무서워진 것 같아요. 김주영을 살아 움직이게 만든 건 모두 감독님의 계획이었어요. 제가 ‘더 무서우라고 카메라 보라고 하신 거죠?’라고 물었더니 몇 회에서 김주영이 카메라를 볼지 이미 정해놓으셨더라고요.”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한 작품이었던 만큼 김서형은 동료 배우들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그는 “염정아, 윤세아, 이태란 등 모두 연기 잘하는 톱배우다. 그래서 엄두가 안 났다. 내가 그만큼 잘할 수 있을까. 설사 잘한다고 해도 ‘보이기나 하겠어?’라는 마음이었다. 선의의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 또 ‘잘 어울릴 수 있을까’라는 이상한 고민도 했다. 그런데 다들 너무 내로라하는 배우들이다 보니 서로 ‘알아서 하겠지’라며 놔두더라. 그래서 편하게 할 수 있었다. 특히 정아 언니는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항상 잘 들어주고 잘 받아줬다. 그런 모습을 보며 ‘이런 선배가 돼야 해’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전했다.
많은 것을 이루고 느끼고 배운 ‘SKY 캐슬’. 하지만 김서형의 열정은 쉴 줄도 멈출 줄도 몰랐다. 김주영을 연기하고 고민하며 홀로 울고 잠도 못 잘 만큼 힘들었지만 그는 즐기고 있었다. 김서형은 “다음 작품은 악녀나 센 캐릭터가 아니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이면 하고 싶다”며 새 도전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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