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매번 영화 개봉을 앞두고 관객에 어떻게 통할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진단 하정우. 대중이 믿고 보는 '흥행 보증 수표' 하정우도 의외로 긴장을 한다. 원론적인 부족함이나 아쉬움은 있겠지만, 주어진 재료로 최선을 다했단 신작 'PMC: 더 벙커'는 배우이자 제작자로서 하정우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임엔 틀림없었다.
'PMC: 더 벙커'의 시작은 별게 없었다는 하정우는 5년 전, 김병우 감독과 '더 테러 라이브' 촬영을 끝낸 후 "다음 작품 같이 합시다"라 얘기했다. 다시 무슨 이야기를 할지 가볍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DMZ 밑에 지하 벙커란 공간이 있다면, 그곳에서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가 벌어진다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다. 딱 그 정도의 발상으로 시작됐다는 것이다.
라디오 부스란 한정된 공간에서 테러범과의 사투를 벌이던 스토리를 만들어낸 김병우 감독은 하정우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살을 붙이며 CIA가 개입된 민간군사조직(PMC) 블랙리저드의 용병 에이햅 이야기를 완성했다.
하정우는 'PMC: 더 벙커'의 묘미를 "트라우마를 지닌 남자가 어떻게든 이를 빠져나오려는 생존 탈출기"라고 정의했다. "처음부터 액션물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어떻게 탈출하는지에 포커싱을 맞춘 영화"지만 "공간에서 벌어지는 소동들로 영화적 재미는 높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극 중 에이햅은 거액의 프로젝트를 의뢰받고 부하들과 함께 DMZ 밑의 지하 벙커에 투입돼 북한의 고위 관계자 망명 계획을 시도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에 빠지며 갈등과 선택을 반복하고 극한의 고립 상황 속에서 탈출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영화의 과감하고 이색적인 카메라 앵글과 사건의 전개는 관객에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한복판에 놓인 듯한 현장감을 구사한다. 마치 관객이 에이햅이란 캐릭터를 플레이하는 듯한 체험감을 선사하는 것이다.
"저도 처음 봤을 땐 평소 게임을 하지 않는 1인으로서 과연 이걸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의아함이 있었다"고 여유롭게 너스레를 떤 하정우는 "제가 제작에 참여했지만 연출과 촬영 방식에 대해 디테일하게 얘기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영화는 감독의 생김새를 따라가게 돼 있고, 그 장을 마련해주는 것이 제작자의 몫이었다"고 밝혔다. 김병우 감독에 대한 하정우의 애정과 신뢰는 남다른 것이었다.
신인 감독과 작품을 찍은 뒤 다시 함께 하잔 러브콜을 보내고, 실제로 오랜 시간을 거쳐 결과물을 완성한 것만 봐도 그렇다. 하정우는 김병우 감독의 근면함을 인간적 매력으로 꼽았다. 그는 "영화를 엉덩이 힘으로 준비한단 자세가 인상 깊었다. 버티는 힘인 거다. 굉장히 노력파고, 재능에 의지해 기지를 발휘하는 게 아니라 철저히 준비하고 그것을 체크하며 현장에 임하는 자세가 좋았다"고 밝혔다. 하정우는 "그런 사람에 더 정이 간다. 자신의 재능을 어떻게 쓰느냐를 놓고 더 노력해서 광을 내는 걸 보면, 대단한 사람"이라고 밝혔다.
특히 5년 전보다 더 성장한 감독의 태도에 감탄했단 하정우는 "인물에 관심을 갖고 좀 더 들여다보려는 시도부터 더 성장한 것이 보이더라. 인물에 포커싱을 맞추고 인간적 고뇌나 갈등을 좀 더 시간을 들여 표현한 부분이 좋더라"고 했다.
극 중 에이햅은 적당히 비열하고 냉철하다. 신체적 핸디캡도 있고 이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자신의 상황과 선택을 계속 합리화시키지만, 인간 본연의 마음을 놓치지 않으려 끊임없이 고뇌하며 성장하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각자도생을 외치고 타깃을 "사냥감"이라 부르던 그가 인간성을 회복하는 의미가 담긴 클라이맥스 신은 뭉클한 전율과 후련한 해방감을 준다. 그는 "심정적으론 이해가 갔던 인물이다. 독단적인 리더의 모습을 떠올렸고 이기적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식구 같은 팀원들이 하나씩 아웃되는 걸 보며 상황을 지휘하는 것이 마음이 좋지 않았을 테지만 전사자가 나올 때마다 감정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려 했다"며 "인간으로서 좋은 사람인지 악인인지에 대한 것들이 좋은 의미로 다채롭게 펼쳐지고, 이 영화의 마침표를 찍는 부분에서 캐릭터의 성장과 영화적 쾌감이란 목표 달성을 이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고 털어놨다.
하정우는 인물의 내적 표현 외에도 뱀 무늬가 화려하게 장식된 금빛 스카잔 점퍼와 머리를 모두 넘긴 헤어 스타일, 팔뚝을 수놓은 타투들부터 거친 슬랭의 영어 대사까지. 비주얼적인 면에서도 불법체류자 출신 용병 이미지에 걸맞게 '더티 섹시'를 완성했다. 그는 "에이햅에겐 잘 어울리는 단어 같다. 좋은 거라면 좋은 거겠다"라고 웃어 보였다. 하지만 요즘 들어 남자 배우들과 줄곧 작업하는 상황에 대해 "왜 나를 두고 기획한 영화들의 세팅은 늘 이런 식으로 가는지,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 작품을 고려해봐야겠다"며 너스레였다.
'흥행 보증 수표'란 수식어에 걸맞게 벌써 천만 관객 돌파 영화는 세 편에 달하고, 그의 출연작 누적 관객수는 올해 1억 명을 돌파하며 '최연소 1억 배우'란 타이틀까지 거머쥔 하정우는 좀처럼 뽐낼 줄 몰랐다. 그는 "계속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좋고, 제가 찍은 영화들이 메인 시즌에 계속 개봉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라며 "최선을 다했어도 '군도' '허삼관'은 관객의 사랑을 들 받았다. 그런 면에서 발란스를 잘 맞춰야겠단 생각을 한다. 흥행에 개의치 않고 묵묵히 이어가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했다.
대중이 그를 선호하고 호감을 갖는 것은 하정우 본연의 매력 덕분이다. 다채롭고 생동감 넘치는 다재다능한 아티스트, 그럼에도 대중 친화적인 모습으로 친근함을 주는 그다. 하정우는 "저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누가 지켜보고 있으니 잘해야 된단 느낌보다 응원을 받고 있단 생각이 든다"며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고 좋아서 벌인 일이고 살아가는 최고의 관심사다. 이를 응원해주시는 많은 분들이 있어서 늘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고 했다. 소시민적이고 일반적인 얼굴을 보여주는 사람이고 싶고, 자신의 나아갈 길에 있어서 단 한 가지 '거짓말하지 않는 것'은 꼭 지키고 싶다는 그의 신조는 참 하정우 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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