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황덕연 기자] 골프는 심판 없이 플레이되는 스포츠다. 하지만 대회장의 코스를 세팅하고 만약에 있을 룰 판정에 대비한 경기위원(Rules Official)이 존재한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는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아 '공정한 판정, 선진화된 경기 운영' 실현을 위해 KPGA 코리안투어를 비롯한 각급 투어 및 회원선발전을 관장할 경기위원을 공개적으로 모집했다.
지난 3월 공개모집을 통해 선발된 KPGA 경기위원에는 KPGA 사상 첫 여성 경기위원인 김해랑 경기위원과 고아라 수습 경기위원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잊을 수 없는 순간
두 경기위원 모두 KPGA의 공개 모집 소식을 듣고 선뜻 도전을 결심했으나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해랑 경기위원은 골프연습장을 경영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골프를 접했다. 대학에서 골프 경영학을 전공한 뒤 영국왕립골프협회(R&A)의 레프리 스쿨 최고 단계를 통과하기도 했다.
김해랑 경기위원은 "처음에 반신반의했다. 까다로운 면접을 보고 난 뒤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적은 여자 아마추어를 뽑긴 힘들 거라 생각했다"며 "그런데 얼마 후 합격 통보 문자가 와서 정말 놀라고 기뻤다. 영광이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새로운 길에 대한 두렵고 걱정인 마음 또한 공존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고아라 수습 경기위원은 다소 늦은 서른에 골프를 처음 배우며 선수와 지도자의 꿈을 꿨고 KPGA 경기위원으로 활동하는 KPGA 전학수(63) 투어프로에게 지도를 받던 중 경기위원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고아라 수습 경기위원은 "지원했을 때 희망보다는 약간의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도 남성 혹은 프로 위주로 뽑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종 명단에 이름이 있는 걸 보고 정말 놀랐다. 협회에서 성별과 연령 제한 없이 선발한 것에 대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 싹 사라졌고 오히려 자부심이 생겼다"고 이야기했다.
큰 기대 없이 기다리던 중 뜻 하지 않은 멋진 기회를 만난 그들에게 지난 3월은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남았다.
#보람을 느끼는 순간
경기위원으로 활동한 첫 해이다 보니 어려운 점도 많았다. 새로운 업무는 물론 첫 여성 경기위원으로서 마주한 난처한 상황도 있었지만 그들은 끊임없는 노력으로 경기위원으로서의 모습을 서서히 갖춰 나갔다.
김해랑 경기위원은 "처음 나간 대회들이 기억에 남는다. 골프 관계자들과 선수 모두 코스에 있는 여성 경기위원의 모습이 생소했는지 낯선 반응을 보였다"면서 "내장객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아직 위원이라는 호칭이 어색하긴 하지만 이제는 다들 경기위원으로 알아봐 주시고 선수들이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한다. 그럴 때마다 감사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더욱이 판정에서 실수가 있으면 자신이 아닌 선수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점도 경기위원이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말아야 할 큰 이유중의 하나다.
고아라 수습 경기위원은 "글로 배운 규칙을 실제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실수를 했을 때 내가 아닌 선수들에게 피해가 간다는 점도 늘 어렵다. 하지만 주변의 선배 경기위원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 현장에 있는 것 자체가 정말 행복했다"고 했다.
김해랑 경기위원은 "수십 번씩 제정집에서 본 내용들도 실제로 마주치면 당황하게 된다. 계속 실제 상황에 대입시켜보고 공부해야만 했다. 날씨, 코스 상황에 따라 로컬 룰을 적용하는 것도 배웠고, 경기위원들끼리 상황을 공유하며 커뮤니케이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느꼈다. 한 해 동안 폭설, 폭우, 폭염 등을 겪으며 힘들기도 했지만 무사히 경기가 끝났을 때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경기위원, 필드 위의 숨은 꽃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원활한 경기 운영을 위해 노력하는 경기위원들은 필드 위의 숨은 꽃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경기위원은 '차질 없는 경기 진행'과 '선수에게 공정하고 합리적이면서 정확한 판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 속에서 지극히 선수를 위하는 마음 또한 느껴졌다.
고아라 수습 경기위원은 "경기가 원활히 진행되는 것이 1차적으로 중요하지만 선수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경기위원의 역할이다. 대회장에서는 변호사가 된 느낌이다. 경기 중에 선수들이 억울한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구제를 해주고 싶지만 제정상 그럴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간혹 원하는 판정을 받지 못한 선수가 감정이 격해지는 경우가 있다. 서로 감정이 상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고 나름의 고충을 털어 놓았다.
김해랑 경기위원 : 구제가 안된다고 말해야 하거나 제정이 끝나고 선수의 샷이 좋지 않을 때 미안하고 안타깝다. 반대로 구제 상황에서 선수가 좋은 샷으로 마무리할 때 정말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 선수의 상황에 공감할 줄 알면서 단호할 때 단호해야 하는데 솔직히 아직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고아라 수습 경기위원은 "하루는 판정으로 감정 다툼을 한 선수가 경기가 끝난 뒤 찾아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 적이 있었다.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 일인데 작은 행동에 감동을 받았다"며 경기 중 있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때론 서로에게 마음을 다칠 수 있지만 결국엔 서로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경기위원과 선수의 관계다. 그 관계 속에서 두 경기위원 역시 직업의 보람을 느낀다.
#골프를 통해 이루고 싶은 꿈
두 위원은 판정의 냉철함과 인간적인 따뜻함까지 모두 갖춘 경기위원을 목표로 한다.
고아라 수습 경기위원은 "규칙을 잘 알고 정확한 판정을 제시하는 것은 기본이다. 다음으로 선수 마음을 잘 읽는 경기위원, 때로는 위로도 해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경기위원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해랑 경기위원은 "원리 원칙을 토대로 공정한 판정을 하되 상황에 맞게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판단력을 더 키우고 싶다. 선수들이 언제든 마음 편하게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신뢰할 수 있고 친절한 경기위원이 되는 것이 목표다"고 전했다.
이들은 지금 경기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골프를 통해 또 다른 꿈도 키워가고 있다.
김해랑 경기위원은 "대회 경험을 잘 쌓아 훗날 국제 대회에서 일하고 싶다. 현재 대학원에서 스포츠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골프 선수들을 돕는 심리상담사가 되는 것 역시 또 다른 목표다"고 밝혔다.
고아라 수습 경기위원은 "직접 훈련을 해야 선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좋은 기회에 경기위원이 되었으니 앞으로도 더 노력할 것이며 원래 가지고 있던 선수, 지도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연습도 할 것이다"고 답변했다.
경기위원부터 선수, 지도자, 심리상담사까지 골프로 다양한 미래를 그리고 있는 두 경기위원이 향후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더욱 기대 된다.
황덕연 기자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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