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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왕' 우민호 감독의 타협 없는 소신 [인터뷰]
작성 : 2018년 12월 21일(금) 00:45

'마약왕' 우민호 감독 인터뷰 / 사진=쇼박스 제공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스스로 긍지를 갖고 자존심을 지키는 사람. 우민호 감독은 그랬다.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단호하게 제 중심을 지키며 흔들리지 않는 소신을 원천으로 맞선다. 전작의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고 당당하게 내놓은 신작 '마약왕'만 봐도 이런 그의 성품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마약왕'(제작 하이브 미디어코프)의 시작은 사진 한 장이었다. 총기 난사 사건으로 유명한 전설의 마약왕 이황순 검거 직전, 그의 자택을 둘러싼 검사와 특공대원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고,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유신 독재 정권 때 이런 마약왕이 실존했었다니." 우민호 감독의 호기심은 놀라움으로 바뀌었고 이는 곧 연출 욕구로 이어졌다. 수년의 자료조사 끝에 근본 없는 밀수꾼이 마약왕이 되고 스스로 자멸하기까지 12년의 세월을 녹여낸 인물극을 완성했다.

'마약왕'은 우민호 감독의 전작 '내부자들'의 강렬하고 적나라한 화법을 기억하고 열광했던 관객들에게 어쩌면 의아하거나 불친절하게 느껴질 영화다. 기존 상업영화 공식을 따르는 작법도 아니며, 사건 중심의 플롯을 벗어나 인물적 서사를 구축하면서도 주인공에 대한 연민을 철저히 배제했다. 마약왕 이두삼은 시대가 낳은 괴물로 변이돼 공포와 거부감을 일으킨다. 사회악에 대한 경계와 소탕에 대한 판타지는 같지만 이에 접근하고 드러내는 방식이 엄연히 다른 것이다.

우민호 감독이 이런 화법을 택한 이유는 명료했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내부자들' 성공 이후가 아니면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음 기회는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호쾌하게 웃어 보였다.

이어 "어떤 대립이나 갈등, 대결 없이 한 인물이 자멸하는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이야기 구조가 상업적이지 않다. 허상과 헛된 욕망을 맹렬히 좇다가 성에 갇혀 혼자 미쳐가는 리어왕 같은 얘기다. 그런 지점들이 조금 낯설게 다가올 순 있지만, 제겐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렇기에 영화는 명확하고 선명한 상업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좇기보다 연극적 장치를 부각하고 각종 은유와 비유로 블랙코미디 성향을 띤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구조가 '마약왕'이란 이야기를 담기엔 적합하다고 여겼던 감독이다.

우민호 감독은 "'내부자들'은 사건 중심의 시나리오고 그 사건이 꽉 짜여져 있었다면 '마약왕'은 시나리오부터 여백과 빈틈이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곳곳에 은유와 상징을 넣은 간접적 화법을 썼다. 1970년대 박정희와 '마약왕' 이두삼이 동일시된다. 이를 읽어내면 흥미로운 지점"이라고 귀띔했다. 또한 마지막 이두삼의 비릿하게 비죽거리는 웃음에 주의하길 당부했다. 그는 "보시는 분들이 굉장히 힘들고 기분이 나쁘실 수 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부지불식간에 그런 괴물은 다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약왕' 우민호 감독 인터뷰 / 사진=쇼박스 제공



그의 말처럼 영화는 마약으로 한 시대의 권력자가 됐지만 결국 욕망에 잠식돼 파멸된 한 인물을 조명하고, 그 인물의 실상은 대한민국 70년대 암울했던 독재정권의 시대상을 나타낸다. 정경유착의 민낯을 드러내며 신랄한 사회 비판 메시지로 반향을 일으켰던 우민호 감독의 한결같은 기조다. "사실 '내부자들' 찍고 난 후엔 모든 사람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찍어야지 했는데 결국 이렇게 찍게 됐다"며 웃어 보인 그는 솔직하게 "사회적인 묵직한 이야기, 어둡고 범죄적인 이야기에 확실히 끌리는 것 같다"고 인정했다. 특히 욕망을 좇아가는 인간에 대한 것, 그들이 어떻게 스스로 추락하며 자멸해가는지 냉담하게 바라보고 싶다고.

하지만 우민호 감독에게도 '마약왕'은 꽤 고된 작업이었다. 1970년대를 재현하기는 쉽지 않았고, 한 인물의 10년에 걸친 서사를 다루기에 시나리오적인 한계도 있었다. 6개월에 걸쳐 무려 100회 촬영을 하는데 작품의 무게감에 휩싸여 외롭기도 했다. 그 작업을 함께 해준 송강호는 서사적 구멍을 채워주는 연기를 보여줬고, 자신보다 더 묵묵히 처절하게 무대 위에서 홀로 싸워줬단다. 특히 결말 30분에 달하는 엔딩에서 독주하는 송강호를 보며 소름이 끼칠 만큼 "정말 점점 미쳐가는 리어왕 같았다. 그걸 아무 말 못하고 지켜보는 저도 힘들었다. 그걸 이겨내셨다"며 감탄했다.

그는 '마약왕'을 통해 20년 전 송강호란 배우를 처음 접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을 다시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전율을 느꼈다. 특히 이번 작업은 마치 불씨를 던져 스스로 영화가 발화되는 느낌을 받았다며 배우의 노고를 위로했다.

하지만 '마약왕'의 완성은 우민호 감독의 뚝심과 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흥행 감독이란 타이틀에 기대어 조금은 눈을 돌릴 법도 한데, 특정 지배 계층에 대한 비판과 도전이 가져오는 위험요소를 안고도 꿋꿋한 관점으로 제 신념을 피력하는 우민호 감독의 강단은 꽤 폼난다. 꼿꼿할 것 같으면서도 애완묘 이야기를 하며 영락없는 '집사'의 모습을 드러내는 우민호 감독의 반전 면모도 호감이다.

그는 자신을 비관론자라고 칭했다. 10년을 입봉을 못해 세상에 부정적인 비관론자였다는 너스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좀 더 세상을 알게 되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편"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그는 늘 자신을 스스로 경계했다. "그 표현 방식이 서툴고 투박할지언정 사기치고 싶지 않다. 척하고 싶지 않은거다. 물론 그 방식이 세련되면 더 좋다. 저도 세련되고 싶어 노력하는 과정에 있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짜이거나 사기가 되어선 안 된다"는 우민호 감독의 속내는 언제 어디서나 정직하고 거짓 없었다.




한예지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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