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소연 기자] "반년 동안 못 찾은 빅토르 최 역을 제가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밝음과 슬픔을 모두 담은 듯 빛나는 눈이 인상적인 배우 유태오는 1981년 러시아 레닌그라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 '레토'(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에서 자신만의 음악을 하고 싶었던 자유로운 록 뮤지션 빅토르 최로 분해 청춘의 열망을 노래했다.
실존 인물인 빅토르 최는 한국계 러시아인으로 러시아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고, 인기 절정이었던 28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요절했다. 빅토르 최는 1980년대 변화를 바랐던 소련의 젊은이들에게 부조리에 대한 저항을 외치며 록으로 희망을 전했던 인물이다.
무려 2000대 1 경쟁률을 뚫고 빅토르 최 역에 캐스팅된 유태오의 스토리 또한 영화 같다. 독일 출신의 교포인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제가 교포다 보니 타국에서 활동하신 한국인 분들 중 만에 하나 제가 연기하게 될 수도 있는 분들을 생각해봤다. 빅토르 최도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이전부터 상상했던 배역이지만, 자신이 연기하기엔 너무나 큰 인물이라고 생각해 차마 엄두도 안 났다는 그다. 그러던 어느 날 유태오는 빅토르 최를 연기할 배우를 찾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유태오는 "친구에게 빅토르 최의 어린 시절 역을 할 만한 배우가 있냐고 물으니 친구가 '네가 해라' '네 사진을 보내라'고하더라"고 되짚었다.
그는 "카페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올 때였다. 한 순간에 거울을 보면서 지나갔는데 갑자기 기분이 이상했다. 당시 농구 예능을 끝내고 난 뒤 몸무게가 줄어 있었다. 또 좀 다른 이미지로 머리 스타일을 바꿔볼까 해서 펌한 상태였다. 별 기대 없이 셀카를 찍어 보냈는데 영화사 측에서 영상을 달라고 요청이 왔다. 기타를 치고 노래부르는 느낌만 내 찍어 보냈다. 일주일 뒤에 러시아에 오라고 초청이 왔다"고 돌이켰다.
유태오는 "그 때가 2017년 4월 중순 정도였다. 이 영화에 대한 기사를 찾아봤다. 2016년 11월에 나온 기사가 있더라. 빅토르 최에 대한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5개월~6개월 동안 빅토르 최 역을 할 배우를
못 찾았다는 말 아니냐. 그런데 돈을 들여 나를 초대해준거다"면서 당시를 생각해도 놀랍다는 듯 말했다. .
오디션은 무려 4시간 동안 진행됐다. 유태오는 "빅토르 최가 야성미, 남성미의 상징 아니냐. 그런데 첫 앨범의 곡을 분석해서 가사를 뜯어놓고 보면 시적인 표현이 많다. 생각보다 멜랑꼴리하기도 하고"라면서 "외로움을 많이 탔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디션에서 그 이야기를 했다. 감독님께 그 해석을 이야기하니 듣기 좋다는 이야기를 하셨다"고 되짚었다. 유태오 역시 뉴욕, 독일 등 해외에서 활동했던 교포로서 자신의 청춘에 이입해 빅토르 최를 해석한 것이었다고.
그가 빅토르 최 역에 발탁되고 난 뒤 역할을 준비하는 시간은 단 3주밖에 없었다. 아직 빅토르 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유태오는 혹여라도 자신을 향한 비판의 눈빛이 날아올까 긴장했다고. 그랬던 그의 무게감을 덜어준 것은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의 실존 인물 나타샤와의 만남 뒤였다. 나타샤와 빅토르 최는 생전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갖고 있던 인물. 영화에서도 그러한 관계가 그려진다.
그는 "나타샤가 영화 촬영 현장에 놀러왔다. 차 안에서 나란히 앉아서 이런 저런, 통역 하는 사람과 함께 이야기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주고받고 난 뒤 헤어질 때 작별 인사로 '안아볼까' 하더라. 포옹하고 나서 나타샤가 '이 느낌이었구나. 기억난다' 하더라. 그 말이 너무 짠했다. 나중에 현장에서 제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빅토르 최의 소울이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 그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마음이 놓였다"고 말했다.
'레토'를 촬영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세계적인 거장 감독이다. 하지만 영화 촬영 중이었던 지난해 8월 23일,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공금 횡령 혐의로 경찰에 긴급 체포돼 가택 구금을 당했다. 감독은 가택 구금 상황에서도 영화의 편집에 몰두하는 등 '레토'를 향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부조리에 대한 저항의 상징인 '빅토르 최'의 영화를 만드는 것을 방해하려는 외압이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유태오는 "남은 5회 차는 우리끼리 촬영했다. 여름에 촬영했고 5개월 뒤 나머지를 찍었다. 다행히 리허설을 많이 했고 감독님이 노트에 많이 적으셨고 변호사 통해서 들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제가 거기까지 간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으X 으X' 하면서 끝까지 해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고 돌이켰다.
하지만 개봉 무산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터. 이에 그는 "지금 이 순간, 이 자리까지 올 줄은 몰랐다. 그때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타국의 싸움 아니냐. 저는 그냥 손님으로 간 거고"라면서 "갑자기 파파라치들이 모여들고, 숨어서 제작진들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토론했다. 많이 외로웠다. 그 순간에 제가 했던 생각은, 이 작품을, 이 역할을 끝까지 더 잘 해내야겠다는 것이었다"면서 눈을 빛냈다.
'레토'를 통해 그는 15년 무명의 시기를 딛고 올해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유태오는 "너무 극과 극 아니냐. 무명인 내가, 많이 일해봤자 1년에 한 번씩 작업했던 배우가 칸영화제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게"라고 운을 뗐다.
그는 "그동안에 해왔던 경험과 준비로 이제 비로소 일을 시작하는 거구나 싶다.
그전까지는 좀 고생은 많았지만, 또 지금부터 또 다른 고생, 또 다른 고민이 생기겠지만, 그래도 좀 더 즐겁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면서 미소 지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레토'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전했다. 그는 "러시아 영화이고 흑백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영화가 아니다. 마냥 가볍지도 않고 애잔하기까지 하다"고 영화를 정의했다. 이어 "1980년대 향수를 자극시키면서도 러시아에서 가장 핫한 배우들과 감독이 붙은 영화이기도 하다. 80년대 MTV 시절을 보신 분들은 초현실적인 뮤직비디오 같은 장면으로 주인공들의 마음을 표현한 장면이 인상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이런 색깔의 음악 영화는 그전에 잘 없었던 것 같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레토'를 봐줬으면 하는 바람을 표했다.
이소연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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