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소연 기자] "끼니도 못 먹고 식음을 전폐하던 시간이 있었죠."
최근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영화 '미쓰백' 이지원 감독을 만났다. 11일 개봉한 '미쓰백'(감독 이지원·영화사 배)은 스스로를 지키려다 전과자가 된 백상아(한지민)가 세상에 내몰린 자신과 닮은 아이를 만나게 되고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참혹한 세상과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이지원 감독의 입봉작이기도 하다.
이지원 감독이 과거 옆집 아이의 사건을 목격하면서 그 때 차마 손을 내밀지 못 하고 상상으로만 하고 싶었던 일들을 이야기에 다 풀어 넣었다고.
이지원 감독은 "스크린에서 영화를 봤을 때 산고의 고통을 지나는 느낌이었다. 굉장히 짠하고 먹먹한 감정이 많이 들었다. 저희 영화가 찍은지 시간이 좀 됐다. 스태프들도 오랜만에 보는 거였는데도 불구하고 내용 다 아는데 울더라"고 돌이켰다.
지난 2000년, '번지 점프를 하다' 연출부로 일을 시작한 이 감독은 18년 만에 감독으로 입봉하게 됐다. 그 긴 시간을 어떻게 기다릴 수 있었을 지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냥 단순하게 영화가 좋아서 감독의 꿈을 키웠다는 그다.
이지원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감독이 꿈이었다. 다른 직업을 해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황구가 내 별명이었다. 한번 뭘 물면 안 놓는 성격이다. 어떤 사람도 한번 좋아하면 계속 좋아한다. 그래서 영화를 한번 물고 쭉 안 놓고 왔다. 물론 연출부 생활을 끝내고 감독 준비를 한 지 10년 정도 됐다. 10년간 벌이도 없지, 사면 초가에 내몰렸다. 항상 벼랑 끝에 매달린 심정이었다"고 돌이켰다.
'미쓰백'은 그가 마지막이다 싶은 마음으로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온 힘을 쏟아 부운 작품이다. 스스로를 "본능적이다"고 표현한 이 감독은 투자에 손쉬운 길을 전략적으로 택하기 보다는 마음이 가는대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갔다.
이 감독은 "아동 학대 소재에 여자 한 명이 이끌어가는 이야기에 누가 투자하겠나. '미쓰백' 같은 경우 처음에는 독립 영화로 만들려고 했다. 한 두 달 안에 폭발적인 감정으로 써 내려갔다. 그 당시의 진심이었던 모든 마음이 다 들어갔다"고 털어놨다.
그는 "'미쓰백' 쓰기 직전에는 사람이 이렇게 힘든데 자연사를 안 할 수 있을까 싶더라. 끼니도 못 먹고 식음을 전폐하던 시간이 있었다. 너무 힘들다 하는 걸 10번은 거쳐야 기회가 오는 것 같더라. 사람이 벼랑 끝까지 가니까 기회가 한 번은 오는구나 싶더라"고 되짚었다.
'미쓰백' 한지민 스틸 / 사진=리틀빅픽쳐스 제공
언론시사회에서 직후 붉은색 립스틱을 바른 이지원 감독은 영화 속 진한 립스틱을 바른 백상아와도 닮아 있었다.
"백상아 역의 모티브가 있냐"고 묻자 이 감독은 "가슴에서 느껴지지 않고 상상으로만 쓴 캐릭터는 관객에게 와닿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스태프들이 장난으로 말하길, 내가 전과가 없는 백상아라더라. 감독들이 주연 배우 캐릭터에 자기 자신을 많이 투영시키는 것 같다. '츤데레' 같은 면이 있다. 상아 캐릭터에 제가 투영이 돼 있는 거다"면서 웃었다.
그는 "영화에 나오는 사람 모두가 '츤데레' 캐릭터다. 연출부에서 말하길 캐릭터가 다 감독님이라더라"면서 미소 지었다.
이지원 감독은 배우 한지민을 어린 나이에 전과자가 돼 외롭게 살던 백상아 역에 캐스팅했다. 대중이 알고 있는 사랑스러운 한지민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파격 변신이었다. 그가 한지민을 백상아 역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는 영화 '밀정' 시사회 뒤풀이 때였다. 이 감독은 당시를 회상하며 한지민이 올 블랙 의상을 입고 클러치를 든 모습이 마치 일수 가방을 든 것 같았다고 농담했다.
이지원 감독은 "당시 충격을 받았는데 (한지민과) 직접 이야기를 해보니 제가 받았던 느낌이 맞았구나 싶더라. 한지민 씨는 여려 보이는데 속은 진짜 센 사람이더라"고 돌이켰다.
그는 "원래 시나리오에 상아 캐릭터가 한지민 씨가 들어오면서 바뀐 부분이 있다. 철칙이 시나리오를 쓰더라도 배우가 캐스팅됐을 때 욱여넣지는 않고 중간 지점에서 만나야지 시너지가 터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지민 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많이 친해지려고 술도 많이 마셨다. 한지민 씨는 실제로는 와일드한 면도 있고 미소년 같은 캐릭터다. 그런 캐릭터를 상아에 많이 덧입혔다"고 털어놨다.
이 감독은 "촬영 내내 (한지민에 대한)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희열도 있었지만 촬영하면서 한지민 씨를 굉장히 많이 사랑했다. 친구처럼 사랑하다가 촬영 중반에는 남자친구처럼 집착도 했다. 연락을 굉장히 많이 했다. 내일 찍을 것도 이야기하고. 아침마다 지민 씨한테 촬영분에 어울리는 음악을 선곡해서 보여주고. 지민 씨한테 영감을 많이 주려고 노력했다. 막판에는 (한지민 씨에게) 모성애가 느껴지더라. 짠하고 애틋하고 눈물이 났다"고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마지막으로 이 감독은 "내 인생을 거쳐서 모든 걸 쏟아부은 작품인 것 같다. 애를 낳아본 적도 없는데, 내 아이를 부서질 것 같은 나룻배에 태워서 떠나보내는 느낌이 든다. 햇볕도 쏟아지고 '가고 싶은 데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 진심이 왜곡되지 않고 관객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으면 제 몫을 다 한 것 같다"고 개봉을 앞둔 심정을 밝혔다.
이소연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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