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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알렉스 김이 마주한 죽음 앞 '천 개의 인생' [인터뷰]
작성 : 2018년 09월 23일(일) 12:32

알렉스 김 인터뷰 / 사진=알렉스 김 제공


[스포츠투데이 윤혜영 기자] 죽음을 준비하려는 천 개의 인생을 마주한다는 것.

우연한 기회로 제주도에 머물던 내셔널 지오그래피 수상 경력의 사진작가는 제주도에 사는 노인 천 명의 영정사진을 찍게 된다.

그런데 이 짙은 세월의 흔적들을 오롯이 마주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치열한 생에 찌든 노인의 눈에는 포토그래퍼가 가진 화려한 경력은 도무지 보이지가 않는다. 죽기 전 내 늙고 추한 모습을 자꾸만 담아내려는 거부감 들고 성가신 사진기사만 보일 뿐.

부러질지언정 꺾이지 않을 그 완고한 인생들은 그러나 무릎을 꿇고 가슴으로 안아주는 낯선 몸짓의 포토그래퍼 앞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서서히 녹아든다. 사진작가 알렉스 김이 인생을 마주하는 법은 이토록 낮고 따뜻했다.

알렉스 김 인터뷰 / 사진=KCTV 방송화면 캡처



사실 알렉스 김에게 제주도는 멀고도 가까운 땅이었다. 전세계 오지를 쏘다녔지만 제주도는 평생 한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발길이 뜸했다. 그런데 사진을 찍으며 20년을 떠돌던 그가 지금껏 쌓인 방대한 DB를 제주도에서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지인이 제주도에 렌트했던 집이 수개월 비면서 제주도에 머물게 된 것. 그러다 김만덕기념관과 연계돼 '어르신 장수효도사진 나눔 사업'에 재능기부를 하게 됐다.

"그동안 히말라야나 오지를 다녀서 웬만한 데는 안 힘들거든요. 근데 영정사진은 찍고만 오면 집에서 기절을 해요. 장수효도사진이라고 하는데 씨알도 안 먹혀요. 죽을 때 쓸 수의를 미리 만들면 오래 산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사진 찍어놓으면 오래 산다고 아무리 얘길 해도 경로당에는 '영정사진'이라고 쓰여있어요. 별일 다 있어요."

죽음이라는 속성이 맞물리니 '효도'도 쉽지 않았다. 앉자마자 슬프다고 울고, 혹은 아예 무신경하게 일해야 되니까 빨리 찍으라고 재촉하기도 하는 가지각색의 천 명의 어르신들은 매번 새로운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특히 삼각대와 조명 없이 찍는 탓에 '사진관보다 못하네' 불신하던 어르신들은 전심을 다하는 알렉스 김의 모습에 마음을 열었고 이제는 나도 찍어달라고 요청하는 추가 리스트까지 생겨났다.

"원래는 찍고 나서 보여주지 않았는데 불신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 보여주기 시작했어요. 사진이 잘 나오니까 어느 순간 소문이 나서 10명 찍기로 했는데 정작 가면 20명씩 찍죠. 처음엔 시크하게 대하다가 찍는 모습에 마음을 많이 여세요. 한 번은 촬영 끝 무렵에 할아버지 한 분이 '나 구십 다섯이야. 여기서 나이 제일 많아'라면서 '나 마이 없어. 넥타이도 없다니까' 너무 당당하게 갑자기 찍어달라는데 너무 해드리고 싶은 거예요. 찍을 생각이 없었다가 한 장이라도 더 남기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알렉스 김 인터뷰 / 사진=알렉스 김 제공



80년의 세월은 얼굴 곳곳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 얼굴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알렉스 김은 그들이 살아온 인생에 오롯이 스며들었다. 그는 "어르신들 얼굴만 봐도 고생한 게 너무 보인다"며 "다들 나이가 많으시니까 얼굴이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 몸도 정상적이지 않다. 삐뚤빼뚤하고 함몰되고. '전에 찍었을 때 뭐가 마음에 안 드셨어요?' 그걸 다 맞춰드린다. 어쩌면 영정사진을 핑계로 어르신들을 다독거려 주는 것 같다. 옷매무새 만져주면 '우리 아들보다 낫다'고 하신다. 누가 머리 만져주고 손 잡아주고 안아드리는 사람이 없으니까"라고 말했다.

"한 번은 할머니가 '이 목걸이 꼭 나오게 해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우리 아들이 열다섯 살 때 수학여행 가서 선물 사온 거야. 좋은 날에만 껴'라면서. 30년 넘게 간직하신 거예요. 근데 너무 어색해서 '어머니. 목걸이 잘 나오고 있는데 어머니는 이 목걸이 한 모습을 아들이 봤으면 좋겠죠? 근데 어머니 너무 어색해요. 어머니 말고 아들 위해서 웃어주세요'라 하면 표정이 나와요. 한 명 한 명 그런 디렉션이 너무 많아요. 쌍욕하던 사람들이 끝나면 합장하고 기도해줘요. 복 받으라고. 한낱 사진쟁이인데 이런 걸 느끼니까 '이걸 내 인생에서 뭐랑 바꿀 수 있을까' 싶죠."

처음 천 명 제안을 받았을 때 '말도 안 된다'고 기함했던 알렉스 김은 700명이 넘어가면서부터 미안하고 아쉬운 감정을 느꼈다. 1년을 애를 쓰고 찍는데 제주도 경로당에 등록된 4만 3천 명 어르신 중 천 명밖에 찍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컸다.

"제일 놀랐던 것 중에 하나가 사진을 찍고 차에서 기절해서 가고 있는데 '오늘 한 분이 안 오셨어요. 돌아가셨어요' 하는 거예요. 할머니들이 자꾸 물어봐요. 죽기 전에 받을 수 있냐고. 되게 놀란 거예요. 사진 찍고 나서 에너지를 많이 쓰는 편이라서 후반 작업을 늦게 주는 편이거든요. 좋은 컨디션에 하고 싶으니까. 근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5개월 동안 단 하루도 안 빠지고 그날 찍은 거 그날 다 보냈어요. 아침 8시에 나갔다가 끝나고 집에 와서 외장하드 옮기는 사이에 기절했다가 끝나면 새벽 2시쯤 돼요. 거의 16시간을 하는 거죠."

알렉스 김 인터뷰 / 사진=티브이데일리 DB



천 명의 얼굴들은 알렉스 김의 다음 프로젝트까지 결정지었다. 몸이 아파서 사진을 찍으러 올 수 없는 분들을 위해 직접 찾아갈 예정이라고. 알렉스 김은 "백년해로라 하지 않나. 50년씩으로 해서 50년 이상 산 부부들 집으로 가는 거다. 제주도는 워낙 다양하니까 '뭐하고 사셨어요?' '감귤밭 했어' 하면 감귤밭에서 사진을 찍는 거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이혼율 1위다. 두 분이서 살면서 아무 일도 없었겠냐. 무뚝뚝하고 거칠지만 투박한 손으로 손잡고 있는 노부부 100쌍의 모습을 담고 싶다"고 밝혔다.

부부에게 코치를 해 직접 사진을 찍게 하는 방법도 고민 중이란다. 알렉스 김은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진쟁이는 비싼 장비 쓰는 애도, 이론적으로 많이 배운 애도 아니다. 안 찍어본 놈이 무서운 놈이다"라며 "시각장애를 가진 아이에게 사진을 가르쳐주고 싶다. 시각장애인에게 '너는 이 상황에 뭐가 느껴지니. 네 심장에 카메라를 놓고 찍어. 지금 나는 냄새나 느낌에 따라 찍어' 하는 거다. 분명히 못 보던 게 있을 거다. 에너지를 좋게 쓰고 싶다"고 설명했다.

제주도에 살면서 목표가 또 하나 생겼다. 제주에 알렉스 김의 갤러리를 하나 만드는 거다. 수익이 아닌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함이었다. "제주도만 해도 끝에서 끝까지 못 가보고 죽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을 위해서든, 관광객을 위해서든 평생 내 감성이 담긴 사진을 많은 사람이 와서 봤으면 좋겠다.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사진이 많은데 묵혀두면 뭐하겠냐"며 웃는 알렉스 김이다.

그는 아이와 할머니가 공유할 수 있는 사진작가를 꿈꿨다. 세 살짜리 아이와 팔십 할머니가 손을 잡고 그의 사진 앞에서 특별히 대화를 하지 않아도 통했으면 했다.

"80세의 의미는 세상에 지혜를 가진 사람, 견문이 있는 사람이에요. 구도나 색감이나 전문가가 봐도 너무 좋은 사진이죠. 세 살짜리 아이는 본능인 거죠. 아무런 지식도 없고 관심도 없는. 이 둘을 다 충족시키는 사진작가가 되고 싶어요."




윤혜영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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