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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 "유언 남긴다면? 재미있게 살라고 할 것" [인터뷰]
작성 : 2018년 06월 27일(수) 11:03

이준익 감독 /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스포츠투데이 이소연 기자] 올해 60대로 접어들었음에도 이준익 감독에게는 여전히 젊은 에너지가 흐른다. 그는 인터뷰할 때 형식적이고 틀에 박힌 이야기를 하거나 지나치게 격식을 차리며 기자와 거리를 두고 이야기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오히려 젊은 배우들을 인터뷰할 때보다 더 솔직하고 유쾌하다. 기성세대에 속한 그가 랩을 하는 청년 학수(박정민)의 이야기인 영화 '변산'(감독 이준익·제작 메가박스플러스엠)을 연출한 것이 이상하지 않다.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이준익 감독을 만났다. 그는 아톰이 그려진 검은색 티를 입고 있었다. 그가 입은 젊은 감각의 패션처럼, 그는 시대극이었던 전작 '동주' '박열'보다 훨씬 밝은 영화 '변산'을 들고 왔다. 이준익 감독은 "'변산'은 웃고 싶어 찍었다. '동주'나 '박열'을 보고 관객이 웃기 어렵지 않냐. '변산'은 그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박열'에도 코믹한 장면도 있었지만 양에 안 찼다. 관객들이 박장대소하는 걸 보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변산'은 힙합이라는 소재를 통해 젊은 예비 관객과 공감대를 높인다. 영화에서 무명 래퍼 학수가 무대 위에 올라가 랩을 하는 장면이나 버스킹을 구경하는 장면 등은 감각적이고 세련됐다. "영화가 더 젊어진 것 같다"는 말에 그는 "난 사실 랩 잘 모른다. 그런데 모르는 게 잘못이냐. 영화는 여러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잘 모르는 부분은 맡겨버리면 된다. 모르는데 간섭하는 게 나쁜 거다. 그러니까 내가 젊어진 게 아니다"고 시원스레 답했다.

영화의 소재로 그가 왜 '힙합'을 택했는지 궁금해졌다. 그는 "영화는 대중 매체고 대중문화를 수용하는 하나의 그릇 아니냐. 대중문화를 닮는 그릇으로 가장 핫했던 게 힙합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이 든 관객이 봤을 때 힙합이 시끄럽게 들릴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변산'에서는 학수의 내면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랩 가사가 나온다. 기성세대들도 랩 가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준익 감독 /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변산'은 그의 3번째 음악 영화다. 앞서 그가 연출한 음악 영화로 '라디오 스타'(2006)와 '즐거운 인생'(2007)이 있었다. 이준익 감독은 "대중문화는 그 시대의 대중을 담는 하나의 그릇이다. 10여 년 전에는 '라디오 스타'를 통해서 당대 잊혀져 가는 록의 마지막 정서를 담았다. '즐거운 인생'은 청춘을 그리워하는 아저씨들의 밴드를 그렸다. '변산'을 통해서는 그 이후 음악 장르인 랩을 담았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욕망을 랩을 통해 배출하지 않나. 그 안에 성공의 길도 있고. 프로 래퍼들의 '머니 스웩' 같은 사회적 현상을 주인공 욕망의 틀로 가져온 거다. 학수는 '쇼미더 머니'에 6년간 개근한 래퍼다. 학수의 고향은 변두리에 있는 산'이라는 뜻의 변산이다. 서울에서도 가장 최첨단의 장르를 추구하는 존재가 다시 고향으로 회귀됐을 때 자신의 과거와의 부딪히면서 발생하는 하모니, 즉 아픔과 슬픔, 불편함, 부끄러움을 뒤섞어보려 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영화의 배경이 되는 학수의 고향, 전북 부안군 변산면과 랩은 언뜻 이질적인 요소로 느껴질 수 있다. 이준익 감독은 처음에 관객이 이러한 설정을 어색하게 받아들일까 염려스러웠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변산'에서 '촌스러움의 미학'을 추구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준익 감독은 "우리가 보통 세련됐다고 할 때 서양의 에티켓에 가까운 것을 이야기하지 않나. 그런데 우리도 우리 문화를 스스로 재해석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영화 '라라랜드'도 따지고 보면 촌스럽다. 레트로 콘셉트니까. 그런데 그게 나쁘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 거다. 옛것을 다시 활용해서 쓴다는 말이다. 한국 사람들도 한국말을 사용할 때 약간의 자기 비하가 있다. 가령 사실이라고 말하면 사실이 아닌 것 같고 '팩트'라고 말하면 사실인 것 같고. 왜 진실이라고 안 하고 리얼이라고 할까. 이런 언어 사대주의적 관성 때문에 촌스러움을 격하시키려고 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라라랜드'는 레트로 콘셉트지만 오히려 세련된 그 이상의 존재가 돼버리지 않았나. 촌스러움의 미학이라고. 우리네 촌스러움이 뒤처진 게 아니다. 거기에 나는 미래가 있다고 본다. 가령 우리의 촌스러움이 세계적인 패션을 리드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준익 감독 /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이준익 감독의 최근 작품을 보면 '연결성'이 있다. 바로 기성 권력과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것이다. 지난 2015년 개봉한 영화 '사도'에서 이준익 감독은 세대 간의 갈등을 그렸다. 이어 그는 영화 '동주'와 '박열'에서도 일제시대의 거대 권력에 대항하는 청춘의 비극적 이야기를 담아냈다. '변산'은 시점을 현대로 옮겨 놓았다.

이준익 감독은 "전작과 달리 이번 영화에서는 '희망'이 꼬리에 붙은 것 같다. '변산'에서는 세대 갈등을 정면 돌파하자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도'에서는 죽음 앞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비로소 서로를 이해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마감됐다면 이 영화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제대로 붙는 신이 나오지 않나"라고 설명했다.

'변산'의 매력은 다양한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영화라는 점이다. 같은 신도 자신의 입장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이준익 감독은 "내 영화는 늘 그랬던 것 같다. 영화를 보다 보면 관점이 이동된다. 가령 영화 '동주'에서는 동주(강하늘)가 주체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몽규(박정민)가 보인다. '변산'에서는 초반에 학수의 관점으로 선미(김고은)가 대상화되는데 버스킹 장면부터는 선미로 관점이 이동해서, 학수를 대상화하게 된다. 카메라 구도부터 사실 아주 철저하게 계산돼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청년 세대의 고달픔과 희망을 이야기한 이준익 감독은 60대다. 이 감독은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 이야기를 할 땐 꼰대의 시선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 경계를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누가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당대의 교육과 제도, 기득권을 위한 게 많으니까"라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물론, 교육이란 것은 좋은 제도다. 그런데 교육을 통해서 내가 거기에 끼워 맞춰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논리라도 그것을 가르치고 제도화시키려 하면 부작용이 너무 커진다. 가능하면 젊은 세대가 자각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깨닫게 하는 방법은 현상을 보여주는 거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변산'에서 마음에 드는 신으로 학수 아버지의 유언 장면을 꼽았다. 이 감독은 "영화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유언을 남길 때 심지어 스스로 자백한다. 난 인생 헛살았다고. 그리고 '고기 삶아 먹어라. 탄 거 먹지 말라. 나처럼 대장암 안 걸린다'고 말한다. 이건 실존적 유언이다. 개념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준익 감독이 나중에 유언을 남긴다면 어떤 말을 할까. "사실 생각을 안 해봤다"던 그는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평소에 하던 말을 해야지, 새롭게 지어내는 말은 개념에 불과한 것 같다"고 운을 뗐다.

그는 "재미있게 살라고 할 것이다. 최대한 재미있게 사려고 노력하는 게 자기 자신을 위한 가장 큰 일인 것 같다. 가장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며 미소 지었다. 영화 인터뷰를 할 때도 기자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한다는 이준익 감독의 평소 모습과 들어맞는 답변이 아닐까 싶었다.




이소연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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