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조성준 기자]원대한 포부를 품고 다시 찾은 러시아였지만, 몰락한 사회주의의 망령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구 소련 시절의 관료주의는 출발부터 걸림돌이었다.
발이나 다름없는 모터사이클부터 반입이 불허됐다. 꼼꼼하게 준비해 온 통관 서류도 소용 없었다. 현지 공무원들은 무조건 기다리란 말만 녹음기처럼 되풀이했다.
이 과정에서 함께 여행하기로 했던 러시아인 화가 친구는 자국 관리들의 말도 안 되는 횡포를 못 견디겠다며 떠나 버렸다.
결국 한국인 목사의 소개로 알게 된 현지 고려인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길을 떠나는데 가까스로 성공했다. 그러나 정작 큰 고생은 다음부터였다.
당시만 해도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로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도로와 같은 사회 인프라가 전혀 구축되지 않은 상태였다.
일례로 지금도 최악의 구간으로 소문난 스코보로지노부터 체르니 v스크까지의 700㎞는 길 자체가 없는 습지에 불과했다. "도로가 없는데 가로등이 있겠어요? 한 번은 깜깜한 밤길을 달리다 모터사이클이 전복돼 정신을 잃었어요. 피투성이가 된 채로 깨어 보니 혀가 잘려나가기 일보 직전이더군요. 또 흑룡강에서 갑자기 수영이 하고 싶어져 물에 뛰어들었다가 익사 직전의 위기에 처하는 등 악전고투를 치렀죠.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 추억이지만요. 하하하."
▶ 시야를 넓히면 답이 있다! 가능성에 미리 한계를 두지 말라
왕복 4만㎞에 이를 이번 여정은 다행히 첫 횡단 때보다 훨씬 수월할 전망이다. 4년전 주요 구간의 포장이 완료된 아시안 하이웨이 6번 도로를 따라 시베리아를 거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까지 유럽 15개국을 통과할 계획이다.
김현국 씨의 여행 취지에 동감한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 BMW가 자사 모터사이클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등 각계 각층의 조건없는 도움도 쏟아졌다.
무엇보다 한 차례 횡단으로 다져진 김씨의 노하우가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이동이란 행위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탐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구체적으론 우리나라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네트워크 시대의 주역으로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를 알리고 싶습니다. 남북이 하나로 합칠 경우, 한반도야말로 유라시아 시대의 중심으로 떠 오를 가능성이 너무나 높기 때문이죠."
만남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문득 궁금해진 점 하나, 유라시아를 하나로 묶겠다는 원대한 포부는 인정하지만, 마냥 꿈만 좇는 그의 행보가 약간은 돈키호테처럼 느껴졌다. "시베리아 횡단도 좋지만 누구에게나 일단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 주위에 민폐를 끼쳐가며 꿈만 좇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란 다소 까칠한 질문에 김씨는 "눈을 해외로 돌려보면 밥벌이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나만 해도 러시아에서 만난 사람들과 손잡고 쌀 중개업에 뛰어들어 돈을 벌었고 지금도 벌고 있다"며 "우리 젊은이들도 취업이 안 된다고 주눅들지 말고 시야를 넓혀보길 바란다. 자신의 가능성에 미리부터 한계를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답했다.
조성준 기자 when@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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