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김윤겸 칼럼] 골프선수 박세리가 은퇴한다. 그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1라운드 경기가 펼쳐지는 미국 애리조나주 와일드파이어 골프장에서 17일(현지시간) 경기 후 은퇴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박세리는 지난 1996년 프로 무대에 데뷔해 1998년에 LPGA 무대에 나섰다. LPGA 통산 우승은 25승으로 이 가운데 메이저 대회 우승은 5승이다. 한국인 최초로 LPGA 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등 우리나라 선수들이 세계무대로 나가는 데 선구자 역할을 했다.
많은 스포츠팬들은 그가 LPGA 데뷔 당시 활약하던 모습을 약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잊지 않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LPGA 투어에서 총 4회 우승을 기록하며 선전하던 모습은 사회·경제적으로 우울한 상황을 겪고 있던 국내에 희망을 전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
특히 TV 공익광고에서도 활용된 당시 US여자오픈에서 양말을 벗고 벙커샷을 날리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여전히 남아있다. 이 장면은 미국 스포츠 전문방송 'ESPN'이 US오픈 5대 명장면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국내 스포츠 역사에 있어서 박세리가 차지한 위치는 남다르다. 우리나라 스포츠 발전상을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박세리 이전의 우리나라 스포츠는 프로 리그 출범으로 활성화된 야구, 축구 등 구기종목과 올림픽 메달 획득에 효자 노릇을 하던 레슬링, 유도, 복싱 등 투기 종목이 주를 이뤘었다. 다시 말해 인프라와 장기적인 투자를 기반으로 하는 종목보다는 개인기량을 중심으로 하는 스포츠 종목에서 성과를 냈다.
박세리는 골프라는 장기적인 투자와 인프라, 비용이 뒷받침 돼야하는 선진국형 종목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박세리의 등장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스포츠는 수영의 박태환,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 등 선진국 형 종목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등 세계 수준과 어깨를 겨루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는 시대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골프 한 종목만 봐도 박세리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박세리의 LPGA 활약 이후 이른바 '박세리 키드'라 불리는 박인비, 신지애, 최나연 등 후대 선수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 박세리 이전에는 전무했던 세계대회 우승을 이제는 일상처럼 접하는 시대를 맞았다.
세계 랭킹 1위를 차지한 박인비의 경우 박세리의 기록은 물론 한국 골프 역사상 최고의 LPGA 우승 기록을 남길 것으로 확실시 되고 있다. 이는 모두 박세리의 출현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었을 것이다.
박세리의 등장 이후 기존에는 스포츠 강국들의 전유물이었던 골프대회 우승, 올림픽 수영 금메달,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금메달의 주인공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는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여전히 선진 스포츠에 대한 국내 환경과 인프라 조성은 멀기만 하다.
박세리가 골프선수로 성장하기까지는 아버지의 전적인 뒷받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박태환, 김연아와 같은 불모지 종목 불세출의 스타들은 하나 같이 이같은 전철을 밟고 세계에 우뚝 섰다. 스포츠 인재 육성 시스템과 관련 종목 인프라는 전무한 채 천재적인 개인 기량과 부모들의 헌신이라는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선진 스포츠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현실은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박세리는 은퇴 이후 올림픽 골프대표팀 감독 등 지도자의 길을 나설 예정이다. 그가 지난 20년간 선수로 활약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본격적으로 후배 선수들에게 전수하는 위치로 이동하는 것이다. 선수로서의 여정을 마치고 지도자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는 그가 국내 스포츠 역사에 어떤 자리매김을 할지 다시 한 번 기대가 모아진다.
김윤겸 칼럼니스트
정성래 기자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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